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활 칼럼] 文정권 '적페청산' 구호에 박수칠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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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8.02.06 09:09:26
  • 최종수정 2018.12.08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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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정의사회 구현’ 김대중 ‘제2의 건국’의 초라한 결말
현 정권 '적폐 청산’ 구호의 본질은 내로남불式 반대세력 숙청
출세에 눈멀어 ‘정권 코드에 부역’하는 검사와 판사들
“간신은 碑를 세워 영원히 기억하게 하라” 정약용의 경구를 생각한다
권순활 전무 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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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 한국에서는 정의(正義)’라는 구호를 자주 접할 수 있었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국정 목표로 정의사회 구현을 내걸었다. 관공서나 경찰서 앞에도 큼지막한 글씨로 써놓은 서슬퍼런 권력의 국정 슬로건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신군부가 급조한 여당의 이름은 민주정의당이었다.

1981년 대학에 입학한 필자는 당시 정의사회 구현이란 슬로건을 접할 때마다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정권의 태생적, 절차적 정통성마저 의심스러운 권력이 다른 단어도 아니고 정의를 운운하는 것에 강한 거부감이 생겼다이 같은 국정 목표는 곧 지식인과 대학생, 양식 있는 상당수 국민 사이에서 조소와 냉소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뒷날 언론계에서 30년 가량 몸담고 세상을 좀더 종합적으로 보면서 적어도 경제 분야에서는 전두환 정권이 한국 사회에 남긴 공로도 일정부분 인정하고 평가하게 됐다. 물가 안정 속의 고도 성장이나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도 지키고자 노력한 재정건전화 의지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당시 정권이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슬로건을 국정 목표로 내건 것은 코미디에 가까운 패착이었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외환위기의 와중에서 대선에서 승리해 1998년 출범한 김대중 정권은 2의 건국을 표방했다. 김대중은 그해 8월 광복절 경축사에서 산업화와 민주화의 저력을 바탕으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완성을 위한 국정의 총체적 개혁이자 국민운동으로 2의 건국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두 달 뒤인 10월에는 2의 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가 발족했다.

제2 건국위원회 1기 대표공동위원장에는 변형윤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가 임명됐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등 한국의 경제기적 역사를 사사건건 폄훼하고 지금까지도 한국의 좌파세력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경제학자다. 김대중 정권이 내건 2의 건국이란 말에는 8.15 해방 후인 1948년 탄생한 이승만 초대 정부 외의 역대 정권은 모두 정통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독선이 은연중에 깔려 있었다. 다만 김대중도 요즘 집권세력과는 달리 대한민국의 1의 건국1948년이 아니라 1919년 임시정부라는 식의 주장까지는 차마 하지 못했다.

권력의 주도세력이 확 바뀐 김대중 정권에서 2의 건국위원회에 참여한 사람들이 신()권력과 코드가 맞는 주변 인사들이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완장들'을 둘러싼 잡음이 잇따랐다. 제2의 건국' 구호는 빠른 속도로 국민 사이에서 외면당했다. 구성원들의 자질 문제가 끊임없이 불거졌고 선거용 조직이라는 의혹도 확산됐다. 정권이 야심차게 내건 2 건국위원회는 결국 김대중 정권이 막을 내리고 노무현 정권이 출범한 직후인 20034월 해체됐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뒤 적폐(積弊) 청산'이란 구호가 빈번하게 들린다. 문 대통령을 비롯해 정권 고위 인사들은 걸핏하면 이 말을 들먹이며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한국 검찰 역사상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살아있는 권력의 입맛에 자발적이고 노골적으로 부역'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검찰 고위간부들의 입에서도 적폐 청산이란 말이 공공연히 나온다. 과거와 달리 검찰의 무리한 수사에도 별 저항 없이 구속영장 발부를 남발하거나 중형을 선고하는 상당수 판사도 비슷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현 정권 출범 9개월이 넘도록 진행되는 권력과 검찰의 과거사 파헤치기를 무조건 비판하긴 어려울 것이다. 아무리 혁명 인민위원회를 연상케 한다고는 하지만 명색이 사법시험에 합격한 검사와 판사들인 만큼 어쨌든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행위에 대해 검찰은 영장을 청구했을 것이고 법원은 영장을 발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총체적 진실인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그건 아니다라고 분명히 말한다.

적폐의 사전적 의미는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이다. 그런데 최근 집권세력과 검찰, 법원이 목소리를 높이는 이른바 적폐 청산'은 비()좌파정권인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절만 겨냥하고 있다. 그 이전의 김대중 노무현 정권 같은 좌파정권에서 벌어진 온갖 불법과 비리는 공소시효가 남은 사건들에 대해서도 손을 대는 시늉도 않고 있다

한 가지 더 붙이자. 정상적인 나라 같았으면 '국가반역죄'로 단죄받았을 김대중 정권의 거액의 비밀 '대북(對北) 뇌물 제공'은 제쳐두고라도 이른바 정권별 권력형 비리'를 비교하면 어땠을까. 현 정권에서 한 자리 한 사람들이나 이런저런 이유로 무조건적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은 믿고 싶지 않겠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절보다 게이트 공화국이란 말까지 나오던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 대형 권력형 비리가 훨씬 많았다. 의심스럽다면 그때 신문들만 한번 찾아보더라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과거 검찰이 야당 인사들을 수사할 때는 여론의 반발을 우려해 구색 맞추기라도 했지만 이 정권의 검찰은 최소한의 기계적 균형조차 외면하고 있다. 이런 적폐 청산 수사를 진심으로 인정하고 동의할 국민이 얼마나 되겠는가.

문 대통령이나 이낙연 국무총리, 각 부처 장관, 문무일 검찰총장 등 정부 고위 인사들도 함부로 적폐 청산이란 말은 들먹이지 않기를 바란다. 문재인 정권 1기 내각이나 청와대 구성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현 집권세력이 야당 시절 목소리 높여 주장한 기준을 적용한다면 몇 명을 빼고는 지금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절 고위직 인사(人事)가 있을 때마다 상당수 언론이 맹렬한 비난을 퍼부었지만 냉정히 평가할 때 장관의 자질과 실력, 도덕성 면에서 이 정권은 훨씬 함량미달 인물이 많다. 아무리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 지금 집권세력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하지만 최소한의 양심과 부끄러움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문재인 정권이 집권 후 지난 9개월 이상 소리 높여 외친 적폐 청산의 슬로건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전두환 정권의 정의사회 구현이나 김대중 정권의 2의 건국처럼 공허한 정치구호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나는 본다. 국민이 미망과 환상에서 깨어나면 어쩌면 두 정권보다 더 초라한 몰락이 기다릴 수도 있다. 권력의 코드에 맞춰 최소한의 형평성이나 법원칙도 무시한 무리한 법적용을 남발하면서 3기 좌파정권에서 출세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공직자들의 부끄러운 이름도 한 명 한 명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조선시대 실학자 다산 정약용이 남긴 경구(警句)를 우리 모두 기억했으면 한다. “간신(奸臣)‘은 비()를 세워 영원히 기억하게 하라.”

권순활 전무 겸 편집국장 ksh@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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