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송환법안 반대하며 고공 농성 벌이던 30대 남성 추락사...현장서 유서 발견돼
주최측 안내에 따라 시민들 검은옷 입고 빅토리아공원 집결
시민인권전선 "칼은 여전히 홍콩의 심장 근처를 겨누고 있다"

홍콩 도심을 가득 메운 시위대 [연합뉴스 제공]
홍콩 도심을 가득 메운 시위대 [연합뉴스 제공]

홍콩에서 '범죄인인도법안'(일명 송환법)의 완전 철폐를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16일 다시 진행됐다. 하루 전인 15일에는  이 법안에 반대하며 고공 농성을 벌이던 30대 남성이 추락해 숨졌다. 시위가 시작된 이후 나온 첫 사망자다.

16일 홍콩 성도일보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전날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100만 규모'의 대규모 시위가 예고된 일요일에 앞서 법안 추진 연기를 발표했다. 캐리 람 행정장관은 "법안 심의는 보류될 것이며, 대중의 의견을 듣는 데 있어 시간표를 제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혀 홍콩 정부가 단기간 내에 범죄인 인도 법안을 재추진하지는 않을 것을 시사했다.

그런데 연기 발표 직후인 오후 4시 30분쯤(이하 현지시간) 홍콩 시민 량리제씨(梁凌杰-35)가 애드미럴 역과 연결 쇼핑몰 퍼시픽플레이스 4층 난간에서 고공 시위를 벌였다.

그는 난간에 '범죄인 중국 송환 반대', '중국 송환 전면 철회', '람 장관 사임 요구' 등의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내걸고 노란 우비를 입고 농성을 벌였다. 출동한 소방대가 에어매트를 설치하고 설득에 나섰지만 량씨는 경찰의 접근에 저항했다.

그는 오후 9시쯤 경찰과의 대치 끝에 난간 밖으로 투신했다. 곧바로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목숨을 잃었다. 현장에선 량씨가 남긴 유서 2장이 발견되기도 했다.

경찰은 량씨가 유서에 후사를 부탁한다는 내용을 적었다고 밝혔다.

사망한 량씨를 추모하는 홍콩 시민 [연합뉴스 제공]
사망한 량씨를 추모하는 홍콩 시민 [연합뉴스 제공]

량씨의 사망 소식은 SNS를 통해 홍콩 시민들에게 급속도로 퍼졌다. 홍콩 시민들은 량씨의 투신 장소에 16일인 현재까지 모여들며 헌화하고 그의 죽음을 추모하고 있다.

16일에는 홍콩 정부가 송환법 추진을 '잠정 중단'한다는 발표를 했지만 시민들은 법안의 완전한 철폐를 요구하며 '검은 대행진'을 개시했다.

이날 오후 2시 30분부터 홍콩 빅토리아 공원에 수 만명의 홍콩 시민들이 운집하며 송환법 철폐 요구 시위를 벌였다.

오후 4시 30분경 어림잡아 수십만명 규모로 급증한 집회 참가자들은 빅토리아 공원을 출발해 정부 청사까지 4km 구간을 행진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검은 옷을 입은 시위대가 수 킬로미터의 거리를 가득 메워 홍콩 도심이 '검은 바다'로 변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주최 측의 안내에 따라 검은 옷을 주로 입고 나왔다.

[연합뉴스 제공]
[연합뉴스 제공]

집회 참가자들은 홍콩 민주주의 요구 시위인 '우산혁명'(2014)의 상징은 '우산'을 펼쳐들기도 했다.

홍콩에서는 송환법이 시민들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혀 추진 동력을 잃고 자연스레 폐기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시민인권전선측은 "칼은 여전히 홍콩의 심장 근처를 겨누고 있다"며 "캐리 람 행정장관은 단지 칼을 부드럽게 밀어 넣고 있을 뿐이며 3∼4주, 혹은 한 달 뒤에 그는 다시 (송환법) 입법을 추진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조준경 기자 calebcao@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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