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공재 객원 칼럼니스트
최공재 객원 칼럼니스트

냄새… 냄새….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왠지 알 것도 같은 그 지독한 냄새….

영화 ‘기생충’은 시종일관 그런 냄새를 풍기는 영화였다. 하지만, 필자는 영화에서 보여주는 냄새와는 전혀 다른 지독한 냄새를 맡는다. 그 지독한 냄새를 기록하는 것, 아마도 이번 칼럼은 가장 힘들게 쓴 글이 될 것 같다.

영화는 생각했던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딱 그만큼의 영화였다. 빈부격차를 표현하는 계단과 그의 영화에서 늘 보여지는 기괴한(?) 가족관계, 박찬욱과 이창동을 떠올리게 하는 그 중간지역의 어디쯤에서인가 보여지는 봉준호 스타일. 무엇보다 칸 영화제에서 상을 받는 영화들의 뻔한 스타일들이 예상대로 보인다. 그래서 볼 필요도 없는 영화이기도 하고 이 지면에 몽땅 영화에 대한 비판을 쏟아낼 수도 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필자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던 그 냄새를 기록해 보고자 한다.

기생충은 좌파영화’는’ 아니더라!

노골적인 반미성향과 가족파괴를 다루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거기에 가장 정치적(좌파)인 영화제인 프랑스 칸 영화제의 대상작이라면 안 봐도 뻔한 것이라고 단언했었다. 역시나 처음에는 분명 그런 시선에서 출발되는 영화지만, 엔딩으로 갈수록 왠지 알 것 같지만 표현할 수 없는 냄새들이 풍겨 나왔다. 영화가 끝나고 나니 이거 우파영화라고 해도 되겠는데? 라는 생각이 들 정도... 하긴 모든 영화가 그러할 수도 있다. 문화 그 자체는 원래 색이 없는 게 정상이니까. 예전에 ‘광해, 왕이 된 남자’가 노무현 영화라고 한창 비난을 당할 때, CJ의 모 관련자가 억울함을 토로하는 걸 본 적이 있다.

“정말 억울합니다. 이건 어떻게 보면 박정희 대통령을 연결시킬 수도 있는 영화거든요.”

그렇다. 문화라는 것은 누가 어떤 식으로 해석을 하고 변형을 주느냐에 따라 무기가 된다. 누가 만들었다는 걸 떠나 그걸 누가 선점할 수 있는 가로 접근하면 우리는 언제든 문화전쟁의 싸움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지만, 현실은 슬프게도 그렇지 못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필자는 우파진영의 독자들에게 이 과도기적 접근을 설명하기가 너무도 힘들다. 그러기엔 지금 현재 우파의 문화에 대한 인식상태는 극단적인 하향평준화를 이루고 있다. 좌우를 떠나 모든 이념은 일종의 문화적 인식상태를 말한다. 정치는 그 다음 얘기다. 그러니 어느 진영에 문화가 없다는 것은 그 진영의 이념에 공백상태를 대변하는 것 과도 같다.

그게 아니라면 필자가 던지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뭐라고 답할 수 있는가?

‘왕이 된 남자’를 박정희의 영화로, ‘내부자들’을 현 정부의 권력자들을 비웃는 우파영화로 만들 수 있었듯, 이제라도 ‘기생충’을 우파영화로 만들 수 있겠습니까?

이런 이념문화의 대중적 키워드를 선점할 수 있는 가에 대해 우파진영이 답이 낼 것이란 점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이지만, 이 영화가 좌파영화’는’ 분명히 아니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계급을 나누는 상징으로 ‘계단’이 나오지만 그 안에서 보여지는 봉준호식 계급투쟁의 모습은 보이질 않고, 자본가에 대한 비판적 시각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능하면서도 기생충으로서의 삶을 인정하고 감사함을 전하는 지하실 사람들의 충성심을 보여주며 자본주의의 긍정성마저 보여주고 있다. 자본가에 대한 비판도 보이질 않고, 세상 물정 모르는 젊은 기생충 인생의 허무맹랑한 엔딩에 대해 관객 스스로 비웃음을 날리게 표현해 버린다. 봉준호식 스타일은 여전하지만, 진보와 보수의 이념 사이에서 과도기 상태의 표현을 하고 있다.

그가 영화 속에서 일반 반지하의 쾌쾌한 냄새와 지하실 기생충의 지저분한 냄새를 보여주면서, 정작 본인이 풍기는 이 기괴한 냄새를 맡고 있기는 한 걸까?

필자가 영화를 보면서 맡았던 그 기괴한 냄새는 바로 이 영화가 우리가 생각했던 좌파영화가 아니라 그 어디의 경계선에서 놀고 있는 그에게서 풍기는 냄새였다. 최소한 이 영화는 그래서 좌파영화’는’ 아니고, 그렇다고 우파영화도 아니다. 차라리 ‘보수영화’라고 해야 어울릴 것 같은 기분은 그 냄새를 더욱 역하게 만든다.

새로운 문화권력의 등장이라는 공포의 냄새가 풍기다!

칸 영화제는 전세계 10대 영화제라는 분명 큰 영화제이다. 하지만, 영화제라는 것은 영화 비즈니스의 장이고, 그 나라나 그 나라의 영화문화를 알리는 홍보의 장으로 활용되는 곳이다. 분명 그 영화제에서의 대상 수상은 큰 일이고, 축하받을 일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정상적인 영화 생태계 안에서 벌어졌을 때나 그 축하의 진정한 의미가 생길 것이다.

그런데, 칸은 이미 충분히 정치적으로 변질된 영화제이고, 한국영화계는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다른 영화제보다 칸 영화제에 집착한다. 8,90년대 ‘헐리웃키드’라고 명명된 영화계 2세대들의 기본이 아마도 프랑스문화원을 통한 영화적 인식을 바탕으로 둔데서 발생한 것이라고 추측을 해볼 뿐이다.

어쨌든 100% 좌경화를 이룩한 한국영화계에 좌성향의 칸영화제는 그야말로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런 곳에 지금까지 문화권력의 중심에 있었던 이창동 감독과 홍상수 감독, 박찬욱 감독 등이 열매를 따먹었고, 이제 ‘봉준호’라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이 됐다.

그리고, 거기에는 CJ E&M이라는 거대문화권력 좌파기업이 있다. 문화계를 계속 장악하려는 기대자본권력과 새로운 문화권력의 상징이 되는 인물의 등장!

그것에 대한 상징적 결과물이 바로 봉준호의 칸 영화제 대상 수상인 것이다. 얼마 전 정계를 휩쓸었던 ‘미투 운동’을 아직도 기억할 것이다. 문화계에서 촉발된 이 사건은 본의 아니게(?) 정치판으로 흘렀지만, 필자는 죽으라고 이것이 새로운 문화권력의 교체작업이라고 외치고 다녔다.

물론 문화인식에 대해 인지 제로화로 가고 있는 우파진영에서 그 주장은 당연히 묵살되었다. 그러는 사이, 문화계는 새로운 문화권력으로 교체작업을 마치고 다음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새로 등장하는 문화권력은 분명 기존의 이념적으로 무장된 문화권력들과는 다를 것이다.

김대중 정부의 은혜를 받아 강남좌파의 자본의 맛을 본 그들은 자본을 다룰 줄 알고, 권력의 눈치를 보며 따르는 본능에만 충실하고 사농공상의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국의 기업들은 그들에게 여전히 젖과 꿀을 제공해 줄 것이다.

거기에 왜곡된 이념으로 무장된 좌파정치계와의 뗄래야 뗄 수 없는 연결고리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문화권력들은 그 권력의 안정화를 위해 충성경쟁을 펼치게 될 것이다.

21세기, 대중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문화권력들의 이런 새롭게 재정비되는 모습들은 향후 그들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생각해보면 끔찍한 상상만이 가능해진다.

중국 문화대혁명의 홍위병들을 머지않아 보게 될 것이라고 필자는 예상하고 있었고, 이 영화를 보면서 그런 행동이 이미 진행되고 있다는 냄새를 맡았다.

냄새… 냄새…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왠지 알 것도 같은 그 지독한 냄새의 정체였다.

보수우파진영에서는 내년 총선의 승리를 다짐하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좌파는 20년 장기집권을 말하고 큰소리를 치며 야당을 무시하고 정부와 국회 모두 독재를 하고 있는 실정에서 정치적으로 어떻게 풀어낼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한국 문화계, 문화전쟁 차원에서 그날을 물어본다면 필자가 할 수 있는 말은 한 마디뿐이다.

“우파가 뭐 한 게 있다고요?”

좌파의 보수화가 이루어진다면?

필자가 새로운 문화권력을 기존의 문화권력보다 더 경계하는 이유는 왜곡된 이념의 종교화로 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실체(진실)는 중요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득만을 위해 무엇이든 거짓도 실체화를 이루는 작업을 서슴없이 진행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좌우이념 논쟁의 장이 아닌 수많은 일반대중들을 상대로 말이다. 장기 권력은 스스로 보수화가 될 수밖에 없기에 과거 이념으로 무장한 권력들이 만든 ‘진보’라는 탈을 버리고 ‘보수(비록 그게 다른 이름일지라도)’라는 탈을 바꿔 쓰게 될 것이다. 아니, 이미 그것은 시작되었다. 정치계든 문화계든…

정치계에서는 수많은 보수적(우파적 발언 아님) 발언들이 이미 민주당이나 정의당 의원들 쪽에서 심심찮게 흘러나왔고, 호남에서는 민주당이 장기집권을 위해 보수로서의 변화를 박지원이 나서서 작업하고 있다는 소문이 돈 지가 몇 년 전 일이다.

좌파의 행동 패턴은 매번 일정한 흐름이 있다.

먼저 자신들이 관철시키고자 하는 타깃이 있다면 미리 그 이념적/실체적 작업을 다 끝내 놓는다. 그리고, 실현가능한 단계가 오면 제일 처음 홍위병인 문화계를 내세운다.

광우병 시위와 세월호 시위가 그랬고, 탈원전정책을 강행하게 만든 ‘판도라’가 그랬고, 이루 말할 수 없이 수많은 대중의 의식변화를 이루는 작업에는 늘 영화인들이 앞에 나섰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우파는 대통령이 영화 한편 보고 탈원전정책을 시행했다고 말하고 있다. 세상에 그런 바보는 없다, 그걸 믿는 바보들은 있을지 몰라도…

그런 행위는 시작이 아니라 이미 마무리단계에서 대중들에게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쇼일 뿐이다.

이번 봉준호의 기생충 수상도 그런 행위의 시작이 아니라 마무리 단계라면 어떨까? 영화에서 풍기는 그 기괴한 냄새가 좌파가 보수화로 가는 것의 완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한국의 좌파이념은 전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정상적인 좌파이념이 아니다. 그런 그들이 보수화가 되어간다는 것 자체가 필자에겐 공포 그 자체다.

그래서 필자는 어떻게 해서라도 이 왜곡된 ‘보수영화’를 자유우파 영화로 선점하고 싶지만, 문화인식 제로화 상태인 현실에서 막연하기만 하다. 좌우 이념도 문화의 한 형태라고 인정했을 때 문화인식의 부재는 이념의 부재상태라는 표현이 가능해지고, 그건 기본도 없는 상태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보수우파는 이제껏 이념을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는 이들이 주축이 되어 있기에, 현실에서의 내부분열은 각자의 이득에 의해 그렇게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지금이 그럴 때인가? 보기만 해도 한숨만 나오는 현실이다.

우파가 이념의 부재, 문화의 부재를 이어가며 내부 총질이나 하고 있을 때 그들은 대중을 선동하며 보수화를 향해 가고 있다. 만약 그들이 보수화를 이루는데 성공한다면?

인간은 못될지언정 기생충에 기생하는 ‘것’들로 살지는 말자

필자가 부역자들2의 결론을 원래 내렸던 것이 있었는데 참나 영화 속에서는 다루질 않았다.

그래도 ‘희망’이라는 단어를 놓고 싶지 않아서였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부역자들2에서 원래 보여주려던 엔딩을 글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이념과 문화의 부재 속에서 우리가 지금 당장 결론지어야 할 부분은 어쩌면 내년 총선이 아니라 이대로 죽을 것인지, 좌파권력 기생충들에 기생하는 ‘것’들로서의 삶을 이어갈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해야만 하는 시점이 왔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미 완벽하게 정치와 문화의 권력을 잡았고, 이 영화는 그것에 대해 그 권력을 인정했다.

그들이 장기집권을 실현하고 보수화가 완성되면 수많은 현재의 올드한 보수들은 또 그렇게 ‘보수’라는 그늘 안으로 기어 들어가 생명을 연장하고자 할 것이다. 그저 빨갱이가 싫을 뿐, 한국인 특유의 좌파적 습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진영의 한계라고 본다.

그런 기생충에 기생하는 ‘것’으로서의 삶이 싫다면 우리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기본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이념을 공부하고, 그 이념을 문화로 표현하고, 문화로 국민을 설득(선동 아님)해야 한다. 좌우의 이념싸움을 넘어 수많은 사람들을 우리의 편으로 만드는 ‘설득’이 시작되어야 한다.

우파는 과연 그럴 준비가 되어 있을까?

그들이 다음 정권을 잡고 초대 문화부장관으로 봉준호 감독이 올라가는 모습을 상상하며 극장을 나섰고, 책을 한권 써도 부족할 만큼의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그 어느 글보다 고약하리 만치 쓰기 싫었던 글을 3일만에 마친다.

최공재 객원 칼럼니스트(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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