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북한 노동당 39호실 고위 관리 리정호 씨가 지난해 5월 세계 각국 최고경영자 모임인 ‘The Business Council’ 회의에서 강연하고 있다(VOA).
전 북한 노동당 39호실 고위 관리 리정호 씨가 지난해 5월 세계 각국 최고경영자 모임인 ‘The Business Council’ 회의에서 강연하고 있다(VOA).

북한 노동당 39호실에 소속돼 북한의 여러 외화벌이 기관의 대표와 해외 지사장을 지낸 리정호 씨는 8일 미국의소리(VOA)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대북 제재의 누수 현상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석탄 수출 정황이 여전하고 국가 주도로 불법 환적이 이뤄지고 있다며 공급자와 시장을 원칙적으로 차단하는 제재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리정호 씨는 “북한이 대북 제재 이전에 수입하던 정제유 수량은 매해 30~40만 톤이었는데 정제유 수입을 50만 배럴로 제한하면 이전 수입량의 25%도 안 된다”며 “이렇게 되면 북한의 경제는 물론 군대를 비롯한 모든 부분의 정상적인 활동이 멈추게 된다”고 했다.

2014년 북한을 탈출해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리 씨는 북한 39호실 대흥총국의 선박무역 회사 사장과 무역관리국 국장, 금강경제개발총회사 이사장 등을 거쳐 2014년 망명 직전에 중국 다롄주재 대흥총회사 지사장을 지냈다. 2002년에는 노력영웅 칭호를 받기도 했다.

그는 북한이 유엔 안보리 결의 2397호에 따라 허용되는 정제유의 7.5배 이상인 378만 배럴(50만 톤)을 수입했다는 미국 정부의 추산을 주목했다.

그는 “대북제재로 자금줄이 다 막혀 50만 톤의 경유를 수입했다는 것은 보통 상직으로 이해할 수 없다”며 “50만 톤의 경유 대금은 약 3억 2천~4억 달러에 달하는데 그 많은 자금이 어디서 나왔는지 의심된다”고 했다. 이어 “유엔 통계에 따르면 2018년 북한 수출액은 약 2억 1천만 달러”라며 “그런데 북한이 수입한 경유 대금은 그 두 배 가까이에 달한다”고 했다.

리 씨는 북한의 대외무역 종사자들로부터 제재 때문에 대폭 축소된 외화 수입을 만회하기 위해 각종 편법과 은밀한 거래가 활발히 진행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북한 소식에 의하면 북한산 석탄이 중국 남방 지역에 많이 수출되고 있고 금과 수산물을 비롯한 밀수가 늘어나고 있다”며 “제재 품목이 아닌 시계 등 다른 품목으로 임가공 무역을 늘리면서 지난해 보다 수출입이 증가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북한정권은 해상에서 불법 환적으로 충분한 양의 정제유를 확보함으로써 제재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고 했다.

리 씨는 가장 심각한 제재 회피 행위로 북한의 불법 해상 활동을 지적했다.

앞서 미 재무부는 지난 3월 21일 국무부, 해안경비대와 공동으로 발행한 대북 해상거래 주의보에서 지난해 북한이 불법 해상 환적을 통해 얻은 최대 378만 배럴의 정제유를 263차례 자국 유조선에 싣고 들어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해상에서 선박 간 환적을 하는 회사들을 자칫하면 한 번에 망할 수도 있는 위험한 도박을 하는 것”이라며 “북한에서 선박 무역에 오래 종사한 경험에 비춰볼 때 어떤 정부 차원에서 조직하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그는 미 재무부로부터 북한선박에 불법으로 정제유를 전달했다는 의혹을 받는 한국 선박 ‘루니스’호와 또 다른 환적 의심 한국 선박 ‘피 파이어니어’호를 예로 들면서 제재의 구멍을 막기 위해선 국적을 불문하고 해당 선박에 대한 보다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리 씨는 “사실 선박을 조사하는 것은 매우 간단하고 명백하다”며 “배에는 언제, 어디서, 무엇을, 누구에게, 어떻게, 왜 라는 6하원칙의 증거자료들이 선장실과 항해실, 기관실과 갑판을 비롯한 여러 곳에 다 기록돼 있고 선하증권들이 보관돼 있다”고 했다.

그는 “루니스호와 피 파이어니어호 등 불법 환적에 연루된 선박들을 용선한 회사들과 거래 은행들에 대한 제재가 뒤따라야 잇단 해상 불법활동의 허리를 자르는 타격이 될 것”이라고 했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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