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호 칼럼] 무엇을 기약하는 평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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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9.07.10 09:26:46
  • 최종수정 2019.07.11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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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민이 갈구하는 것은 자유와 번영을 보장하기 위한 평화
김정은과 트럼프만이 만나 이야기한 것이 우리의 평화라고 싱글벙글 할 일인가?
주요 언론들, 마치 “평화”가 文대통령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진귀한 선물인양 법석떨어
국민은 굶주리게 하면서 핵-미사일 개발한 北과의 '평화'가 대한민국에게 무엇을 가져올 것인가?
文정권의 '평화'란 核가진 김정은 정권 앞에 우리가 백기투항을 하자는 항복의 평화라는 사실 깨달아야
대가 없는 자유 없듯이 대가 없는 평화는 노예의 평화밖에 없다는 것을 이제는 깨달아야
이인호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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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와 그 나팔수가 된 언론매체들은 한반도에 평화가 다시 돌아온 듯 요란을 떤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의 손을 잡고 남북경계선을 넘은 것은 상징성이 큰 일임은 분명하다. 적어도 당분간 전쟁이 터지지는 않을 것이라 기대 할 만 싶다. 외세를 배제한 “우리민족끼리”의 통일을 그처럼 강조하던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가 한반도 평화의 “주역”이라고 추켜세웠다.

평화가 그렇게 쉽게 이루어 질 것이면 왜 지금까지 우리는 노심초사하고 살아왔는가? 문재인 같은 천재적인 중재가가 없었기 때문에 한반도에는 평화가 아직 정착할 수 없었던 것인가? 자신은 빼놓고 김정은과 트럼프만이 만나 한 시간 가까이나 이야기한 것이 우리의 평화라고 싱글벙글 할 일인가? 미국은 우리이고 북은 상대방이란 말인가, 아니면 북은 이미 우리이고 미국이 상대방이란 말인가? 판문점의 정치쇼 직전에 일본에서 개최된 G20 회의에서도 우리국민은 문재인 대통령이 얼마나 철저하게 소외 당하는지를 눈으로 보지 않을래야 안 할 수가 없지 않았나. 대한민국은 어디로 갔나?

이제 우리는 물어야 한다. 무엇을 위한 평화인가? 정전, 곧 전쟁이 없는 상태가 곧 평화가 아님을 우리는 안다. 평화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승자의 평화가 있고 노예의 평화가 있다. 1938년 뮌헨의 평화나 트로이 목마로 상징되는 트로이-그리스의 평화처럼 더 큰 재앙을 배태한 폭풍전야의 평화도 있다. 우리국민이 그리고 세계가 지금 원하는 한반도의 평화란 어떤 평화이고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까지 웃음거리가 되는 “촉진자” 또는 “중재자”로 나서면서 그 지지세력이 목청 높여 외쳐대는 “평화”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평화인가?

우리 대한민국 국민이, 그리고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이면 어느 나라 어디에 사는 사람이든 모두가 갈구하는 것은 자유와 번영을 보장하기 위한 평화이다. 우리가 1948년 자유민주공화국 국민으로 새로 태어난 이 후 지금까지 지키려 노력해온 가치가 바로 그것이고 그것을 위해 1950년 스탈린과 모택동의 지원을 약속 받은 김일성의 기습침략에 맞서 사투(死鬪)를 벌렸던 것이다. 1953년 종전 이후 우리는 비록 평화 조약은 없었어도 한미방위조약이 있었기 때문에 전쟁 없이 70년이라는 긴 세월을 살 수 있었으며 불안과 우여곡절 속에서도 그 전쟁 없는(평화) 상태를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번영을 계속 신장시킬 기회로 활용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원산지였던 러시아에서부터 세계공산권이 무너져 내릴 때 경제발전과 정치민주화 양쪽에서 성공했다고 자타가 공인했던 우리는 드디어 정전상태의 불안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공산권에 갇혀 살며 폭압과 빈곤에 허덕이고 있던 북한의 우리 동포들을 동유럽의 나라들처럼 해방시켜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 속으로 품어 안을 수 있을 것이라는 꿈도 꿀 수 있었다. 꿈에도 잊을 수 없었던 민족통일을 위해서는 얼마만의 과도적 희생은 감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던 착하디 착한 우리 국민들이 주인인 이 대한민국에서 안보나 “평화”를 걱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2002년 월드컵에서 우리가 4강에 올랐을 때는 “대-한민국” 이라는 함성이 온 세계를 진동시켰다. 새 천년 시대가 개막되고 최초의 역사적 남북 정상회담이 이루어진 후 김대중 전 대통령은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다.

20년도 채 지나지 않은 이야기다. 그런데 지금 우리 주요 언론매체들은 마치 “평화”가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진귀한 선물인양 법석을 떨고 있다. 트럼프-김정은의 판문점 만남 이후 북한은 벌써 “미국은 대화를 강조하면서도 지옥 같은 적의를 내품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고 영국의 소식통은 전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10%나 올랐다니 대한민국 유권자들의 접할 수 있는 정보가 어느 정도로 편향되고 막혀있으며 생각이 얼마나 단순한지를 짐작 할 수 있다.

국민은 굶주리게 하면서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한 북한과의 “평화”가 지금 우리 대한민국 국민에게 가져올 것이 무엇인가? 부모가 가난하고 힘이 없어 서로 나뉘어 남의 양자로 들어갔던 형제가 다시 만났을 때 하나는 세상 모르는 부자 가정, 다른 하나는 세파에 시달릴 대로 시달리면서도 번득이는 칼자루 하나만은 간직하고 있는 가난뱅이 처지로 만났다 하자. 서로 반갑다고 껴안으며 눈물을 흘리고, 이제 한 가족이 되었으니 모든 담을 허물고 하나의 가족을 이룩하자고 한 뒤에 벌어질 일은 무엇일까? 돈 문제라면 형제간, 부모자식 간에도 칼부림이나 소송, 심지어는 살인까지 벌어지는 것이 불행히도 인간세상인데 남북간에 벽만 허물면 “민족”끼리라고 모든 면에서 평화로운 관계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이제는 깨닫고 솔직히 인정할 때가 되었다. 우리의 대북(對北) 포용정책은 완전히 실패해 우리에게 자살골이 되었으며 지금 문재인 정권이 말하는 평화란 핵을 가진 김정은 정권 앞에 대한민국이 백기투항을 하자는 항복의 평화라는 사실을 말이다. 두 가지 중요한 단서가 붙어 있었던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포용정책은 그 당시의 우리의 다소 여유 있던 사정이나 세계 정세로 보아서는 시도해 볼만도 한 용감한 역사적 도박이었다 볼 수도 있다. 그 단서란 첫째 북한의 “도발은 절대 용납될 수 없고” 둘째 “한미동맹은 굳건히 지킨다”는 것이었다. 그 두 가지 조건만 엄격히 지켰더라면 대북 포용정책은 국제사회와의 공조 속에서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았음을 보여준 것이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상 수상이었다. 하지만 동상이몽을 하는 두 개의 상반된 세력들의 암흑 속 야합으로 시작된 대북포용정책에서 그러한 단서들이 지켜 질 리가 없었다.

햇볕정책에는 두 축이 있었다. 한 축은 무너져 내리는 북한체제를 살려내기 위해서는 남한으로부터 지원을 받아내는 방법밖에 없다는 계산을 한 친북, 종북 좌파 세력이었고 다른 한편은 북한이 졸지에 무너져 내릴 때 감당해야 할 통일비용보다는 그 체제를 일정 틀 안에 가두어 놓고 관리하는 편이 이로울 것이라는 계산에 설득을 당한 이기적 반(反)통일 세력이었다. 북한과 종북 세력은 무력도발은 자제하는 한편으로 대한민국 국민의 국민의식의 수준을 시험하며 해이시키는 도발, 예를 들어 대남공작 책임자요 대한민국을 등지고 월북한 사람 가운데 최고위직 경력자였던 최덕신의 처 유미영을 이산가족 상봉단의 대표 자격으로 내보내는 짓 등을 계속 했어도 우리 측은 그것이 도발인 것조차 알아채지 못했다. 드디어는 6.15 정상회담 자체가 국민의 등 뒤에서 막대한 돈을 지불한 대가로 성사된 “쇼” 였고 북한은 핵을 개발하고 있었음이 드러났어도 우리 좌파 정치인이나 지식인들은 들은 “우리민족끼리”의 통일지상주의에서 깨어나기를 거부하며 “우리민족이 핵을 가지면 나쁠 것이 없지 않은가”라는 말까지 했으니 핵 위협은 우리가 자초한 것이지 다른 누구를 나무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역사 바로세우기”라는 미명아래 반공국가 대한민국의 역사를 뒤 짚고 지우기에 전력하던 사람들이 드디어는 대한민국이 1948년 8월 15일에 건국되었다는 사실까지 부정하고 북한에 가서는 자신을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니라 “남측” 대통령이라고 부르는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뽑는데 성공했으니 그가 말하는 통일과 “평화”가 무엇인가는 생각해 볼 필요도 없는 일이다. 햇볕은 북한이 아니라 대한민국에만 비쳐 모든 경계심을 녹여버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현실로 드러나는 가운데 대한민국의 자유와 번영을 보장해 주었던 무장된 평화는 이제 독재의 공포와 경제의 급격한 퇴락을 골자로 하는 무장해제 평화로 둔갑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처음부터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지켜야 하는 것이 평화라고 말해왔다. 병주고 약주는 식의 처방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바로 그런 무조건적 평화, 곧 노예의 평화라도 불사하겠다는 것이라고 국민 대다수가 동의한다면 이 나라, 이 민족을 구제할 방법은 없다. 그러나 우리가 평화보다 앞세워야 할 가치가 자유이며 자유와 번영을 약속하지 않는 평화는 평화라고 부를 수가 없고 노예의 안위 밖에 될 수 없는 것임을 깨닫는다면 지금이라도 늦지는 않았다. 우리에게 아직 남아 있는 힘을 다 모으고 자유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을 우리와 공유하는 이웃들에게 솔직하게 긴급구호를 요청하면 우리가 평화다운 평화를 지켜 낼 가능성은 남아 있다.

북한문제와 얽히게 된 것은 우리 대한민국을 소련의 영향권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북한문제에 관해 미국의 이해관계나 시각이 지금도 우리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게는 북한의 핵 문제가 주 관심사이지만 우리에게 북한은 핵 이전에도 위협이었고 앞으로도 계속 문제로 남을 것이다. 북한 사람들이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고 김씨왕조가 남한에 대한 야욕을 포기하지 않은 한 우리는 그 위협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다. 곧 진정한 평화란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남과 북이 함께 살아 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지금이라도 우리 대한민국이 다시 우리의 전통적 우방인 일본, 그리고 북한의 핵 때문이 아니라 인권문제 때문에 경제제재를 가하고 있는 모든 유엔 참가국들과의 적극적 공조 체제로 돌아서는 길이다. 그들의 보호 아래서 위기를 넘기고 우리가 체질을 더욱 강화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평화는 우리의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대가 없는 자유 없듯이 대가 없는 평화는 노예의 평화밖에 없다는 것을 이제는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인호 객원 칼럼니스트(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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