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형 관련 증언 323건, 암매장 위치 정보25건 확보
北, 공개 처형으로 북한 주민들에게 공포심 주입... 독재 체재 유지하는 핵심 수단
7살 때 공개 처형 참관했다는 증언도
인권조사기록단체 전환기정의워킹그룹 이영환 대표 "가해자와 화해하자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 진짜 피해자인 북한 주민 외면한 화해는 더 큰 불화 일으킬 수도"

살해 당한 사람들을 위한 매핑:북한정권의 처형와 암매
    살해 당한 사람들을 위한 매핑:북한정권의 처형와 암매장

“과거 청산을 외치는 한국 사회에는 정작 북한의 반인륜적 실태를 외면하는 이상한 침묵이 있다.”

북한 정권이 자행하는 공개처형의 진상을 규명하고 시체 매장지(埋藏地)를 조사한 보고서 “살해 당한 사람들을 위한 매핑:북한 정권의 처형과 암매장”이 10일 발표됐다.

국내의 민간단체인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가 작성한 이번 보고서는 지난 4년간 탈북민 610명의 증언을 통해 공개 처형의 진상과 처형 장소에 대한 323건의 구체적인 정보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의 공개 처형은 주민들 사이에 극도의 공포심과 경각심을 주입해, 김정은 체제에 절대 복종하도록 세뇌시키는 핵심수단이다.

거의 모든 공개 처형은 현장에서 즉결 재판을 통해 초법적으로 진행되며, 피해자는 사전에 폭행과 고문을 당한 뒤 입에 재갈을 물린 채 끌려 나와, 가족을 포함한 수십·수백 명의 참관인이 보는 앞에서 살해된다는 것이다. 한 탈북민은 이미 7살 때 공개 처형을 목격했다고 진술해 충격을 주고 있다.

탈북민들의 증언에 의한 총살 현장 구도
탈북민들의 증언에 의한 공개처형 현장 구도

처형은 총살이 대다수이며 대체로 3명의 사격수가 3발씩 3회, 총 9발의 총알을 사격한다고 한다. 또한 참관인들에게 처형 대상자를 향한 집단적인 분노를 강요하고, 공개 처형 후 3~4시간 동안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시신을 전시하는데, 한 탈북민은 탈북을 중개한 3명의 여성을 처형하는 과정에서 80여명의 수감자를 모아놓고 보게 하며 “너희도 이렇게 될 수 있다”는 협박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2000년대 말에는 참관한 군인들어게  총살 당한 시신을 줄지어 밟고 지나가도록 강제하고, “일탈을 방지하기 위해” 시신를 뚫고 지나간 총상을 눈앞에서 들여다보도록 지시했다는 진술도 있다.

이번 조사에 응한 탈북민의 83퍼센트가 북한에서 살던 중 공개처형을 목격했고, 53퍼센트는 북한 당국의 강제로 한 번 이상 공개처형을 보게 됐다고 진술했다. 또한 16퍼센트는 북한정권에 살해되거나 처형된 가족이 있다고 했다.

흔한 공개처형 죄목은 동(보통 구리선)이나 가축(특히 소)을 훔친 죄, 인신매매, 살인강간, 비법 장사(주로 중국을 오가는 밀수)였고, 덜 흔한 죄목은 “반국가” 활동과 중국으로의 비법월경죄로 나타났다. 마약 제조, 거래, 투약 혐의로 공개처형된 사례 정보들도 있다.

전환기정의워킹센터 이영환 대
전환기정의워킹그룹 이영환 대표

“한국 정부는 가해자 집단인 북한 정권과의 화해를 주장하면서, 북한의 반인륜적 행위로 고통 받은 피해자들에 대해선 외면한다. 그것을 덮어놓은 채 정치인들이 화해를 주장하고 남북간의 장밋빛 전망만을 외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한, 즉 부정한 발언이다.”

TJWG의 이영환 대표는 펜앤드마이크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체재 전환기에 대비해 그들이 자행한 반인권적 범죄 행위를 입증하는 근거를 수집하고 있다”며 보고서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어서 그는 “북한의 반인권 문제는 유엔을 통해 국제적인 범죄 행위로 규정됐다. 그래서 나중에 북한이 체제 전환기에 접어들 시, 김정은을 포함한 수뇌부를 고발하기 위해 증거를 수집하고 있지만, 범죄수사에서 가장 중요한 ‘현장 검증’은 정작 북한의 접근 거부로 조사가 불가능한 상태다. 우리는 탈북민들의 증언을 듣고 최근 개발된 공간정보시스템 기술을 이용해 공개 처형 장소와 시체 매장지를 알아냈다”면서 위치 정보 수집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북한의 인권침해와 국제법 위반이 벌어진 진상에 관한 구체적인 증거를 보고서에 제시했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위치 좌표를 확보한 정보로 323건을 추출하고, 북한 정권이 공개 처형한 뒤 시체를 암매장하거나 불 태운 위치 등으로 신빙성 높은 좌표 25건을 공개했다. 인권침해와 국제법 위반이 벌어진 장소들에 관한 위치매핑을 통해 북한 당국이 벌이는 살해와 암매장의 공통적인 패턴을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직접 현장에 가서 조사한 것은 아니며 탈북민들의 증언을 취합해 추정한 것이므로 보고서에 담긴 정보를 확정해서는 안 된다”고 경계했다. 그리고 “2013년과 2014년에는 보안원들이 공항에서 쓰는 것과 유사한 휴대용 보안검색기로 공개처형 참관자들의 몸을 수색하고 처형 장면을 촬영하지 못하도록 휴대전화기를 탐지해 임시 압수했다는 진술이 있었다”며 보다 엄중해진 북한 정권의  정보통제 상황을 밝혔다. 이 대표는 “위치정보를 발전시키는 기술과 관련해 외부전문가들과 연계하여 후속조사를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덕관 기자 adk2@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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