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빈 중앙일보 전 사장 "홍석현 허락받고 1996년 북한에 거액의 달러 현금 두번 건넸다"
권영빈 중앙일보 전 사장 "홍석현 허락받고 1996년 북한에 거액의 달러 현금 두번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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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씨, 북한으로부터 성금 부탁 받고 100달러 지폐 다발 골프채 가방에 가득 담아 마카오에서 전달
"못받았다"는 억지 주장에 같은 방식으로 두번이나 달러 현금 제공...홍석현 사장, 홍라희 씨는 북한서 각별한 대접 받아
남북교류 관련법에 외환관리법 위반까지 저질렀지만 김대중 정부는 눈 감아 줘...북한 삼성에 "사업하라" 압박
원래는 누구보다 열렬한 햇볕론자, 하지만 북한 실체 알고 나서 反햇볕론자 돼...홍석현도 햇볕론자
권영빈 중앙일보 전 사장
권영빈 중앙일보 전 사장

권영빈 전 중앙일보 사장이 1996년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 시절, 중앙일보 홍석현 당시 사장의 허락 아래 북한에 거액의 현금을 달러로 전달했다고 폭로해 파문이 일고 있다.

권 씨는 17일 펜 앤드 마이크와의 통화에서 "더 이상의 언론 인터뷰는 사양한다. 양해해 달라"고 말했다. 

권 씨는 지난 15일 출간한 책 ‘나의 삶 나의 현대사’에서 1996년 여름 당시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이었던 자신이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의 전금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회위원회 부위원장을 접선해 성금을 부탁 받았고, 국내로 귀국한 뒤 홍 사장의 허락을 받아 ‘쌀 보내기 성금’이란 명목으로 거액의 돈을 건넸다고 밝혔다. 

당시 권 씨가 발급 받은 조선인민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증
당시 권 씨가 발급 받은 조선인민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증

권 씨는 “성금의 1차 전달은 마카오에서 이뤄졌다. 유용구 당시 중앙일보 차장이 동행해 골프채 통 속에 현금 달러를 넣고 배를 타고 마카오로 떠났다. 무슨 밀수꾼처럼 도박의 천국이라는 마카오 시내 호텔을 들어갈 때는 등골이 좀 오싹했다. (북한 쪽을 대표하는) 박경륜(재일교포 사업가 삼천리 회장), 이창희(재미교포), 전금철 그리고 우리 일행이 마주 앉아 약간의 담소를 마치고 성금 전달을 끝냈다. 영수증을 받을 일도 아니고 골프채 통을 넘기면서 일은 끝났다”고 돈 전달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북한에 뒷돈을 건넨 것도 불법이지만 달러 현금을 밀반출 함으로써 외환관리법 위반까지 저지른 셈이다. 권 씨는 17일자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대북 사업의 성격상 돈을 주는 것 이외에 다른 수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또한 골프채 통에 100달러 지폐를 넣었다고 했지만, 정확하게 얼마를 넘겼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100달러 지폐 다발을 골프채 통에 넣으면 수백만달러가 들어갈 수 있어 거액의 뒷돈이 넘겨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권 전사장은 달러를 준 뒤에 `배달사고'가 났다는 북한 측의 주장을 접했다고 밝혔다.

그는 한 달쯤 뒤 성금을 못받았다며 다시 보내라는 통지를 받고 서둘러 베이징으로 가서 북한 측 관계자를 만났는데 "재미교포인 이창희가 골프채 통을 들고 떠났는데 중간에 미국으로 가면서 성금을 가지고 튀었다. 다시 성금을 달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권 씨는 방북을 앞둔 상태라 다시 돈을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배달사고 여부도 확인하지 못한 채 울며겨자먹기로 두번이나 돈을 건넨 것이다.

“그쪽이 아니라고 우기면 아닌 것이고 답답한 쪽은 우리일 뿐이다. 다시 성금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중앙일보 홍석현 사장은 이런 불가측성 사고가 빈발할 때마다 나를 신임했고 더 이상 캐묻지 않고 다음 일에 힘을 몰아주었다”고 권 씨는 밝혔다. 홍석현 사장의 든든한 후원으로 어렵사리 대북 사업을 성사시켰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방북 사업이 끝난 1년 뒤 돈을 빼돌렸다던 이창희가 서울에 와 권 씨를 다시 찾았다. 이창희 본인 명의로 성금을 받았기 때문에 미국 국세청에서 엄청난 세금을 부과하리라 예상하고 미리 성금 일부를 챙겼지만, 막상 세금이 그보다 더 많이 나왔다는 얘기였다. 그러니 중앙일보가 이를 메꿔 달라고 요청했고, 안 그러면 국정원에 고발하겠다고 했다.

권 씨가 제의를 거절하자 이후 이창희의 출입이 잦아들었고, 후일 취재한 결과 그가 정말로 국정원에 성금관련 사실을 신고한 게 드러났다고 한다. 그러나 권 씨에겐 아무 일도 없었다. 그는 김대중 정권 시절 당국이 문제를 키워 사안을 복잡하게 만들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덮었으리라 짐작한다고 말한다.

제3차 방북단, 백두산 천지에서왼쪽부터 유영구(통일문화연구소 차장), 유흥준(전 명지대 교수), 고은(시인), 권영빈, 김주영(소설가), 김형수(조선일보 사진기자)
제3차 방북단, 백두산 천지에서왼쪽부터 유영구(통일문화연구소 차장), 유흥준(전 명지대 교수), 고은(시인), 권영빈, 김주영(소설가), 김형수(조선일보 사진기자)

권 씨는 김대중 전 대통령보다 먼저 ‘햇볕론’을 설파한 언론인이자, 광복 후 처음으로 북한을 공식 취재한 언론인이다. 그는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기 전부터 '햇볕론'을 주장했으며 홍석현 회장도 같은 생각이었다고 밝혔다.  연민과 뜨거운 가슴으로 북한에 접근하면 적대관계는 개선되고 그것이 통일로 가는 멀고도 바른길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00달러짜리 달러 고액권을 두번이나 골프 채 통에 담아 건넨 끝에 중앙일보는 1997년부너 1998년까지 '북한문화유산답사'라는 사업을 진행했다. 북한답사는 3차로 끝났는데 두달 뒤인 1998년 8월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과 홍라희(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부인. 홍석현 사장의 누나)씨를 위한 추가 방북이 있었다.

권 씨는 "북한 쪽에서 삼성을 담당하는 김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이 '삼성은 돌다리를 두드리며 올 듯 올 듯 하다가는 돌아선다. 어찌 그모양인가'라며 노골적으로 (삼성의 협력을 얻어내라고) 나를 몰아세웠다"며 "작년 평양 옥류관에서 냉면을 먹던 우리 기업 총수들에게 이선권 조평통 부위원장이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라고 윽박지르던 상황과 유사했다"고 말했다.

권씨는 홍석현 회장이 북한에 어떤 약속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홍 회장에 대한 북한의 대접은 월불작가 이기영의 아들인 이종혁 당시 조평통 부위원장이 직접 영접할 정도로 매우 각별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답사가 끝나고 불과 보름도 안 돼 북한이 ‘광명성 1호’를 발사했을 때는 완전히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고 권 씨는 고백했다. 지금의 북핵, ICBM 문제와 연결되는 시발점이 광명성 1호였다. 

권 씨는 광명성 1호 발사 후 이를 비판하는 칼럼을 썼는데 보름쯤 후 북한에서 홍석현 사장과 함께 만나자는 팩스가 왔다고 했다.

그는 "무슨 용건인지 모르고 (홍사장과 같이) 갔다. 북에서는 이종혁과 김철이 나와 있었다. 김철이 ‘공화국이 당신네에게 얼마나 큰 혜택을 안겨줬는데 소장이라는 자가 우리를 비판하는 글을 버젓이 발표할 수 있나. 그것도 광명성 별명을 지닌 최고지도자를 향해 이게 말이 되느냐’며 소리쳤다. 이게 홍 회장과 나를 상하이까지 불러낸 용건이었다.”고 말했다. 이후 북한과의 관계가 끊어졌다.

권 씨는 “나는 ‘반(反)햇볕론자’로 바뀌었다"며 "교류협력을 하고 지원해본들 북한 정권은 바뀌지 않는다. 물론 전쟁보다 평화를 원치 않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이를 달성하려면 현실적이고 이성적 접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권이 가진 친북 일변도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그는 “미국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한 불가역적 핵 폐기’를 주장하는 데 비해 당사자인 우리 정부는 검증보다는 종전선언이 먼저라고 외치고 있다. 도대체 어느 나라 정부인지 종잡을 수 없다"며 "문 대통령은 평화협정과 군사합의로 무장 해제를 진행 중이다. 국가 보위의 최종 책임이 있는 대통령이 정작 나라를 위험에 빠트리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진출처: 권영빈씨 저서 '나의 삶 나의 현대사>

안덕관 기자 adk2@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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