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보복의 근본 원인은 경제가 아니라 과거사 갈등...반면 靑은 실효성 없는 경제적 대책만 강구
靑, 내심 예전처럼 美가 나서주길 바라는 눈치

연합뉴스

일본이 수출제한 조치를 4일 시행하며 한국 경제가 난관에 부딪혔다. 실무 부처가 뒤늦게 수습에 나섰지만, 사태를 해결할 대안과 장치는 보이지 않는다. 청와대에선 전례를 언급하며 미국이 중재해주길 바라는 모양새다.

일본은 지난해 10월 대법원에서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내린 지 9개월 만에 보복을 시작했다. 한국이 일본에 의존하는 생산 장비와 반도체 소재 수입을 전면 차단했다. 그러자 정부는 일본의 조치가 자유무역 정신을 위배한다고 판단해 WTO(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하는 방침을 내렸다. 하지만 WTO 분쟁 해결절차 상, 첫 번째 조치인 양자협의를 일본에 요청하기까지 수개월에서 1년이 걸린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기업들은 많아야 3개월 치의 핵심 소재 분량을 가지고 있다. 제소에 이긴다 해도 그때까지 한국 기업은 손 놓고 기다릴 수밖에 없다.

정부가 갈등의 본질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무역갈등은 일견 경제 문제로 보이지만, 그 뿌리에 일제의 강제징용 배상이라는 과거사 대치가 있다. 이낙연 총리가 7일 장관들을 소집해 대응책을 논의한 것이며,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재벌 총수들을 불러 일본 대응의 ‘공동전선을 구축한다’ 밝힌 것을 두고, 정계 안팎에서 근본 원인을 외면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3일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답변을 준비하고 있다. / 연합뉴스

결국 사태 해결의 키는 외교부가 쥐고 있다. 하지만 외교부는 일본에 눈길도 주지 않고 있다. 그 대신 한·일 관계가 악화할 때마다 미국이 나선 전례를 상기하며, 이번에도 미국이 중재해주길 바라는 눈치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6일 조선일보를 통해 "수출 규제는 미국 산업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만큼 트럼프 행정부가 조만간 중재자로 나서지 않겠느냐"고 했다. 전임 오바마 행정부는 위안부 문제로 한·일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2014년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에서 한·미·일 정상회의 개최를 주선했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과정에서도 막후 조정자 역할을 했다. 이번에도 그 역할을 기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은 미국이 중재해 2015년 한·일이 합의한 위안부 협상을 파행시켰다. 그런데 지금 와서 갈등을 해결해달라고 미국에 요구하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뒤따른다. 또한 트럼프 행정부는 한·일 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처해왔다. 미 국무부는 "미국은 한·일 간 3자 협력을 더욱 강화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며 원론적 입장을 고수했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주도한 몇 차례 한·미·일 정상회담이 특별한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올해만 한·미 정상회담과 미·일 정상회담이 열렸지만, 한·일 관계는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미국의 중재 말고는 일본과 갈등을 해결하는 데 뚜렷한 대안이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라중일 전 주일 한국대사는 5일 한국일보에 “당분간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말고 일본의 동태를 파악하며 미국의 중재가 가능한지를 타진하는 게 지금으로선 현명한 대응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는 5일 국회에서 “지금이라도 톱다운 외교를 가동하고 동맹인 미국을 움직여야 한다”며 “미국의 힘이 필요할 때 미국을 움직이는 것이 우리 외교안보팀이 해야 할 일”이라고 밝혔다. 결국, 갈등의 당사자인 우리는 미국이 어느 시점에 중재자 역할을 자처할지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안덕관 기자 adk2@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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