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경, 15일 사건 접수하고 北 목선에 대한 중요 정보 즉시 청와대에 보고
軍의 17일 허위 발표, 靑은 알고도 방관했다는 의혹 제기돼...軍 발표 내용 전부 왜곡·축소된 걸로 밝혀져
靑은 왜 17일 軍 익명 브리핑에 안보실 행정관을 보냈나?...軍의 은폐·축소 발표 방관한 靑 책임론 확산

자유한국당 김정재 의원이 공개한 해양경찰청 상황센터 상황보고서 1보 캡처 [자유한국당 김정재 의원실 제공]
자유한국당 김정재 의원이 공개한 해양경찰청 상황센터 상황보고서 1보 캡처 [자유한국당 김정재 의원실 제공]

청와대를 비롯해 총리실, 국가정보원, 통일부, 합참, 해작사가 지난 15일 북한 목선이 자력으로 삼척항에 상륙했다는 주요 정보를 해양경찰청 상황센터로부터 불과 19분 만에 보고받은 사실이 20일 확인됐다. 세 차례에 걸친 보고에는 북한 목선이 NLL을 침범해 삼척항 부둣가에 정박한 경위가 비교적 상세히 기록돼 있다.

펜 앤드 마이크는 지난 17일 군 당국이 사건을 왜곡하고 축소해 발표한 사실을 청와대가 알고도 방관했다는 사실을 21일 확인했다.

당초 합동참모본부는 17일 "북한 목선은 해상에서 표류하다 삼척항 인근으로 떠내려왔고, 조업 중이던 우리 어민이 북한 목선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마치 북한 목선이 불가피하게 NLL을 침범해 해상에서 우리 군에 구조된 듯한 인상을 남긴 것이다. 하지만 자유한국당 김정재 의원이 해경으로부터 입수한 상황보고서에 의하면 "북한 목선은 GPS를 달고 있었고 자력으로 삼척항 방파제에 입항했다"는 내용이 명확하게 기록돼 있다.

당시 군 당국은 "발견 지점과 이동 경로는 합동 심문 중이었기 때문에 밝히지 못했다"며 아직 조사 중인 것으로 보고했다. 그러나 북한 목선의 삼척항에 정박했다는 사실을 이미 보고 받아 인지하고 있었다.

또한 군은 GPS 장착 여부를 묻는 질문에 "아니다"고 답했으나 해경 보고서를 통해 '북한 목선 GPS 보유' 내용을 보고 받은 사실이 드러나자 기존의 발표를 뒤집고 이를 시인한 것도 논란이 됐다. 처음부터 북한 목선은 해상 경로를 설정하고 남하할 목적으로 NLL을 침범했는데, 우리 군의 감시망에 구멍이 뚫려 전혀 포착하지 못한 게 이번 사태를 통해 드러난 것이다.

삼척항 방파제에 정박 중인 북한 목선(연합뉴스)
삼척항 방파제에 정박 중인 북한 목선(연합뉴스)

14일~15일 당시까지 해상 기상에 대한 허위 보고도 문제가 됐다. 북한 목선이 해경·해군·육군의 3중 감시망을 뚫고 남하한 것과 관련해 군의 경계태세 실패를 지적하는 비판이 일자, 군은 "경계태세엔 이상이 없다"며 "다만 14일~15일 발견 당시까지 파고가 최대 2m까지 치솟아 근무 요원들이 파도에서 일으키는 반사파로 인식해 2톤급의 소형선인 북한 목선을 레이더가 포착하기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20일 해양부의 관측에 따르면 14일 저녁~15일 오전까지 파고는 평균 0.2m~0.4m로 매우 잔잔해 해상 초계기가 비행할 정도로 기상이 양호했다.

이런 사실이 지적되자 군 당국은 "특정 지점에서 측정하는 기상청 파고 측정과 달리 해군은 함정에서 별도로 식별한 작전기상 측정을 적용하는데 지난 9~15일 동해상 함정의 작전기상 파고는 1.5m~2m로 그것을 적용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문화일보에서 취재한 예비역 해군 제독은 "군의 작전기상 파고는 기상청 자료를 참고해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재반박했다.

북한 목선이 '기관고장'으로 표류해 떠내려왔다는 보고도 허위로 밝혀졌다. 해경의 1차 상황보고서에는 "북한 목선이 6월 10일경 기관고장으로 표류하다 6월 14일경 기관이 수리돼 삼척항으로 입항"했다는 기록이 적시돼 있고, 2차 보고서에는 보다 정확하게 수정돼 13일 오후에 기관을 수리해 6월 15일 오전 6시 30분~40분에 입항했다는 사실이 전파됐다.

북한 목선이 9일 북한 경성에서 출항했다는 19일 국정원 1차 합동신문 결과 역시 왜곡된 발표임이 드러났다. 북한 주민들은 9일이 아닌 5일에 출항했다고 진술했다. 무려 10일간이나 소형 목선을 타고 해상을 표류한 것이다. 5일 함경북도 경성에서 출항해 울릉도 동북쪽 55km에 정박한 뒤 6일 만에 삼척항에 도착하기까지 이동거리는 최소 800km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신인균 자주국방 대표는 펜 앤드 마이크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주민 4명이 어떻게 800km 이상을 항해할 만큼의 유류품과 식량 등을 준비할 수 있었는지 알아봐야 한다. 북한에선 일반 어민이 10일간의 장기 항해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하지도 않고, 일반 어민이 그렇게 많은 유류품이나 식량 등을 구비할 수도 없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한편 북한 주민 4명 중 2명이 '자유 의사에 따라' 지난 18일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복귀한 것에도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 소식통은 "국정원·군·경찰의 1차 합동신문이 끝난 뒤 통일부가 바로 이들을 인수해 북한으로 복귀시켰고, 다른 2명은 귀순 의사를 밝혔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4명이 한 배에 타고 10일간 항해했는데 2명은 복귀하고 다른 2명은 귀순한 사실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상 탈북자의 가족과 탈북 브로커는 큰 처벌을 받는데 목적이 다른 4명이 같이 항해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바다에서 표류하는 어민을 당일에 송환한 전례는 있지만, 이번 사태처럼 입항했을 경우 충분한 조사를 통해 입항 이유가 명확하게 밝혀지기 전에 서둘러 돌려보낸 전례는 없다.

이에 통일부는 조사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북한 주민들의 복귀 의사를 존중한다고 했고, 국정원은 공식 발표자가 함참이라고 했으며, 합참은 조사 주체가 아니어서 할말이 없다고 했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이 불거진 것이다.

여기에 청와대 국가안보실 행정관이 국방부가 기자실에서 익명으로 진행한 17일 브리핑에 참석하고, 이틀 후인 19일 2차 익명 브리핑에도 참석한 사실까지 밝혀졌다. 국방부는 "(행정관이) 왜 그 자리에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일각에선 "청와대가 군의 왜곡·축소 발표에 관여해 지침대로 대응하는지 감시할 목적이 아니겠느냐"는 얘기가 나온다.

대국민사과하는 정경두 국방부장관
대국민사과하는 정경두 국방부장관

문재인 대통령은 20일 정경두 국방 장관을 만나 "(선박이) 북쪽에서 우리 쪽까지 오는 과정을 제대로 포착하거나 경계하지 못한 부분, 그 후 제대로 보고하고 국민께 제대로 알리지 못한 부분에 대해 문제점이 없는지 철저히 점검해 달라" 말했다고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이어 고 대변인은 정경두 국방장관과 이낙연 총리의 대국민 사과가 나온 이날 저녁 브리핑을 통해 북한 목선에 관한 진상을 은폐·축소한다는 복수의 언론 보도를 반박했다. 고 대변인은 해경이 청와대와 국정원, 합참 등에 북한 목선 사건을 신고한 지 19분 만에 상황 보고서를 보낸 사실이 뒤늦게 언론에 알려진 것과 관련,  "청와대 역시 해경으로부터 최초 보고를 받았다"며 "당일 여러 정보를 취합해 해경이 보도자료를 내도록 조치했다. 이는 매뉴얼에 의한 조치"라며 "이 매뉴얼은 북한으로부터 선박 및 인원이 내려올 경우 신변 보호를 위해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지만, 언론 노출 등으로 공개가 필요한 경우 사실관계를 간략하게 설명하라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고 대변인은 군 당국이 언론에 발표한 북한 목선이 '삼척항 인근'에서 확보됐다는 표현을 언론이 문제 삼자, "'삼척항 인근'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해서 사실을 왜곡했다고 하는 것은 틀린 말"이라며 "'항'은 보통 방파제, 부두 등을 포함하는 말로 '인근'이라는 표현은 군에서도 많이 쓰는 용어"라고 했다. 그리고 "내용을 바꾸거나 축소하려 한 것은 아니었다"며 "(언론 등에서) 사실을 숨겼다가 17일에 발표했다고 표현하는 것에 대해서는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군 당국은 이미 허위 은폐 보고를 인정하고 경계 실패에 대한 책임도 인정했다"며 "지금 상황에 군을 감싸려는 청와대의 태도는 이해가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와대가 '삼척항 인근'이 방파제까지 포함하는 군 용어라는 반박에 대해서도 "'인근'이라고 한 것은 북한 목선이 방파제에 이미 상륙했다는 사실에 혼동을 주려는 것 아니겠느냐"는 비판이 뒤따른다. 애초에 군은 17일 "북한 목선이 떠내려왔다"고 했지만 해경 보고서에는 "북한 목선은 기관이 수리돼 삼척항으로 입항했다"는 사실 또한 적시돼 있었다. 

이번 사태에선 당초 군 당국의 사실 은폐 및 허위 보고에 초점이 맞춰져 비판이 일었다. 그러나 북한 목선에 최초로 접근한 해경이 청와대를 비롯한 상위기관에 주요 정보를 보고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군 당국의 허위 보고에 청와대가 적극 관여하거나 방관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데 비판의 초점이 옮겨가고 있다.

안덕관 기자 adk2@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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