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어찌하여 그처럼 자신이 없고 피해의식과 열등감에 사로잡혀서 일본이라면 무조건 겁을 집어먹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비굴한 생각, 이것이 바로 굴욕적인 자세라고 나는 지적하고 싶습니다. 일본사람하고 맞서면 언제든지 우리가 먹힌다 하는 이 열등의식부터 우리는 깨끗이 버려야 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제는 대등한 위치에서 오히려 우리가 앞장서서 그들을 이끌고 가겠다는 우월감을 왜 가져 보지 못하는 것입니까?”

1965년 12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한일기본조약문에 서명하는 장면. 박정희는 먹물 지식인들의 반일 감정 선동에 대해 "패배주의 열등의식, 그리고 퇴영적인 소극주의를 버려라. 일본을 배워서 따라잡자"고 강력 주장했다.
1965년 12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한일기본조약문에 서명하는 장면. 박정희는 먹물 지식인들의 반일 감정 선동에 대해 "패배주의 열등의식, 그리고 퇴영적인 소극주의를 버려라. 일본을 배워서 따라잡자"고 강력 주장했다.

일본이 ‘반도체 재료 수출 규제 강화’를 앞세운 무역 보복에 나서면서 노골적인 친중·반일 정책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문재인 정부 입장이 묘해지고 있다. 어쩌면 이런 국면은 나라 결딴내기로 작정한 문재인 정부가 바라던 상황일지도 모른다. 순진무구한 한국 국민들은 일본과 관련된 문제가 터졌다 하면 급격히 반일 감정을 분출하고, 게다가 북한이 반일 공격에 동참해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5일 중소상인 자영업자총연합회는 서울 종로구 수송동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제품 판매중지 선언을 했다. 참석자들은 “과거사에 반성 대신 무역보복에 나선 일본을 규탄한다”고 외쳤다.

한국에 대한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강화 발표가 있었던 지난 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일본 경제 제재에 대한 정부의 보복 조치를 요청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과 일본관광 거부로 대응하자는 청원이었다. SNS에서는 유니클로, 아사히, 데상트, 도요타, 혼다 등 주요 일본 브랜드 불매운동 리스트가 공유되기도 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도 두 팔 걷어부치고 나섰다. 이 신문은 7월 10일 ‘친일매국행위가 초래한 사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과거 죄악에 대한 아무런 반성의 기미도 보이지 않는 일본이 갈수록 오만방자하게 놀아대고 있다”면서 “얼마 전 일본당국이 남조선에 대한 수출규제조치를 전격적으로 취한 것은 그 대표적 실례”라고 밝혔다. 일본 정부의 경제보복 조치는 “군국주의적 목적을 실현하려는 아베 일당의 간악한 흉심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황당무계한 북벌론, 소중화(小中華)에 미친 조선 지배층

사회 일각에서 거론되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 일본관광 거부는 역사적으로 보면 효종 시절 북벌론이나 다를 것이 없는 허상이다. 1637년 병자호란을 당한 인조는 삼전도에 나가 자신들이 ‘오랑캐’라고 하대하던 여진족 추장 홍타이지(청 태종)에게 “세 번 머리를 조아리고 아홉 번 이마를 땅에 찧는(三拜九叩頭禮)” 치욕스런 항복을 했다.

이후 조선 지배층은 자신들의 항복 행위를 마스터베이션 하기 위해 황당무계한 북벌론을 주장하고 나섰다. 인구 3억이 넘고 군사력만 수백만에 달하는 세계적인 경제·군사강국 청나라를 병력 1~2만으로 어떻게 정벌하겠다는 것일까? 자신들의 주장이 너무 현실성이 결여되었다고 판단되자 조선 지배층은 슬그머니 북벌론을 접고 황당무계한 판타지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조선의 국력으로는 감히 청에 대적할 수 없다는 현실과, 반드시 오랑캐에 대한 복수를 해야 한다는 이상의 참담한 괴리를 겪은 조선 지배층은 이미 멸망해서 지구상에서 사라진 명나라에 의리를 지킨다는 배청복명(排淸服明), 존명사대, 소중화 등 점점 더 비이성적, 비현실적 망상의 세계로 현실도피를 했다. 조선의 양반 지도층들은 명을 칭할 때는 중국, 혹은 중조(中朝)·황조(皇朝)·황명(皇明)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청에 대해서는 결코 그렇게 부르지 않았다. 그들의 머릿 속에 든 '중국'은 명나라였을 뿐, 결코 청나라는 아니었다.

“중원이 오랑캐 만주족에게 더렵혀진 현실에서 중화 문물을 간직한 나라는 조선밖에 없다. 중화문명의 적통이자 계승자는 만주족 오랑캐가 세운 청이 아니라 조선이다. 따라서 이 세상 유일의 문명국이요 중화국은 조선이다. 조선은 ‘소중화’의 나라다.”

이것이 바로 조선 지도층의 현실 인식을 마비시킨 소중화 사상의 핵심이었다. 그들은 소중화를 실천에 옮기기 위해 왕궁 깊숙한 후원에 대보단(大報壇)이란 사당을 건립했다. 조선 국왕은 세자와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청나라에게 들킬까봐 야심한 밤에 몰래 명나라 황제들을 위해 제사를 올렸다.

임진왜란 때 원군을 보내 조선을 구해준 만력제(萬曆帝), 명을 건국하고 ‘조선’이라는 국호를 하사한 홍무제(洪武帝), 명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崇禎帝) 등 세 황제는 죽어서 혼백이 되고, 자기 나라가 망해 지구상에서 사라진 후에도 조선 국왕과 세자, 문무백관들부터 융숭한 제사를 대접 받았다. 1704년부터 시작된 명 황제 유령에 대한 제사는 1894년 청일전쟁을 위해 일본이 서울을 점령한 후 시작된 갑오경장으로 폐지될 때까지 줄기차게 계속되었다.

명청 교체기를 온몸으로 부대끼며 관통했던 조선은 만주족이 청을 세움으로써 중화사상과 절연하고 새로운 자아의식을 출범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하지만 그들은 새로운 자아의식은커녕 죽어 유령이 된 명 황제들을 불러내 국가 차원에서 제사 지내고, 소중화, 존명의리 이데올로기라는 최악의 정신세계에 함몰되었다.

오래 전에 망해 사라진 중화의 상징 명나라를 흠모하는 주자학의 화이론적 세계관과 문명관을 고수하기 위해 조선은 청나라가 새롭게 구축한 국제질서에의 동참을 완강히 거부했다. 조선은 청을 통해 흘러오는 근대화의 조류와 서양 선진문물을 거부하는 시대착오를 반복했다. 소중화의 세계관을 고수하기 위해 안팎으로 나라의 문을 닫아 걸고, 해외와의 교류를 막은 것이다. 그 결과 조선의 역사 시계는 1637년 2월 24일부터 300여 년 정지되었다.

반청(反淸) 이데올로기가 반일 감정의 뿌리

세월이 흐르면서 ‘청’이라는 적대적 타자는 청이 망해 없어진 후 일본으로 대체되었다. 이러한 적대적 타자에 대한 저항과 거부, 반감은 한국인들의 강렬한 자주의식과 민족정서, 주체사상과 결합되었다. 그 결과 여차하면 반일감정에 휘말려 손에 촛불 들고 광화문 광장으로 뛰어나가 집단 광기를 일으키는 파시즘적 전체주의 멘탈리티를 구성했다.

만주족 오랑캐에게 항복한 후 그 복수를 위해 말 뿐인 북벌을 외치고, 망해 사라진 명 황제의 유령에 제사를 지내기 시작한 조선 중기 이후부터 파시즘적 전체주의는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현상 아니었을까?

오늘날 횡행하고 있는 친중 반일정서는 청나라가 망해 없어진 이후 반청정서를 고스란히 정서적으로 물려받은 업보다. 반일 감정을 냉정하게 억제시켜야 할 대통령과 국가지도부가 오히려 반일 선동에 앞장서는 모습은 우리를 절망하게 만든다. 하지만 공개석상에서 전 국민들에게 반일이 아닌, 극일(克日)을 당당하게 외친 지도자가 있다. 박정희다.

박정희는 거의 모든 국민들이 결사반대하는 한일 수교협정을 비상계엄까지 발동하여 체결했다. 1965년 6월 22일 한일 외무장관들은 일본 도쿄에서 한일협정문서에 서명함으로써 험난한 고비를 넘어 국교 정상화가 이루어졌다. 다음날인 6월 23일, 박정희 대통령은 한일 국교 정상화의 필요성과 당위성, 앞으로 우리 국민들이 견지해야 할 정신자세 등을 밝히는 대국민 특별담화문을 발표했다.

이날 박 대통령은 한일교섭의 결과가 굴욕적이니, 저자세니, 또는 군사적 경제적 침략을 자초한다는 등 비난을 일삼거나, 심지어 매국 행위라고 극언하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준엄하게 꾸짖었다.

“나는 지금까지 그들 주장이 정부를 편달하고 정부가 하는 교섭의 입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라는 점에서 이것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여 왔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들의 주장이 진심으로 우리가 또 다시 일본의 침략을 당할까 두려워하고 경제적으로 예속이 될까 걱정한다면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들은 어찌하여 그처럼 자신이 없고 피해의식과 열등감에 사로잡혀서 일본이라면 무조건 겁을 집어먹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비굴한 생각, 이것이 바로 굴욕적인 자세라고 나는 지적하고 싶습니다. 일본사람하고 맞서면 언제든지 우리가 먹힌다 하는 이 열등의식부터 우리는 깨끗이 버려야 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제는 대등한 위치에서 오히려 우리가 앞장서서 그들을 이끌고 가겠다는 우월감을 왜 가져 보지 못하는 것입니까?”

박정희는 한일 국교정상화가 우리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오느냐, 불행한 결과를 가져오는냐 하는 것은 우리의 주체의식, 우리의 자세, 우리의 각오가 얼마나 건재하고 바르고 확고하냐에 달려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근대화 작업을 좀먹는 가장 암적인 요소는 우리들 마음 한구석에 도사리고 있는 패배주의 열등의식, 그리고 퇴영적인 소극주의 바로 이것인 것입니다.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비생산적인 사이비행세 이것들입니다. 또 있습니다. 속은 텅텅 비고도 겉치레만 번지레 꾸미려 하는 권위주의, 명분주의, 그리고 언행 불일치주의들입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과감하게 씻어버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자신을 가진 국민이 됩시다.”

“일본을 배워서 따라잡자” 외친 박정희

박정희는 그야말로 혁명가였다. 골방에서 글줄이나 잃으며 음풍농월이나 일삼던 사농공상(士農工商)의 나라를 상공농사(商工農士)의 나라로 뒤바꿔버린 것이다.

한국정치를 연구한 일본인 정치학자 다나카 메이(田中明)는 박정희 정부 18년을 한국사의 진행과정에서 ‘지극히 예외의 시대’였다고 주장한다. 1,000여 년을 붓을 잡은 문민(文民)우위 통치로 이어왔던 이 나라의 통치구조에서 지극히 예외적으로 칼을 든 군인들이 통치했던 무인(武人)통치 시대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박정희의 쿠데타로 시작된 한국의 무인통치 시스템은 전두환, 노태우 등 군인 출신 정치인의 임기가 끝나는 날 완벽하게 전통적인 문치의 시대로 회귀할 것이라고 다나카 메이는 예언했다.

한일 국교 정상화를 통해 배 고픈 국민들 밥 좀 먹이고자 했던 것이 박정희다. 하지만 야당 정치인과 먹물 학자들, 대학생 등 유교적 교양과 전통의 기초 위에 서 있는 야당과 반정부 세력들은 '반일'로 열심히 방해하고, 가로막아 역사를 퇴행시켰다. 한일협정을 반대하는 비판과 공격이 가해질 때마다 박정희는 그들의 주장을 통렬하게 반박했다. 수백 년을 이어온 양반 지배층, 성균관 유생으로 대표되는 성리학자들, 그리고 그런 정신을 물려받은 야당 정치인, 언론, 학자, 지식인, 그리고 운동권 민주화 신봉론자들이 일제 36년 식민지배라는 국민감정을 앞세워 반일 선동을 할 때 그는 “일본을 배워서 따라잡자”고 외쳤다.

예외의 시대는 예외일 수밖에 없으니, 곧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순리다. 다나카 메이는 박정희의 쿠데타로 시작된 한국의 30년 무인통치 시스템은 노태우의 임기가 끝나는 날 또 다시 전통적 문치의 시대로 회귀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의 예언은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의 등장으로 적중했다.

예외의 시대를 이끌었던 박정희는 지극히 예외적인 리더십으로 한국을 변모시켰다. 지구상에 그 이론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에 숱한 전문가와 학자, 언론인들의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외자도입형 수출주도형 공업화 전략’을 추진했고, 이를 성공시켰다. 세계의 전문학자와 글로벌 금융기관의 수장(首長)들까지 나서서 극력 반대했던 종합제철소(포스코)와 고속도로 건설은 박정희의 ‘예외적인 리더십’이 아니었다면 결코 가능하지 않았던 기적이었다.

일본 전국시대 100년의 혼란을 종식시킨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는 이렇게 말했다.

“백성의 호주머니를 두둑하게 만들어라. 그것이 통치의 최고 덕목이다.”

박정희는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후 이렇게 외쳤다.

“보릿고개를 없애고 수출로 나라를 세우자!”

또 다시 대보단 짓고 중국 황제에게 제사 지내야 할 듯

당시 한국의 배부르고 등 따신 양반 지배층의 후손으로 구성된 정치계와 지식인, 학생들이 ‘민주주의는 신(神)’이라고 떠받들 때 박정희의 신은 ‘세 끼 밥’이었다. 그는 개발도상국가의 정치 과잉이 경제발전을 저해한다고 보았다. 1967년 제6대 대통령 선거 당시 박정희는 광주에서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는데, 이 연설에 ‘밥’의 중요성이 잘 나타나 있다.

“20세기에 살면서 우리 야당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19세기에 머물러 있습니다. 조국은 근대화하는 데 우선 정부 여당 사람들도 일을 잘해야 되겠습니다. 우선 야당 사람들의 머리부터 근대화 되어야 합니다…. 야당은 우리 정부가 독재 정권이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살리기 위해서도 자기들이 집권해야 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다 죽어가는 민주주의에 숨을 돌리게 하여 살려놓았습니다. 말로만 민주주의 민주주의 하는데 민주주의로 먹고 삽니까? 배가 불러야 하는 것입니다.”(「동아일보」, 1967년 4월 27일)

우리는 박정희가 남긴 기적의 결과물인 중화학공업을 자양분으로 삼아 지금도 먹고 산다. 그에게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선물을 받고도 그 고마움조차 모른 채 ‘독재자’, ‘민주주의 파괴자’, ‘만악(萬惡)의 근원’으로 낙인을 찍는다. 정말 배은망덕한 축생(畜生)·견생(犬生)들 아닌가.

일본은 한 시절 식민통치를 하는 과정에서 한국인들에게 상처를 주었지만, 국교 수교 한국을 열심히 도와 그나마 밥술이나 먹고 살도록 도움을 주었다. 그런 이웃 나라를 이토록 집요하게 모욕하고 상처를 주는 국민이라면, 은인을 몰라보는 국민에게 미래는 없다. 일본은 도저히 맞장 떠서 이길 수 없는 존재이니, 또 다시 대보단 지어 중국 황제에게 제사 지내면서 폐쇄 고립 주체를 외치는 것이 이 나라에게 너무 잘 어울리는 행보 아니겠는가. 

김용삼 대기자 dragon0033@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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