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위한 정부'라더니 금수저를 '다이아 수저'로 만들어주나
-文, "금수저가 主敵"이라더니 여유있는 계층에 '아파트 로또' 제공
-특목고 폐지하면서 '강남 8학군' 부활.집값 급등

 

“같은 흙수저 처지에 왜 제가 주적(主敵)입니까? 금수저들을 주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토론 당시 홍준표 당시 후보에게 했던 발언이다. ‘수저론’을 들고 재산의 크기로서 인간을 서열화하고, 재산이 적은 사람은 재산이 많은 사람을 주적으로 삼아야 한다는 인식에 많은 국민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문재인 정부는 스스로 '서민의 대변자'로서 치솟는 집값을 잡겠다며 작년부터 부동산 규제 정책을 시행했다. 하지만 반년이 지나 활짝 웃게 된 것은 서민들이 아닌 듯 하다. 문정부가 의도했던 것과는 반대로 자산가들의 집값, 특히 강남의 집값이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폭등하며 ‘금수저들’이 ‘다이아수저’로 가는 길이 열렸다.

정부가 집값을 잡겠다고 연일 강조했고, 특히 강남을 투기지역으로 지정해 집중 규제했는데 어떻게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일까? 문정부의 부동산 헛발질을 들여다본다.

●분양가 규제: 금수저들 고급 아파트 싸게 분양 받고, 아파트 가격은 로또 수준

문재인 정부는 현재 고분양가로 인한 주택가격 상승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주택도시보증공사(HUG)를 통해 분양가격을 통제하고 있다. 이로 인해 강남 등 주택 수요가 많은 지역이나 고가(高價)주택이 주로 포진한 지역은 아파트 시세와 분양가의 상승 폭 차이가 2배가량으로 벌어졌다. 이로 인해 ‘금수저들’은 고가 주택을 낮은 가격에 분양 받고 막대한 시세차익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서울 강남지역이나 고가 주택 지역은 최소 10억 ~20억 원대의 분양대금을 당첨자가 스스로의 힘으로 마련해야 하는 까닭에 (분양가 9억원 이상은 주택 가격 상승 방지를 위한 규제로 중도금 대출이 되지 않는다) 부모로부터 넉넉하게 재산을 물려받은 사람들이나 현금 부자들이 청약에 몰리고 있다.

지난 2016년 HUG와 분양가를 놓고 '줄다리기'를 하던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디에이치아너힐즈'(개포주공3단지 재건축)는 3.3㎡당 평균 분양가를 4천400만원대에서 4천137만원으로 300만원 이상 낮춰 분양승인을 받았다. 당초 업계의 예상보다 가격이 내려가자, 청약경쟁률이 100대 1이 넘을 정도로 수요가 몰렸다. 2019년 8월 입주인 이 아파트의 35평 매매 가격이 6일 현재 약 20억원이다. 분양가가 약 13억원이었으니 완공되기도 전에 7억원의 이익을 본 것이다.

작년 9월에는 서울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 센트럴자이'의 평균 분양가가 3.3㎡당 4천250만원으로 책정됐다. 당초 예상 가격인 4천600만~4천700만원보다 낮은 것은 물론 2016년 1월 분양한 '신반포 자이'보다도 분양가가 낮게 책정되자 '로또 아파트'라 불렸고 1순위 청약경쟁률은 평균 168.08대 1을 기록했다.

최근 HUG로부터 분양보증 '퇴짜'를 맞은 용산구 한남동 외인아파트 부지의 고급주택 '나인원 한남'은 분양가 규제가 현금부자에게만 이익을 안겨줄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되고 있다.

정부가 제시한 부지매입 비용 자체가 높았고 용적률이 일반 아파트보다 낮아 분양가 최고 기록을 깰 수밖에 없는 곳이라는 분석이 많았지만, HUG는 강남 집값 자극을 우려해 분양보증 불승인을 했고 시행사인 디에스한남은 분양가 하향 조정을 논의 중인 상황이다.

이 단지는 슈퍼 리치들을 위한 고급빌라 느낌의 아파트를 콘셉트로 정했으나 HUG의 분양가 통제를 받게 되면서 분양가가 낮아지는 만큼 프리미엄은 더 커지는 '로또 아파트'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과도한 분양가 통제가 아파트 투기 열풍을 부추기는 역효과를 내고 오히려 돈 있는 사람들에게 '로또'의 기회를 안겨주는 측면이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수목적고 폐지: 다시 떠오르는 강남 8학군, 그리고 집값

8.2 부동산 규제 이후 강남 집값의 고공행진은 언론에서 연일 보도됐다. 이런 가운데 정부의 교육정책이 강남 집값 상승을 견인한 핵심 원인이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올해부터 자율형사립고(자사고)와 외국어고(외고)가 일반고로 전환된다. 양질의 교육환경을 찾는 학부모들은 일제히 강남지역에 다시 주목하고 있다. '명문고' 진학이 가능하고 학원 시설이 잘돼 있는 강남 등지로 수요자들이 다시 몰리는 것이다.

대치동의 한 중개업소 사장은 "강남 집값을 잡겠다는 정부가 자사고 폐지 방침을 내놓고 과거 강남 8학군 시절로 되돌아 간다니 엇박자도 이런 엇박자가 없다"며 "우리나라 학부모들의 교육열을 가볍게 본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한 교육 전문가는 “자사고는 강남 쏠림을 막기 위해 이명박 정부 때 도입된 정책이다”라며 “강남 집값을 잡겠다는 정부가 거꾸로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도 “서울 여러 곳에 자사고와 외고가 세워져 좋은 학군에 대한 수요가 분산됐었다. 정부가 이들 학교를 폐지한다고 하니 학군 프리미엄이 다시 강남으로 집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권교수는 “정부가 부동산 규제로 강남 주택의 공급을 줄이고, 자사고 폐지로 수요를 늘렸다”며 “강남 집값 상승에 불이 붙은 건 당연한 결과”라 덧붙였다.

금수저와 강남을 잡겠다는 정부가 오히려 강남의 입지를 공고히 해주고 있다는 해석이다.

●강남 희소가치 상승. 고가 주택과 저가 주택 차이 더 벌어진다.

정부는 8.2 부동산 대책으로 잡히지 않은 집값을 잡기 위해 올들어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와 재건축 연한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강남지역에 공급 부족 시그널을 줌으로써 집값 상승을 부채질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강남에 공급을 늘리는 수단은 재건축밖에 없다”며 “재건축을 규제하게 되면 공급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게 되고 이는 결국 강남 주택의 희소가치를 높이는 결과만 얻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영진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팀장은 “정부가 재건축 연한을 늘릴 경우 의도치 않게 이미 재건축이 진행 중인 아파트 단지로 수요가 집중될 수 있다”며 “재건축 연한 40년을 이미 채웠거나 조합설립인가 등 사업이 어느 정도 진행된 단지들의 가격이 지금보다 더 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송파구 잠실주공 5단지,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대치동 은마아파트 등의 가격이 더 급등할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 강남 재건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가격이 급등하면서 고가주택과 저가주택 간 가격 차이도 크게 벌어지고 있다.

KB국민은행이 4일 발표한 월간 부동산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당 아파트 매매가격 5분위 배율은 3.8배로, 국민은행이 조사를 시작한 2016년 1월 이래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

5분위 배율은 전국의 아파트를 가격순으로 5등분해 상위 20%의 평균값(5분위 가격)을 하위 20% 평균값(1분위 가격)으로 나눈 것으로, 배율이 높을수록 가격 격차가 크다는 뜻이다.

분위 배율은 지난해부터 크게 높아졌다. 지난해 1월 전국 1분위 가격은 ㎡당 191.1만원, 5분위 가격은 640만원으로 5분위 배율이 3.3배 수준이었으나 6월에는 1분위 191.7만원, 5분위 662.6만원으로 3.5배로 뛰었다. 올해 1월에는 1분위 190.6만원, 5분위 715.4만원으로 무려 3.8배에 달했다.

서울 아파트 5분위 배율도 지난달 3.1배로 조사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서울은 지난해 1월 1분위 437.3만원, 5분위 1천225.2만원으로 2.8배 수준이었으나 올해 1월에는 1분위 466.4만원, 5분위 1천467.6만원으로 5분위 배율이 3.1배로 뛰었다.

실제로 저가와 고가주택 가격 차이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1월 전국 1분위 평균 아파트 매매가격이 1억1천805만원에서 올해 1월에는 1억1천840만원으로 35만원 오르는 데 그쳤으나 전국 5분위 평균 아파트 매매가격은 같은 기간 5억5천492만원에서 5억9천971만원으로 4천478만원이 올랐다.

서울에서도 같은 기간 1분위 평균 아파트 매매가격이 2억8천115만원에서 3억50만원으로 1천935만원 오를 때 5분위 평균 아파트 매매가격은 11억8천35만원에서 13억4천610만원으로 무려 1억6천575만원이나 급등했다.

지난달에는 전국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 단지 50곳의 시가총액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체 가구의 시가총액이 가장 높은 상위 50개 아파트 단지 시가총액을 지수화한 'KB 선도아파트 50지수'는 지난 1월 135.3으로 전월 대비 4.23포인트 올랐고, 1년 전보다는 무려 21.15포인트 상승했다.

양지영 R&C 연구소 소장은 "최근 정부가 강남권 집값을 잡기 위해 규제 강화를 꺼내 들었지만 오히려 강남 매물에 희소가치가 부여되면서 고가아파트가 크게 상승하고 5분위 배율이 높아진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서민을 위한다는 정부정책이 부유한 사람들만 더 부유하게 만들며 양극화를 더 심화시키는 것은 아이러니지만 시장(市場)의 논리를 무시한 '탁상 행정'의 필연적인 결과라고 상당수 경제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김민찬 기자 mkim@pennmike.com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