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만경봉92호에 5.24조치 예외 적용” vs. 美·日·EU “대북제재법 위반”
“유엔안보리 결의 이행하려면 北응원단 가방까지 전부 조사해야...”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북측 응원단이 이용한 만경봉호의 다대포 입항을 환영하는 시민들의 모습(연합뉴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북측 응원단이 이용한 만경봉호의 다대포 입항을 환영하는 시민들의 모습(연합뉴스)

문재인 정부가 6일 오후 동해 묵호항으로 들어오는 북한 만경봉 92호에 5.24 조치 예외 적용하겠다고 밝힌 것과 대조적으로 미국과 유럽, 일본에선 대북제재법 위반에 대한 지적이 나오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통일부는 6일 “오늘 오전 9시 50분께 만경봉 92호가 해상경계선을 통과했다”며 “오늘 오후 5시께 동해 묵호항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북한 만경봉 92호에 음식과 기름, 전기 등을 제공할 예정”이라고 했다.

만경봉 92호는 해상경계선에서부터 우리 호송함의 안내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2002년 아시안게임 등 전례에 준해서 (만경봉 92호에) 편의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삼지연관현악단으로 구성된 북한 예술단은 이 배를 숙소로도 사용할 계획이다. 북한 예술단은 8일 강릉 아트센터, 11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공연할 예정이다. 당국자는 현재 북한 예술단 114명과 지원인력이 이 배에 탑승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실상 만경봉 92호의 국내 입항은 5.24조치에 위배된다. 정부는 지난 2010년 북한 천안함 폭침 사건에 대응해 북한 선박의 한국 영해 내 운항을 불허하는 5.24조치를 통과시켰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5.24조치가 한국 통일부 장관의 결정에 따라 예외를 인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는 것에 근거해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지원한다는 차원에서 예외로 적용하기로 했다.

이 당국자는 5.24조치에 대한 입장과 관련해 “지난 정부 때도 상황에 따라 유연한 조치를 했었다”며 “남북관계 상황을 보면서 판단해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 측과 협의해서 제재 대상이 아님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고 했다.

그러나 문 정부에게는 여전히 미국을 비롯해 대북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는 다른 나라들을 설득해야 하는 문제가 남는다.

미국은 대통령 행정명령 13810호를 통해 180일 이내 북한 항구에 기항한 선박의 입항을 금지하고 있다. 미 국무부가 운영하는 미국의소리(VOA) 방송은 6일 “이는 북한 원산항을 모항으로 하는 만경봉 92호가 현재 미국의 입항금지 대상 선박이라는 의미”라고 밝혔다.

VOA는 이날 보도에서 “일각에선 미국의 독자 제재 명단인 ‘특별지정 제재 대상’에 만경봉 92호가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에 제재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특별지정 제재 대상’은 미국인 등과의 거래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입항 여부와는 관계가 없다”며 “선박에 대한 ‘180일 규정’은 북한을 기항한 모든 선박에 예외 없이 적용된다”고 밝혔다.

VOA는 또 “유럽연합의 법 조항을 적용해도 만경봉 92호의 입항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라며 “2016년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감행한 이후 유럽연합은 북한 선박의 입항을 전면 금지하는 독자 제재 조치를 단행했다”고 밝혔다. 이어 “일본은 2006년 만경봉 92호를 자체 제재 명단에 포함시킨 이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VOA는 “설령 예외 조항을 통해 만경봉 92호가 한국에 입항한다고 해도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여러 나라의 조항에 대한 위반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미 국가정보국(DNI) 동아시아 선임 고문과 미 국무부 대북지원 감시단원 등으로 활동했던 윌리엄 브라운 조지타운대 교수는 “북한이 만경봉 92호를 선택한 건 제재 약화를 노렸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북한 응원단이 만경봉 92호를 타고 한국에 입항하는 것은 표면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결국은 한국의 제재 위반을 유도하기 위한 수”라는 지적이다.

이어 “모든 유엔 회원국들이 대북 제재 강화에 나선 현 상황에서 한국이 이를 지키지 않는 건 다른 나라들에 의문을 자아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VOA는 또 “한국정부가 만경봉 92호에 실린 화물에 대한 검사에 나설 지도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유엔 안보리는 지난 2016년 채택한 결의 2270호를 통해 북한을 출도착지로 하는 화물을 각 유엔 회원국들이 의무적으로 검사하도록 했다.

VOA는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르면 단순히 화물뿐 아니라 승객들의 개인 짐도 의무적으로 검사해야 한다”며 “한국정부가 안보리 결의를 충분히 이행하려면 북한 응원단의 가방까지 전부 조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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