경찰, 시위대 강제 해산 과정 곳곳서 난투극 벌어져
37명 체포·22명 부상…경찰 2명은 시위대에 의해 손가락 잘려...1명은 혼수상태
주최측 추산 11만5천명 참여
언론인 1천500명, 경찰본부 앞에서 폭력진압 규탄...람 장관에게 언론 자유 수호 촉구
전날 '셩슈이 되찾자' 행진서도 기자 포함 부상자 다수 속출

14일 송환법안 반대 시위에서 경찰과 충돌하는 시위대./로이터통신=연합뉴스

홍콩에서 열린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안)’ 반대 시위에서 시민들과 경찰 간에 격렬한 충돌이 발생하며 부상자가 속출했다.

홍콩 명보 등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14일(현지 시각) 오후 3시 30분 송환법안에 반대하는 홍콩 시민 11만 5천여 명(주최 측 추산, 경찰 추산 2만 8천여 명)은 사틴 지역의 운동장에 모여 사틴버스터미널까지 거리행진을 벌였다.

시민들은 “송환법이 반체제인사나 인권운동가를 중국 본토로 송환하는 데 악용될 수 있다”며 법안의 완전한 철회를 요구했다. 시위대 곳곳에 ‘악법을 철폐하라’ 등의 플래카드가 내걸렸고, 인근 주민들도 이에 지지를 보냈다. 일부 시위대는 미국 성조기나 영국 국기, 영국 통치 시대의 홍콩기를 들기도 했다.

평화롭게 진행된 행진은 오후 5시쯤 경찰이 무력 진압에 나서며 과격해졌다. 일부 시위대는 도로 표지판과 병, 벽돌 등을 경찰에 던졌다. 경찰은 시위대에 달려들어 최루 스프레이를 뿌렸다.

이후 시위대 중 일부가 인근 도로를 점거한 뒤 바리케이드를 치고 경찰과 대치했다. 이들 대부분 헬멧과 마스크를 쓰고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홍콩 당국은 경찰 2천 명을 배치했으나 이들을 해산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저녁 8시 무렵 폭동 진압 경찰이 투입돼 도로를 점거한 시위대 해산에 나섰다. 대부분 경찰에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물러섰지만, 나머지 수백 명이 인근 쇼핑몰 '뉴타운 플라자'로 들어가 대치를 이어갔다.

양측 대치는 초기에 소강상태를 보였다. 그러나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SCMP)에 따르면, 시위대 일부가 현장을 떠나려 '뉴타운 플라자'와 연결된 지하철역으로 향할 때, 폭동 진압 경찰이 튀어나오며 시위대와 난투극을 벌였다.

쇼핑몰 곳곳에서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이 빚어졌다. 시위대는 물병, 우산, 헬멧 등을 던졌고, 경찰은 방패를 앞세워 시위대를 밀어내는 가운데 곤봉을 휘둘렀다. 경찰들이 시민 한 명을 둘러싸고 집단 린치를 가하는 경우도 있었고, 이에 해당 시민을 구출하려 시위대 일부가 경찰을 밀어내고 뒤에서 막대기로 때리는 등 곳곳에 유혈사태가 일어났다. 한 경찰은 시위대에 구타를 당했지만, 한 홍콩 기자가 이를 막아서면서 간신히 심한 구타를 피할 수 있었다.

홍콩 경찰은 시위 현장에서 남성 20명, 여성 17명 등 모두 37명을 불법집회 혐의 등으로 체포했다.

홍콩 의료당국은 시위 현장에서 다쳐 병원에 이송된 사람은 모두 22명으로, 남성 14명, 여성 8명이라고 발표했다. 이 가운데 3명은 위중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위를 진압하던 경찰은 모두 11명이 다쳤고, 특히 2명은 시위대에 의해 손가락이 잘린 것으로 밝혀졌다. 한 명은 시위대가 손가락을 입으로 물어뜯었으며, 다른 한 명은 도구에 의해 손가락이 잘렸다. 다른 경찰 한 명은 혼수상태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홍콩 정부는 성명을 내고 "일부 시위대가 고의로 도로를 막고, 폭력을 사용해 경찰을 공격했다"며 "제멋대로 사회 안녕을 해치는 행위에 대해 정부는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밝혔다.

홍콩 언론인 1천500여 명은 홍콩 도심 애드머럴티에서 경찰 본부가 있는 완차이까지 침묵 행진을 벌였다. 경찰이 시위를 취재하는 기자들에게까지 폭력을 행사하였기 때문이다. 크리스 융 홍콩기자협회장은 "최근 시위 현장에서 경찰이 언론인을 향한 폭력을 서슴지 않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언론이 공권력을 감시할 수 있겠느냐"고 규탄했다.

이들은 이후 홍콩 행정 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의 집무실까지 행진한 뒤 람 장관에게 언론 자유를 수호하라고 촉구했다.

14일 송환법안 반대 시위에서 도로를 점검한 홍콩 시위대./연합뉴스
14일 송환법안 반대 시위에서 도로를 점검한 홍콩 시위대./AFP통신=연합뉴스

경찰은 전날에도 홍콩 셩슈이에서 진행된 '셩수이를 되찾자' 행진을 진압하면서 취재 기자를 폭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셩슈이를 되찾자 행진은 중국 보따리상이 홍콩 면세품을 중국 본토에 되파는 탈세 행위를 규탄하라는 취지에서 벌어졌다. 주최 측 추산 3만 명이 참여한 시위대는 보따리상 무역과 관련된 상점을 지나면서 문을 닫으라고 소리쳤다.

경찰과 시위대 간 물리적 충돌은 행진이 끝난 직후 오후 5시에 발생했다. 홍콩 언론에 따르면 시위대는 진압 경찰을 둘러싸며 우산 등으로 찔렀다. 경찰 배지를 착용하지 않고 신원을 감춘 데 항의하며 감정이 격해지기도 했다. 경찰은 경찰봉을 휘두르고 최루 스프레이를 뿌리며 강제 해산하려 했지만, 수적 열세에 밀려 후퇴했다.

이 과정에서 시위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가 쇠막대기에 맞아 다치는 일이 발생했다. 구타당한 기자는 최소 4명인 것으로 보고됐다.

이후 폭동 진압 경찰이 도착해 시위대를 해산했으며, 경찰 최소 5명 등 15명이 다쳐서 입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시위대 2명을 체포했는데, 한 명은 경찰의 체포를 피해 다리에서 뛰어내리려고 하다가 간신히 저지됐다.

재야단체 연합 '민간인권전선'은 다음 주 일요일 21일에도 입법회 부근에서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의 퇴진 등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 계획이다.

홍콩 정부가 추진한 송환법안은 홍콩과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중국 등에도 범죄자를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시위는 이 법이 악용돼 반체제인사나 인권운동가가 중국 본토로 송환될 수 있다는 우려 속에서 일어났다. 이후 람 장관이 '송환법은 죽었다'고 발표했지만, 시위대는 법안의 완전한 철회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다만 시위 참여 인원은 줄어드는 추세다. 지난달 9일 103만 명, 16일 200만 명의 홍콩 시민이 시위에 참여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지난 2일 입법회 점거 폭력 사태가 발생한 후 7일 시위엔 주최 측 추산 23만 명이 참여했다. 이날 시위에는 11만 5천 명이 참여한 것으로 공개됐다.

따라서 21일 열릴 '민간인권전선' 집회에 얼마나 참여하는지가 홍콩 시위 정국의 향방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안덕관 기자 adk2@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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