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해방을 광복절로 기념하는 것은 엉뚱한 날 생일잔치 치르는 격

김병헌 국사교과서 연구소장
김병헌 국사교과서 연구소장

우리나라에는 3.1절, 제헌절, 광복절, 한글날, 개천절과 같은 5대 국경일이 있다. 이 중 광복절(光復節)에 대한 <표준국어대사전>의 풀이를 보면 “1945년, 우리나라가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빼앗겼던 나라의 주권을 다시 찾은 날”이라 하였다. 이러한 풀이와 같은 취지에서 역대 정부에서는 매년 8월이 되면 ‘광복절’이라는 이름으로 1945년 8월 15일을 기념하는 경축 행사를 거행해 왔다. 그러나 이는 아래와 같은 이유에서 명백한 잘못이다.

첫째 광복절의 ‘광복(光復)’은 ‘빼앗긴 주권을 도로 찾음’이라는 뜻의 단어로 1945년 8월 15일에 있었던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1945년 8월, 미국의 원폭 투하로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함으로써 우리는 36년간의 일제의 압제에서 ‘해방(解放)’되었으나 곧바로 미군정(美軍政)으로 이어져 우리의 주권을 회복하지 못하였다. 해방은 되었지만 주권 회복이라 할 수 있는 광복을 이룬 것은 아니다. 이는 1945년 해방 이후 1948년까지 이날을 ‘해방기념일’이라 하고 ‘해방기념가’를 제정하여 경축하였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둘째, 국경일 제정과정에서 광복절은 1948년 8월 15일을 기념하기 위한 날임을 분명히 하였다. 대한민국이 정식정부를 수립하여 세계만방에 독립국가임을 선포한 이듬해인 1949년 5월 24일, 정부는 국무회의에서 ‘국경일에 관한 법률안’을 통과시켰다. 이 때 통과된 4대 국경일의 명칭은 ‘3.1절’, ‘개천절’, 그리고 ‘헌법공포기념일(7월 17일)’과 ‘독립기념일(8월 15일)’이었다. 그런데 이 법률안은 국회의 심의과정에서 모두 세 글자로 통일되어 헌법공포기념일은 ‘제헌절(制憲節)’로, 독립기념일은 ‘광복절’로 수정되어 10월 1일 국경일에 관한 법률로 공포하였다. 즉 광복절은 애초에 독립기념일로 그날은 바로 1948년 8월 15일을 기념하는 날이었다.

셋째, 광복절 노래 제정과정과 가사에서 광복절은 1948년 8월 15일을 기념하는 날임을 명시하였다. 1949년 10월 1일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공포한 정부는 같은 달, 전 국민을 대상으로 국경일을 경축하는 노래 가사를 모집하였다. 이 때 광복절 노래에 대한 요강에는 ‘대한민국이 정식으로 독립을 선포하고 발족한 기념일(8월 15일)’이라 하였다. 그러나 가사를 모집한 결과 당선작이 없어서 위당 정인보선생에게 위촉키로 하였으며, 이후 문교부는 1950년 4월 27일에 아래와 같은 광복절 노래를 제정 발표하였다.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 기어이 보시려던 어룬님 벗님 어찌하리

이날이 사십년 뜨거운 피 엉긴 자최니 / 길이길이 지키세 길이길이 지키세(1절)

여기서 ‘이날이 사십년’이라는 가사는 우리가 주권을 상실한 1910년 한일합병으로부터 독립을 선포한 1948년까지 40년을 나타내는데 이는 일제 36년과 미군정 4년을 합한 해수다. 만약 1945년 8월 15일을 광복이라 한다면 40년을 거슬러 1905년 을사조약을 체결한 해에 국권을 상실했다는 어처구니없는 역사왜곡이 벌어진다.

1945년 해방을 광복절로 기념하는 일은 개인의 경우 자신이 태어난 날이 아닌 엉뚱한 날에 생일잔치를 치르는 것과 같다. 나라의 생일조차 모르고 엉뚱한 날에 대대적인 생일 축하 행사를 거행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뿌리 깊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듯이 근본이 튼튼한 나라는 외세에 흔들리지 않는다. 반대로 근본이 없는 나라는 지극히 사소한 내우(內憂)와 외환(外患)에도 쉽게 위난(危難)에 처해질 수 있다. 우리는 우리나라의 생일인 광복절을 제자리로 돌려놓아 근본을 바로 세워야 한다. 근본을 바로 세우는 것이야말로 국가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길이고 우리가 자유대한민국의 국민임을 자부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김병헌(국사교과서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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