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청성 "북한은 빈부격차 심한 약육강식 사회. 힘있는 자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 착취한다"
북한 청년들 고교 졸업 후 남자는 11년, 여자는 7년 군대생활...청춘의 황금기를 다 군대에서 보내
"사회에 나와도 일자리가 없어 할 일도 없는데다 통제 가능해 오래 군대에 보내는 것 같다"

지난 2017년 11월 13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귀순한 북한군 병사 오청성(吳靑成, 26) 씨가 24일 오전 10시 펜앤드마이크를 찾아 생방송 인터뷰를 했다. 오 씨는 6.25 특집으로 기획된 이번 인터뷰에서 북한의 사회현실과 귀순 당일의 기억, 그리고 한국에 안착하려는 과정 전반에 대해 이야기했다. 특히 오 씨는 "한국은 누구 탓할 필요없이 열심히 노력하면 되는 사회이다. 그런데 북한은 아니다. 약육강식 사회다"라며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본질을 간명하게 전달했다.

오 씨는 또 북한 청년들은 고등학교를 졸업 한 뒤 "남자는 11년, 여자는 7년 군대에서 보낸다"면서 "일찍 사회에 나와도 한국처럼 일자리가 없는데다 군대에 보내면 통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체제 유지를 위한 거대한 병영사회가 북한이라는, 북한 사회의 어두운 단면에 대해 증언한 것이다.

그는 북한도 빈부격차가 심한데 그것은 힘있는 자들이 힘없는 자를 마구 착취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빽이 있거나 권한을 가진 자들이 갖가지 방법으로 그렇지 못한 사람들로부터 돈을 뜯어내고 이용한다는 것이다.

오 씨는 2017년 11월 13일을 또렷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지프차 속력을 올리며 남하하다가 배수로에 빠졌을 때를 위기로 꼽았다. 후진을 한 뒤 다시 한국쪽으로 가려 했는데 배수로 깊이가 너무 깊었다고 한다. 그는 위기상황에서도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행동해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오 씨는 북한병사들이 쏜 40발의 총탄 중 5발을 맞았다. 이날 펜앤 인터뷰에서 오 씨의 상흔을 볼 수 있었다. 오 씨는 그날 상황을 담담하게 전하며 자신의 몸을 관통했던 여러 부위 중 오른팔을 공개했다. 상당한 크기의 총상임에도 이는 여러 부위 중 가장 경미한 정도라고 한다. 오 씨의 주치의였던 이국종 씨는 오 씨에게 "총알이 스친 심장 주위에 공기가 차서 위태로운 상황이었다"는 얘길 해주었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오 씨는 돌발적으로 귀순했는지 치밀한 계획에 따라 귀순한 것인지를 묻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며 자신은 둘 모두에 해당하는 것 같다는 설명을 했다.

처음 한국정부가 오 씨에게 준 정착지원금은 다른 탈북자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마치 큰 돈 받은 것처럼 수근거리는 세간의 시선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자신은 화폐가치도 몰랐기 때문에 한국정부가 주는 돈을 별 불만없이 썼고 이후 건설현장에서 일하며 실제 생활물가를 체감했다는 것이다.   

지난 4월 이후 공식활동을 시작한 오 씨는 주어지는대로 일하고, 공부하며 건강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오 씨는 이상형이 어떻게 되느냐는 기자 질문에 쑥스러워했다. 앞으로 대학에서 무얼 전공할지 취업 여부를 놓고 고민하기도 해 영락없는 한국 청년 같았다. 하지만 오 씨는 북한의 긴 군복무기간 때문에 자신이 여기서 공부를 다시 시작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오 씨는 낯선 체제에서 새롭게 도전해야하는 삶임에도 진취적 태도를 보였다. 그는 "한국은 노력하면 되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북한은 사회 전체에 뇌물 상납하는 것이 관행화될 정도로 합리적 제도란 게 없는 후진적인 약육강식 사회"라는 총평을 했다. 북한은 노력해도 출신성분과 출신지역에 따라 한계가 분명한 사회라면 한국은 역동적 사회기 때문에 진취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죽다 살아나며 2000cc 이상을 새로 수혈받아 북한 살 때의 피가 거의 없다. 남한사람들의 피가 지금 내 몸에 흐르고 있는 셈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 한국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김진기 기자 mybeatles@pennmike.com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