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씨 아버지 최덕신은 전 외무장관, 고위급 인사로는 첫 월북한 사례 ‘남한판 황장엽’의 장본인
통일부, "헌법상 거주지 이전 자유 보장 상황...입북·경로·경위 파악 중"
일각에선 기획 월북설 제기...최씨 북한 당국과 교감 있었을 것
최씨, 월북 전 천도교 교주에게 “삶이 핍박하다” 호소

최인국 씨가 북한에 영구거주하기 위해 지난 6일 평양에 도착했다고 북한 대남 선전매체 '우리 민족끼리'가 7일 보도했다. 평양국제비행장에서 최씨가 도착소감을 발표하는 모습./연합뉴스

월북 인사 최덕신(89년 사망) 전 외무장관의 차남 최인국씨가 6일 불법 월북한 것으로 밝혀진 가운데, 통일부는 북한 매체의 보도가 나올 때까지 전혀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통일부는 “헌법상 거주이전의 자유가 있는 우리나라의 체제 특성에 따라서 개별 국민의 소재를 일일이 다 확인해서 파악하고 있지는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상민 통일부 대변인은 8일 오전 정부 서울청사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정보당국을 포함해 사전에 알지 못했다는 게 정부의 공통 입장이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또 최씨처럼 월북한 사례에 대해서도 “현실적으로 정부가 개별 국민의 소재지를 다 파악해서 일일이 확인한다거나 그러지는 않고 있다"며 "따라서 국민의 행적을 추적해서 월북 여부를 확인한다든지, 통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실제로 어려움이 있다"고 해명했다.

앞서 7일 북한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류미영 전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의 아들 최인국 선생이 공화국에 영주하기 위해 7월 6일 평양에 도착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최씨가 6일 평양 국제비행장에 도착해 "가문이 대대로 안겨 사는 품, 고마운 조국을 따르는 길이 곧 돌아가신 부모님의 유언을 지켜 드리는 길이고 그것이 자식으로서의 마땅한 도리이기에 늦게나마 공화국(북한)에 영주할 결심을 내리게 되었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보도를 확인한 뒤에야 최씨의 월북 사실을 알아차렸다.

최씨가 평양국제비행장에 도착한 모습./연합뉴스

최씨의 아버지 최덕신 전 장관은 고위 인사로는 처음 월북해 ‘남한판 황장엽’이라 불린다. 그는 일제강점기 광복군으로 활동하다 해방 후엔 한국 육군 장교를 지냈고, 56년 중장으로 예편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과 갈등을 빚은 뒤 76년 부인 류씨와 미국을 거쳐 1986년 월북했다. 당시 성인이었던 자녀(2남 3녀)는 한국에 놔둔 채였다. 최덕신과 류미영은 북한에서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최씨의 할아버지 최동오는 재북 평화통일 촉진협의회 집행위원으로 활동했으며 김일성의 스승으로도 유명하다.

최씨가 월북 전 국내 천도교 송범두 교령에 “내가 한국서 살기도 힘들고, 할 수 있는 일도 없다”고 토로한 것이 중앙일보 7일 자에 밝혀졌다. 부모의 월북 이후 직장을 10번 넘게 옮겨야 했고, 사실상 제대로 직장 생활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또 “내가 실질적으로 한국에서 할 게 없고 삶이 핍박하다”고 전했다. 생활고를 견디지 못한 게 월북 사유 중 하나인 것으로 보인다.

이날 이 대변인은 최씨의 입북 경로와 동반자 유무 등에 대해 "구체적인 사실관계는 현재 관계기관에서 파악 중"이라고 전했다. 일각에선 최씨의 입북이 ‘기획 월북’일 거라 관측하고 있다. 현재로선 베이징 주재 대사관의 비자를 받고 월북했을 거란 추정이 유력하다.

한 대북 소식통은 “최씨의 월북은 북한 당국과 사전 교감하에 이뤄졌을 것”이라 말했다. 21세기 들어 북한은 체제선전 가치가 있는 이들만 선별해 받고 나머지는 추방하기 때문이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최씨 부모와 조부가 북에서 고위층 인사였던 점이 (입북에)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했다.

안덕관 기자 adk2@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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