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계급적 적들을 증오하라. 철저하게 증오하라.” “남조선에서 민중혁명이 일어나면 최우선으로 사회의 반동세력들을 철저하게 죽여 없애야 한다. 그 숫자는 대략 200만 명 정도는 될 것이다. 그래야만 혁명을 완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좌익 사상범 김정익이 교도소에서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의 전사戰士였던 김남주에게 받았다는 사상교육이다. 섬뜩하다. 당시 대한민국 인구가 4,000만 명 정도였으니까 5% 정도를 바퀴벌레 눌러죽이듯 도륙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거 김남주가 오리지널이 아니다. 북한의 이른바 ‘계급교양’이 본판이다. 대체 뭐냐고?

6ㆍ25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5년 김일성은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당원들 속에서 계급교양사업을 더욱 강화할 데 대하여’라는 제목의 연설을 했다. 내용은 이렇다.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은 치열한 계급투쟁을 동반하며 죽어가는 계급이 자발적으로 역사무대에 물러간 적은 일찍이 없었고 부르주아지가 자신의 생존을 위하여 마지막 발악을 하지 않은 경우도 역사에 있어 본 적이 없다’는 얘기다. so what?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주, 자본가 계급을 ‘미워하고’ 자본주의 제도를 반대하며 혁명의 이익을 옹호하고 사회주의 전취물을 수호하는 혁명적인 계급으로 무장하기 위한 교양이 필요하다’는 말씀이다. 누군가를 증오하고 미워하기 위한 ‘교양’이라. 인류 역사에 교양이란 단어가 등장한 이래 이런 용도로 쓰인 것은 아마 처음일 것이다(모쪼록 마지막이길 바란다). 이후 계급교양이라는 단어는 사회과학사전에도 등재되며 북한 인민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내면의 신념체계가 된다.

대체 뭘 가르칠까

기본적으로 반미反美다. 북한 문학예술동맹 중앙위원장 한설야는 1951년 ‘승냥이’라는 작품을 발표한다. 최초의 반미 소설인데 한 소녀가 놀다가 우연히 공을 주웠는데 미국 선교사가 도둑년으로 몰아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무자비하게 구타한다는 내용이다. 이 소설을 기반으로 북한은 1963년 본격적인 반미교육이 들어간다. 승냥이의 야수적 본성이 변할 수 없는 것처럼 제국주의의 침략적 본성은 절대로 변할 수 없으며 승냥이 새끼를 잡아다가 길러도 그 놈이 크면 사람을 해치고 산으로 도망가기 때문에 미제국주의를 미워하는 사상으로 군인과 주민을 철저히 교양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혹시 전후前後의 피해망상이 가져온 일시적인 경향이 아닐까 생각할 수 있는데 절대 아니다. 김정일은 김일성대학 학생들에게 ‘계급교양을 강화하는 것은 제국주의의 압박과 지주, 자본가의 착취를 받아보지 못한 청년학생들에게 더욱 중요한 문제’이며 이를 강화하지 못하면 혁명의 대가 끊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거의 기억을 끊임없이 되살려 반미와 미제에 대한 적개심을 열렬히 불태우라는 훈시인 것이다. 그래서 북한의 계급교양은 유치원 때부터 시작되어 사회에 나가서도 계속해서 이어진다. 아마 평생교육일 것이다.

반미의 성지聖地 신천박물관

교육을 하자면 장소가 있어야 한다. 그것도 아주 상징적인 곳으로 말이다. 그게 황해도의 신천박물관이다. 1960년 6월 25일 설립되었는데 1950년 10월 17일부터 12월 7일까지 미군이 전체 군민의 4분의 1인 35,383명의 민간인을 학살한 ‘원한의 땅’이기 때문이란다. 북한의 주장에 따르면 희생자 중 어린이, 노인, 부녀자가 1만 6천 234명이다. 닥치는 대로 그냥 막 죽였다는 얘기다. 방법도 잔인하다. 미군은 길거리에서 사람들의 목을 작두로 댕강댕강 잘라 살해했고 어린이와 부녀자들은 창고에 가둬 아사시키거나 불태웠으며 정수리에 대못을 밖아 죽이는 고문치사는 일상이었다고 한다. 글쎄다. 수도인 평양을 점령하기도 바쁜 미군이 한가하게 신천에 그리 오래 머물렀을 것 같지도 않고 이제껏 연구에 따르면 숫자도 이보다 훨씬 적고 민간인 반공세력과 공산세력 간의 내전이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리고 북한이 지목한 학살 책임자 해리슨 중위는 6ㆍ25때 참전한 것은 맞지만 당시 신천에 있지도 않았다(참고로 이 사건은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이라는 그림으로 유명해졌는데 이 작품은 미국의 참전을 극력 반대한 프랑스 공산당의 주문으로 그려진 것이다). 신천이 핵심이 아니니 이만하고 넘어가자. 중요한 건 이런 주장을 펼치는 신천박물관에 지난 60년간 1,800만 명이 넘는 인원이 참관을 했고 투철한 반미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계급교양의 핵심은 사회주의애국주의

기본으로 반미를 깔고 가지만 당연히 그게 전부가 아니다. 지주 및 자본가에 대한 증오심 고취,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 사회주의 제도에 대한 우월성과 승리의 확신, 부르주아 사상과 수정주의, 기회주의에 대한 경고, 노동당이 제시하는 혁명적인 원칙 고수 등 인간 의식 개조에 대한 모든 교양이 이루어진다. 이 교양의 끝이 결국 어디로 모아질지는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당연히 ‘수령에 대한 도덕ㆍ의리’로 모아진다. 이런 계급교양의 후과後果는 심각하다. 머리가 제대로 여물지 못한 아이들은 이 교육의 내용을 지동설만큼이나 확신하며 평생을 살아갈 것이다. 교육을 많이 받은 인텔리들은 좀 다를까. 북한에서 최고 지식인층에 해당하는 탈북자에게 이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대체로 교육의 내용을 믿고 있으며 대한민국에서 와 10여 년을 살았는데도 그 교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정말 무서운 인간 개조다. 해맑게 웃는 북한 청소년들의 마음속에 이런 신념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모골송연이다.

정말로 우리 민족끼리?

대한민국 애북愛北(종북이라는 단어를 쓰면 걸린다고 해서 만들어 낸 말) 인사들이 툭 하면 떠들어대는 얘기가 ‘우리 민족끼리’다. 아마도 해외에서는 ‘끼리끼리 논다’ 정도의 용도로 활용되고 있을 이 말에 대해 북한은 어떤 논리를 가지고 있을까. 김정일은 군총정치국 간부들에게 이런 유시를 내린 적이 있다. 본래 교시에 가깝게 옮겨보자면 이렇다. “적들은 우리 군인들에게 인민군대와 국방군은 한 민족의 피를 나눈 형제인데 무엇 때문에 싸움을 하겠는가 하며 서로 사이좋게 지내자고 하면서 군인들의 계급적 각성을 무디어보게 하려고 책동하고 있다. 자칫하면 우리 군인들이 적들의 간계에 넘어 갈 수 있다. 미제와 일제, 남조선 괴뢰군은 다 같이 우리 혁명의 투쟁 대상이라는 것을 철저히 인식시켜야 한다. 환상을 가져서는 안 된다.” 이게 북한이 말하는 ‘우리민족 끼리’의 실체다. 김정일은 죽고 김정은 체제니까 지금은 바뀌지 않았겠냐고? 허허, 북한의 유훈통치로 굴러가는 집단이라는 사실을 잊으셨는가. 실제로 북한은 지난 판문점 선언, 6ㆍ12 북미 정상 회담 직후에도 외부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적에 대한 계급적 자존심을 유지하라고 계급교양을 했다. 우리는 이런 인간들을 머리 위에 진 것도 부족해 내부에서 일과처럼 만나면서 살고 있다.

보통 이런 글은 ‘그렇다면 현재 대한민국은?’으로 맺는 게 일반적이지만 생략한다. 쓰는 사람도 알고, 읽는 여러분도 다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이 손 놓고 있는 분야가 이거 하나만도 아니고. 한 가지 팩트만 적는다. 지난 해 말 교육부가 초중교생 8만 여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북한은 적’이라고 대답한 학생이 1년 만에 41%에서 5%로 감소했다. 5%라. 어찌 이리 잘 맞아 떨어지냐. 그리고 불쌍해서 어쩌냐. 생각 올바르다는 이유로 ‘그날’이 오면 댕강댕강 신체 떨어져 나갈 우리 아이들.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문화예술인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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