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수천억 예산 편성・집행 가능한 위원회 만들면서 '자기 사람' 앉힐 수 있는 내용 넣어...민주당서도 반대

지난해 지방선거 당시 유세에 나선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 후보. (사진 = 연합뉴스)
지난해 지방선거 당시 유세에 나선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 후보. (사진 = 연합뉴스)

잇단 ‘내로남불’ 행동을 지적받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예산안 편성 등에 시민 참여를 확대시키겠다며 추진해온 소위 ‘서울민주주의위원회’를 만들려다 역풍(逆風)을 맞고 있다. 위원회 참여 인원이 박 시장의 측근이 대부분으로 ‘비민주적’일 뿐더러, 관여하는 예산 규모도 지나치게 커 더불어민주당 시의원들 마저도 해당 조례안에 전원 등을 돌렸다.

19일 서울시의회에 따르면, 시의회 경제기획위원회는 지난 17일 서울민주주의위원회 설치 관련 조례개정안을 만장일치로 부결시켰다. 이 조례안은 박 시장이 전날(16일) 발의한 것으로, 박 시장이 추진해온 소위 ‘시민민주주의’의 일환이다. 위원회는 민간인과 공무원 등 15명 안쪽으로 구성되는데, 박 시장은 이 위원회에 올해 2000억 규모의 시 예산과 편성, 집행 등을 맡게하려는 내용을 담았다. 박 시장은 위원회가 예산에 간섭하는 규모도 갈수록 늘린다는 계획(2022년까지 1조원)이다.

그런데 박 시장과 ‘같은 편’에 서 활동해온 다수 민주당 서울시의원들(전체 110석 중 102석)마저 이 조례안을 반대하고 나섰다. 박 시장이 시민 시정 직접참여를 확대한다는 명목으로 시의회 역할과 권한을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의회 관계자는 19일 통화에서 “의회에서는 (민주주의)위원회의 권한이 파격적으로 큰데도 의회와 상의 없이 졸속으로 개편한다고 지적해왔다”며 “시장이 사실상 편성하는 위원회가 예산을 심의하면 시의회는 속칭 ‘밥그릇’을 빼앗기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조례안에 담긴 위원회 선임 과정은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알려졌다. 임기 4년인 위원 위촉에는 ▲시의회 추천인사 ▲구청장협의회 추천인사 ▲시 고위공무원 ▲시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람 등의 요구조건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위촉 자체는 박 시장이 맡는다. 박 시장의 눈에 들어온 내・외부 인사들이 천억원 단위 시 예산을 ‘쥐락펴락’ 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박 시장은 비판에도 아랑곳않는 모습이다. 그는 19일 오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자치분권 사회혁신 포럼’에서 “시의회의 압도적인 다수가 아무리 같은 당 출신이라도 토론하고 문제제기할 수 있는 의회여야 한다. 시의회 권한을 패싱하는 게 아니다”라며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방 정부로 이후 주민으로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 국민의 참여를 늘릴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려는 것이다. 다양한 제안과 누구나 투표를 가능하고 이후 예산까지 배정하는 위원회가 통과하면 세계 최초의 일상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라고 포장했다.

김종형 기자 kjh@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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