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기 합참의장, 지하 벙커에서 회의 마친 후 합참에서 준비하던 보도 자료 배포 중단시켜
사건 경위 알고 있던 해경은 합참 지시 이후 기자들에게 허위 메시지 전달
17일 군 당국도 기자들에게 허위 내용 발표
청와대는 수사기관의 허위 보고에 함구

박한기 합참의장.
박한기 합참의장.

박한기 합참의장이 북한 목선 사태와 관련해 15일 지하 벙커에서 열린 회의에서 최초 브리핑을 해경에게 떠넘기고, 합참에서 준비하던 보도 자료 배포를 중단시켰다는 사실이 29일 밝혀졌다.

이날 회의에는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박 의장을 비롯해 국방부 담당 실장, 합참 주요 본부장들이 참석해 있었다. 또한 사건을 초동수사한 해경 보고서가 회의실에 전파돼 있었다. 이에 따라 합참 전비태세검열실의 최초 보고서에는 '북한 어선이 삼척항에 입항했다'고 명시돼 있었으며, 삼척항 인근 해상 경계를 담당하는 23사단과 동해 1함대의 경계 태세를 지적하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하지만 회의가 끝나고 박 의장은 이번 사건의 최초 발표를 해양경찰청에게 맡기고, 합참에서 준비하던 보도 자료 배포를 중단시켰다. 백승주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날 기자에게 “위기관리 매뉴얼 상 해경이 수사관할을 가지고 있는 게 맞긴 하다”며 "하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고려하면 합참이 직접 나섰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서 "아무래도 해경이 처리하면 사건이 축소돼 보이는 걸 노리지 않았겠는가"라고 지적했다.

15일 해경은 합참의 지시를 받고 오후 2시 10분쯤 기자들에게 SNS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본래 조사한 것과는 달리 '삼척항 입항'이 아니라 '삼척항 인근'이라 썼다. 산책 중이던 민간인이 발견했다는 사실도 삭제하고 ‘조업 중이던 우리 어민이 발견했다’고 대신해 마치 조난 중이던 북한 어민을 우리가 해상에서 구조했다는 인상을 남겼다. 해경이 이처럼 말을 바꿔 허위 보고를 한 것은 24일 한국당 진상조사단에 의해 정부의 지시가 작용했기 때문임이 밝혀진 바 있다.

17일 군 당국도 언론 발표에서 '삼척항 입항'을 '삼척항 인근'으로 바꿔 브리핑했다. 또한 15일 회의에서 지적됐던 23사단과 동해 1함대의 경계 태세 문제와 관련된 사실을 뒤로 하고, 경계 작전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다수 군 관계자들은 29일 조선일보를 통해 "당시 보고서에 '문제가 없다'는 내용은 없었다"며 "그렇게 판단한 건 지휘관의 몫이었다"고 했다.

실제로 군 당국의 언론 발표 현장에 청와대 안보실 행정관이 몰래 참석했다는 사실이 보도를 통해 밝혀진 바 있다. 당시 군 당국은 국방부 출입기자를 대상으로 한 백그라운드(익명) 발표를 진행하고 있었다. 따라서 현장에 있던 다수의 고위급 군 당국자와 국방부 관계자들은 이 행정관이 현장에 있었던 걸 몰랐다고 전해진다. 일각에선 정부의 지침대로 군 당국이 사실을 축소해 브리핑하는지 감시하고 기자들 반응을 살피러 청와대가 보낸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군 당국은 이번 '입항 귀순' 사건에 대한 합동 조사를 현재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귀환 의사를 밝힌 2명을 쫓기듯이 다음날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보낸 상태에서 진상을 규명할 수 있을지 신뢰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들은 2차 조사인 중앙 합동심문도 받지 않았다. 또한 탈북민에 관해서 통상 우리 측에 강하게 항의하는 북한이 이번에 침묵하고 있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많다. 지난 22일 북한 어선이 동해 먼바다로 떠내려 왔을 때 북한 당국은 우리 측에 어선을 구조해 달라고 긴급 요청한 바 있다.

백 의원은 이날 기자에게 “국방부의 셀프 조사는 믿을 수 없다”며 “앞으로 국정조사를 열어 철저한 규명을 통해서 국민들께 사실을 알리겠다”고 말했다.

안덕관 기자 adk2@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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