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양극화하고, 종족 내의 맞장구 의견 극단화...다른 종족에 대한 언어-물리적 공격 성향 부추겨
文정권과 다른 5.18 의견 제시하면 '독재자의 후예'?...대통령이 오히려 국민 분열 조장
대다수 국민과 동떨어진 文대통령의 경제 인식...잘못 인정하고 고치는 것도 지도자 덕목
언론 바로 서야 나라 바로 서...'가짜 뉴스' 횡행할수록, '진실 보도' 추구해야
당파 싸움은 나라 다시 망하게 할 것...망국노는 조국 근대화 성공한 독재자보다 그 질 훨씬 나빠

이민웅 객원 칼럼니스트
이민웅 객원 칼럼니스트

대한민국은 지금 ‘인식적 혼돈(epistemic chaos)’ 상태에 빠져있다. 무엇이 진실하며 무엇이 허위인지, 또 무엇이 옳으며 무엇이 그른지에 대한 격렬한 의견 차이로 신뢰할 수 있는 정보와 지식의 공유가 매우 어려운 상태에 있다. 종족적 인식(tribal epistemology) 때문이다. 종족적 인식이란 정보와 지식의 수용 여부가 보편적 증거 규칙, 달리 말해 확인된 사실과 검증된 진실을 바탕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속한 종족의 가치와 목표, 특히 종족 지도자의 이익에 부합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현상을 말한다(Roberts, 2017).

현실에 대한 종족적 인식은 국민을 점점 더 양극화시켜 상호 소통이 안 되는 폐쇄적 종족 공동체로 전락시킨다. 종족적 인식은 특정 종족 공동체에 속한 개인들의 맞장구 의견을 강화하고 극단화할 뿐만 아니라, 다른 종족에 대한 언어적 공격 성향을 부추긴다. 심지어 물리적 폭력을 조장하기도 한다. 우리가 현재 목격하고 있는 대한민국 현실이 그렇다. ‘친문달x족’과 ‘자유민주진영족’의 현실에 대한 인식 차이와 상대 종족에 대한 적대 행동에서 확연히 느낄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인식적 혼돈에 대통령이 촉진자로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文정권과 다른 5.18 의견을 제시하면 ‘독재자의 후예’가 되는가? 국민 통합 책임 있는 대통령이 오히려 국민 분열을 조장하는 듯.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18일 광주에서 “독재자의 후예가 아니라면 5.18을 다르게 볼 수 없습니다.”고 말했다. 이 무슨 해괴한 말인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민주 사회에서 이보다 더 심한 막말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대통령 스스로도 “아직까지 규명되지 못한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만약 진상조사 과정에서 문 정권과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 ‘독재자의 후예’가 된단 말인가?

그러니 당장 “남로당의 후예가 아니라면...”, “빨갱이의 후예가 아니라면...”, “공산 세습 독재자 후예의 대변인..” 하는 격렬한 막말 반론이 쏟아져 나왔다. 국민을 통합하여 난국을 헤쳐 나가야 할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대통령이 오히려 국민을 분열시키고 편 가르기를 조장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이다. 아직도 대통령 후보의 멘털리티를 갖고 있는가? 아니면 헌법을 고쳐 대통령에 다시 출마하려고 지지 세력을 결집하고 있는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극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빨갱이’는 “하루빨리 청산해야 할 대표적인 친일잔재”라는 3.1절 기념사와 비슷한 맥락이다. 반대 의견을 억압하려는 전체주의적 접근이 아니라면 하기 힘든 말이라고 본다. 문 대통령의 5.18 기념사는 즉석연설이 아니다. 절차를 거쳐 만들어진 공식 문서이다. 그런데도 어떻게 이런 심한 말이 걸러지지 않았을까? 그 과정에서 청와대 참모들은 무얼 했는가? 당시에 인터넷을 보면 대통령의 인지 능력 뿐만 아니라 심지어 건강(mentality)에 대해서도 합리적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다수 국민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문 대통령의 경제 인식, 잘못 인정하고 고치는 것도 지도자의 덕목이다

대통령에 의한 인식적 혼돈은 이뿐만이 아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월 14일 서울 여의도에서 개최된 '2019년 대한민국 중소기업인 대회'에 참석해 "총체적으로 본다면 우리 경제는 성공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대다수 국민이 느끼는 경제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대통령 발언은 또 한 번 ‘인식적 혼돈’을 초래했다. 이 발언에 관한 한 경제학 박사 출신인 바른미래당 유승민 의원의 지적이 정곡을 찌른다. 유 의원은 "국민은 하루하루를 살아가기가 너무나 고통스러운데 대통령은 국민의 팍팍한 삶에 대한 최소한의 공감도 못 하고 있다"며 "잘못을 깨닫고 인정하는 것도 지도자에게는 필요한 덕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경제 정책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인지, 잘못됐는지조차 모르는 것인지 당혹스럽다"며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말만 듣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대통령을 보면 남은 3년의 임기 동안 우리 경제가 얼마나 더 망가질까 두렵다"고 말했다.

언론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종족적 인식’으로 세상이 혼란스러울수록, 가짜 뉴스가 활개 치는 ‘탈진실 시대’일수록, 언론은 언론의 기본 원칙을 지켜 우리가 믿고 공유할 수 있는 정보와 지식이 무엇인지 제시해 주어야 한다. 언론의 으뜸가는 기본 원칙이 무엇인가? 진실 보도다. 우리는 진실 보도를 거론할 때면 공정 보도를 함께 얘기한다. 그 이유는 공정성이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더 중요한 가치인 진실 보도를 성취하는데 도움이 되는 목적론적(teleological) 가치이기 때문이다.

언론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인식적 혼돈’과 ‘가짜 뉴스’가 횡행할수록, 언론의 기본 원칙 ‘진실 보도’ 추구해야, 신뢰할 정보와 지식의 공유 가능해진다.

물론 진실 보도가 쉽게 성취할 수 있는 과업이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진실을 추구한다는 것은 단순히 사실을 모으고 확인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의미심장한 과업이다. 워싱턴 포스트 前 발행인 Philip Graham이 지적한 “역사에 대한 최초의 거친 초고(the first rough draft of history)”를 생산하는 언론인은 그들의 일일 보도가 불완전하다는 것, 거의 대부분의 진실은 언론의 마감시간보다 더 천천히 드러난다는 것, 그리고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때에는 다 아는 체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안다.

진실에 이르는 길은 이처럼 험난하고 조심스럽다. 먼저 진실 보도는 기초 사실에 대한 확인으로부터 시작한다. 기초 사실은 6何 중 4何(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를 말한다. 6何(5W1H)는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처음 7荷를 제시했다. 무슨 수단을 사용하여 일을 저질렀느냐가 포함되어 있었으나 나중에 어떻게(How)에 통합되었다고 한다. 그가 쓴 ‘니코마스의 윤리학’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6何 원칙은 군대와 행정 기관의 보고, 경찰과 검찰의 사건보고, 언론의 보도 등에 널리 응용되어 그 효율성이 입증되었다.

진실 보도는 확인된 기초 사실들의 의미를 맥락(context) 속에서 바르게 파악하는 검증 단계를 거쳐야 한다. 맥락은 6何 가운데 How와 Why로 구성된다. 어떻게(How)는 사실들이 발생한 시간적 상황적 과정을 말하고, 원인은 사실들 간의 인과적 상관적 관계를 말한다. 이런 맥락을 바르게 파악해야 다양한 기초 사실들의 종합적 의미를 바르게 파악할 수 있다. 민주적 토론은 공유된 정보와 지식에서 나온 의견을 두고 시작한다(Rosenfeld, 2019). 하버드대 교수를 역임한 Daniel Moynihan은 “모든 사람은 각자의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다. 그러나 자신만의 사실을 가질 권리는 없다”고 말했다. 같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믿고 공유할 정보와 지식을 가진다는 것은 민주적 의사 결정을 위한 토론을 비로소 시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참으로 중요하다.

권력과 부를 위해 편 갈라 싸우는 당파 싸움은 나라를 다시 망하게 할 것. 亡國奴는 조국 근대화에 성공한 선의의 독재자보다 그 질이 훨씬 더 나빠.

대한민국 임시정부 2대 대통령을 역임했던 박은식 선생은 그의 ‘韓國痛史’에서 “당파라는 것은 온갖 악의 근원이요 망국의 주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나라를 일본에 잃은 슬픔과 분노와 회한으로 太白狂奴라는 호를 짓고 스스로 노예로 자처했던 선생은 당쟁에 뒤이어 정조 때 시작해 홍-박-김-조-민으로 이어진 “세도의 다툼은 당쟁보다 더했고 이 자리를 얻기 위해서는 천하의 대악(大惡)을 범하는 일이 있더라도 하려들었다”고 통탄하면서 권력과 부를 위한 당쟁과 세도 경쟁이 조선을 망하게 한 주된 원인이라고 갈파했다.

여러 번 지적했지만, 사람밖에 변변한 자원도 없는 좁은 나라에서 사람을 집단으로 편 가르기 해서 서로의 힘을 소진시키는 일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 할 수 없는 지극히 어리석은 행위이다. 종족적 인식을 조장하여 국민 분열과 편 가르기를 하는 책동은 장차 대한민국을 망하게 하는 주된 원인이 될 것이다.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선의의 독재자와는 비교할 수 없게 그 질이 나쁜 망국노(亡國奴)가 되거나 그 후예가 되지 말기를 간곡히 당부한다.

이민웅 객원 칼럼니스트(한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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