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행범 칼럼] 중도(中道)의 허상을 좇는 보수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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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9.07.08 09:23:49
  • 최종수정 2019.07.09 09:15
  • 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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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당 황교안 체제, 중도층 지지 확보 위해 文정부 실책에 대한 편린적 비판에 머물러
한국 중도층의 실체는 '확률 놀음하는 기회주의자'
보수정당, 선거 이전에 안보, 외교, 경제, 교육 등에서 승리해야 중도 표 획득 가능
김행범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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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와 시장경제란 두 이념은 보수를 규정하는 근본 가치이다. 여기에서 정치∙안보∙외교∙교육∙산업∙문화 등에서 구체적 정책들이 연역된다. 그런데 지금 여기에 현재 자유한국당 지도부의 머뭇거림과 혼란이 있다. 그들은 이 가치를 선명하게 표방할 경우 중도층의 지지를 잃을 것을 우려하는 듯하다. 이 때문에 황교안 체제는 당초 기대와는 달리 이 근본 가치를 선명히 주창하기보다 문재인 정부의 실책들에 대한 편린적 비판들에 머무르고 있다.

그들은 암묵적으로 고전적 ‘중위투표자 정리’(median voter theorm)에 사로잡혀 있다. 정당이 선명한 좌파 혹은 우파 이념보다는 중도에 표준을 맞추면 그보다 우파성향 국민의 지지는 당연히 얻으면서 중도층 지지까지 얻어 집권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과거 이명박, 박근혜를 지나며 ‘중도좌파’로까지 규정되었던 당 노선에 다시 미련을 두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는 한국 중도층의 실체를 완전히 잘못 이해한 데서 나온 것이다.

한국 중도층의 실체

한국에서 대중에게 중도의 정책 선호가 있고 이를 반영한 것이 정치라는 근본 믿음이 무너지게 만든 것이 바로 촛불 난동이었다. 그 주역이 중도의 국민이 아니라 노조원들이었음은 그 후 노조세력들이 문재인을 향해 여러 번 그 대가를 요구하면서 이미 들통 난 사실이다. 한국 중도와 정책 산출 간 관련성은 아주 낮다.

한국의 중위∙중간∙중도층의 의미는 정책 선호의 연속선에서 합리적 중간 선호를 가진 사람들이 결코 아니다. 실은 그들도 우파 아니면 좌파의 한쪽이되 어느 쪽이 이길지를 확신할 수 없어서 확률 놀음을 하는 기회주의자이다. 더구나 동쪽 중도는 선별적 복지, 서쪽 중도는 보편적 복지를 지지한다는 괴이한 선호 분포를 보면 한국 중도는 좌우대립에 가리어있지만 지역주의도 견고하다. 이게 한국 중도층이라면 이제 중위투표자 정리의 뜻도 새롭게 정의되어야 한다.

과반수 국민도 아니었던 좌파 군중 및 그 배후 정파에게 왜 중도는 표를 주었는가? 그 세력이 승리했기 때문일 뿐이다. 당시 좌파가 승리했다고 판단할 만한 몇몇 주요 모멘트가 있었다. 헌법재판소가 이 군중 함성에 무너지고 그에 동조한 것, 많은 언론들이 박근혜를 패자(敗者)로 규정한 것, 보수 정치 무리 당 대표의 ‘도장 런(Run)’식 코미디화, 마침내 그들이 분열되어 도대체 좌파에 대항할만한 기반이 붕괴되었다고는 확신을 주는 사태 쯤 되자 대중은 자신이 이런 우파와 한편임이 드러날 때의 수치를 두려워했다. 중도는 마침내 싸우는 양측 중 어느 쪽이 승자이고 패자인가를 급히 가른다. 그리고는 태블릿 PC, 헌법재판소의 담합판결, 구(舊)정권에 대한 혁명재판소식 사법처리 등 정권 찬탈에 따른 수많은 흠결에 대해 가졌던 의심들을 다 털어버리고 명쾌한 믿음을 통해 심리적 안정을 얻고자 했다. 그들은 선거에서 패자인 반(反)박근혜의 패잔병측이 아니라 문재인 쪽에 표를 던져 자신들도 승자 진영에 포함되었음을 표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핵심은 이것이다: 중도가 표를 주어서 좌파가 승리한 것이 아니라 좌파가 승리했다고 여겼기 때문에 중도가 거기에 표를 던진 것.

정치인이 제 이익 특히 재선에 치중하는 모습은 잘 지적하면서 그보다 책임감과 지력(지력)이 높다고 볼 수 없는 중도 대중은 합리성과 책임성을 가진 것으로 믿는 것은 착각이다. ‘민의’, ‘중의’라 포장된 중도층의 의지가 국정을 결정권자 노릇을 한다는 건 낡은 공민 교과서의 얘기다. 투표자들이 국정의 목표와 수단, 양자 간의 최적 조합, 합리성에 공익에 대한 지식과 책임감을 갖춘 사람들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원칙상’(in principle) 그렇다는 것뿐. 그들 또한 충분히 불합리하고 변덕스럽고 비겁하고 공익 아니라 사익을 추구하는 인간들이며 아예 자신의 선호조차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에선 중도가 개입하여 과반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귀착될 가능성이 아주 높아진 진영으로 중도가 사후에 덧붙을 뿐이다. 중도가 원하는 정책 선호에 맞추고자 정당은 딴에는 저울질들을 할지 모르나 오히려 중도는 승자에 빌붙을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정당들에게 되묻고 있다: “우리가 분명하게 가담하게끔, 어느 진영이 확실한 승자인지 명확히 보여 달라” 바로 이게 오늘 한국의 중도의 생존 철학이고 그들을 대변하는 어정잡이 중도 언론의 목소리다.

‘선거 이전’에 이미 승리해야

한국 중도의 성격이 이러하다면 이게 보수 정당에 주는 함의는 무엇인가?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선거 이전에’ 이미 승리해 있어야만 다수의 표를 얻는다. 표를 얻어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링 위에 올라가 사생결단의 격투기를 벌여 특히 중요한 몇몇 전투 모멘트에서 이기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현재 당면한 북한, 일본, 미국 등과의 안보 및 외교, 경제, 에너지, 교육, 선거 등의 정책 분야의 핵심 전투가 관건이다. 그 핵심 전투에서 이기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만 중도는 보수정당을 잠재적 승자로 판단하고는 그 후에 표를 줄 것이다.

관중은 싸움의 승자 혹은 잠재적 승자에게 표를 주려고 하는데, 보수 정당은 관중이 표를 주면 그걸로 경기를 이겨보겠다는 것이다. 지금 자유한국당은 핵심 국정 사안들에서 잠재적 승자라는 확신을 주고 있는가?

권력을 찾아오려는 야당이라면 그 더욱 그런 야성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경기장 안에서 치열하게 싸우기를 주저하며 주변에서 응원 함성 고조되기만 기다리면 이미 진 것이다. 모든 정책들의 좌우 스펙트럼 중 중간 입장을 종합하고는 그걸로 승리할 것으로 기대하는가? 퍼주기에서는 좌파정당들을 결코 이기지 못하고, 시장경제에서도 새벽당, 심지어 바른미래당보다 나은 게 없고, 안보에서도 우리공화당(애국당)을 이기지 못할 어중간한 정강들의 종합세트로는 굳이 기형적 새 선거법 적용 전에라도 군소정당으로 전락할 것이다.

이길 자라는 확신을 주려면 자신이 무엇을 얻고자 싸우는지가 분명해야 한다. 중도의 눈치를 보느라 발꿈치를 든 조심스런 행보로 약게 싸우는 모습에 대해 중도는 자신들을 배려하는 고마운 당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약하고 신념없는 잠재적 패배 정당으로 인식한다. 승자를 결정하는 주체가 아니라 승자에 대한 사후 가담자로 처신해 온 한국 중도의 심성이 그러하다. 애초부터 그런 중도의 비위를 맞추려 함이 승리의 해(solution)가 아니라는 것이다.

보수 가치에 대한 내적 확신이 있는가

보수 정당 스스로도 확신을 갖지 못하는 정책을 대중이 지지하는 일은 없다. 부활의 믿음이 흔들리는 목사가 가르친 복음이 전도의 힘이 있을 리 없다. 정당 스스로 확고한 이념 가치를 확립하고 이에 대한 신앙을 가져야 한다. 자유한국당 의원 중 자유민주∙시장경제를 행인들에게 정확히 갈파할 만한 전도사가 몇이나 될까? 선거 승리는 종국적으로는 표의 수 곧 ‘지지의 양’이 좌우하지만 그 양은 정당 스스로 얼마나 자신의 이념 가치에 대한 내적 확신을 가지고 있는가? 라는 질적 차원, 곧 ‘지지의 깊이’에 달려있다.

러시아의 공산화, 주사파의 한국 정치 장악, 나치의 집권 및 대처의 보수당 집권 성공이 이른바 중도층의 가치 선호에 부합했기 때문에 얻어진 결과가 결코 아니다. 그들은 당 내부적으로 확고한 가치를 먼저 정립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에 다수 지지로 확산할 수 있었다. 확고한 보수 이념의 확립이 언젠가 승리의 디딤돌이 됨은 미국의 골드워터가 보여주었다. 대중은 어떤 가치가 다른 가치를 압도할만한 능력, 선명성 및 상대적 경쟁력을 비교하고, 그 중 자신의 정책 선호와의 부합여부보다는 승자가 될만한 가치를 승인하고 그에 가담하여 안정을 얻으려 한다. 중위 투표자들이 정책을 결정한다기보다는 실은 그들은 정당들이 제시한 정책을 수용할 뿐이라는 것이 실증적으로도 밝혀지기 시작했다. 중도가 아니라 결국 좌-우 두 주체의 싸움이 핵심이다.

보수정당 자신의 이념 가치가 본질이어야 함에도 과거를 보면 권력 잡은 인물이 먼저 있고 그의 구호에 맞추어 사후적으로 당 이념을 두들겨 만드는 버릇이 있었다. 이념성이 상대적으로 약했던 한국 보수 정당은 인물이 이념을 만드는 구조에서 이제 이념이 인물을 찾아내고 거기서 개별 정책들을 연역하는 구조로 바꾸어야 한다. 자유한국당이 정책설계에서 이 점에 얼마나 진지한지는 의문이다.

지금 자유한국당은 과거식의 인물의 우위도 불확실한데도 기껏 여권이 큰 실책을 해주면 그 반사적 이득을 얻겠다고 조심스레 몸사리는 판국이다. 2016 총선에서 당시 보수정당은 “정신 차려라, 한방에 훅 간다”라는 세계 선거 사상 가장 괴이한 구호 밑에서 싸웠다. 이미 승리가 굳어 있으니 몸조심, 입조심이나 하자는 수비형 선거의 극단. 이념적 지향 가치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구호는 저주가 되어 고스란히 자신들에게 이루어졌다. 지금 모습도 유사하다. 황교안 체제는 자신의 이념 가치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현직 여당이 타이틀 방어라도 하는듯한 괴이한 ‘수비’ 자세이다. 이런 소심한 전략으로는 선거 이전에 이미 게임은 끝났다.

자유민주∙시장경제 이념 가치를 먼저 굳건히 확립하라. 실체조차 모호한 중도의 유령에 매여 위 근본 가치를 희석한 정책 및 모호한 인물들 끌어들이는 어정잡이 정당이 되면 그게 무슨 흡인력이 있나. 지금 보수 정당의 최우선 과제는 국민을 설득하기 이전에 그들 스스로가 자유민주∙시장경제 이념에 대한 선명한 믿음을 확립하는 것이다. 그 다음, 그걸 위해 몇 가지 중요 전투에서 사생결단으로 싸워서 선거 이전까지 거의 이겨주어야 하고, 그리하여 잠재적 승자라는 믿음을 주어야한다. 그에 중도층이 사후적으로 가담한 상태에 이른 때에 비로소 한국 상황의 중위투표자 정리가 성립되는 셈이다.

김행범 객원 칼럼니스트(부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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