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욱 칼럼] 인사청문회에 대한 정치적, 법적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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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9.07.11 09:27:50
  • 최종수정 2019.07.11 14:47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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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청문회 둘러싼 일방적 정치권력의 독주...언론의 비판도 미약
정상적 비판과 반대의견의 정치적 견제도 이제 대한민국에선 사라질 위기 왔다
자유시민들의 분투가 더 요구되는 시대
황성욱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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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공직자를 임명함에 있어서 국회에서 인사청문회를 거치는 절차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찬반이 있어왔던 논쟁이다. 헌법은 권력분립을 위해, 일정 고위공지자는 국회의 ‘동의’를 요하고 있는데, 국무총리, 감사원장, 대법원장, 대법관, 헌법재판소장이 그렇다. 사법부 주요 인사들에 대해서 국회의 동의를 요하는 것은 사법부의 약한 민주적 정당성을 보완하기 위해서고 감사원은 원래 기관의 제도연혁 상 국회 산하여야 한다는 점에서 그 필요성이 인정된다. 국무총리는 원래 내각제의 잔재이고 대통령의 고유 인사권에 해당되는 자리라 국회동의를 요하는 것이 의문이지만, 어쨌든 헌법에 규정되어 있다.

헌법에서 국회의 동의를 요구한다면, 그것은 형식적인 동의가 아니라 실질적 인사권에 대한 국회의 판단을 요구하는 것이므로 임명대상자들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필수적 절차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국회의결을 거치지 못하면 대통령의 권한은 견제된다. 국회는 구성원 자체가 집합적이라 정치적 숙고의 기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인사청문회의 제도적 기능도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국회의 동의를 요하지 않는 자리에 대한 인사청문회다. 이론상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의 주요 인사권에 대해 전부 국회 동의를 요하면 내각제이지 대통령제가 아니라는 측면에서 이와 같은 경우에 있어 인사청문회가 ‘헌법상’필수적 절차는 아니다.

그러나 다수의 국민은 대통령의 권한이 제왕적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견제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 우리는 ‘법률상’ 필수적 절차로 인사청문회 제도를 운영해왔다.

국회의 동의를 요하지 않는 자리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그래서 절차로서는 필수지만, 법적으로는 인사청문회 보고서를 채택하지 않는다하더라도 대통령은 이에 구속되지 않고 ‘마음대로 임명’이라는 법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여기서 딜레마다. 어차피 대통령이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대통령제의 본질에도 맞지 않는다면 인사청문회는 사람만 망신주기 아닌가 하는 무용론과 그래도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로 심판받는 정치적 책임을 통해 소위 제왕적 대통령을 견제하는 수단이 되지 않겠냐는 유용론이 대립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성숙한 자유민주주의 사회라면 어떠한 제도든 발전방향으로 운용하는 것이 필요하며 그것은 하드웨어의 문제라기보다는 소프트웨어의 문제다. 칼이 범죄자의 손에 들어가면 흉기지만, 요리사의 손에 들어가면 도구가 되는 것처럼.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에 대한 청문회는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절망스럽다.

언론보드에 따르면, 윤 후보자는 수사를 받는 피의자에게 변호사를 소개한 적이 없다고 말을 했지만, 그에 배치되는 정황의 육성녹음파일이 공개됐다. 야당은 이에 대해 변호사법 위반이며, 국회를 농락한 위증이라며 강경대응을 천명했지만, 대통령과 정부여당은 아랑곳하지 않고 강행할 의지를 보이는 것 같다.

위증은 증인적격이 없어서 성립하지 않고 변호사법 위반은 ‘소개는 했지만 선임을 요구한 건 아니다’는 법률적인 쟁점은 논외로 하자. 애초 인사청문회는 국민의 눈높이로 대통령의 인사권에 대한 적정성을 ‘정치적으로 담보’하기 위한 것 아니었던가.

물론 과거 정부도 그랬고, 본질은 여야간 정쟁을 뿐이라는 친정부적 논거에 대해서도 일리는 있는 반론이라고 보지만, 과거와 달리 절망적인 것은 유용론의 장점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일방 정치권력의 독주분위기다.

과거의 대통령은 특히 정쟁의 일선에 있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을 정치적 중립이 크게 요구되는 자리에 인사를 자제했고 그래서 조직내부 서열에 따른 인사원칙도 고려했지만, 지금은 그런 면도 없다. 아니 원래 인사란 정쟁이라고 유도하는 느낌마저 든다.

언론의 비판도 미약하다. 오히려 유명인의 친정부적인 발언이 나오면 그에 대해서 언론이 대서특필을 하는 일종의 권언유착 현상은 이제 말하기도 지겹다.

요컨대 무용한 것은 무용이라도 상관없지만, 유용한 것도 무용이 되는 상황이다. 정상적인 비판과 반대의견의 정치적 견제도 이제 대한민국에선 사라질 위기가 왔다. 자유시민들의 분투가 더 요구되는 시대다.

황성욱 객원 칼럼니스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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