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시대 추적] 선거제도는 민주주의 구현을 위한 만병통치약인가?
[박정희 시대 추적] 선거제도는 민주주의 구현을 위한 만병통치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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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의 외피를 두른 사이비 미주 팔이 세력들은 경쟁적 선거가 존재하지 않았다거나, 전체주의를 지향하는 공산주의를 주장할 수 없도록 반공을 강화했다고 하여 ‘반민주’니 ‘독재’니 하며 박정희, 이승만 시대에 똥물을 퍼붓고 저주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어쩌랴. 그대들이 아무리 발악을 해도 남의 재산을 빼앗고,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전체주의 공산주의의 침략을 분쇄하고, 그들에 맞서 싸워 이 나라를 지켜낸 것이 그 시대의 진짜 민주주의이고, 진짜 민주화였다는 사실을….
박정희는 1972년 10월 17일 헌정질서를 중단하는 '10월유신'을 발표했다. 이로써 박정희는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인권을 탄압했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다. 민주주의 전문가들은 서구식 민주주의는 1인당 4000~7000달러 정도의 물적 토대가 완성되어야만 정상 작동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사진은 10월유신 선포를 보도한 동아일보(1972년 10월 18일자).
박정희는 1972년 10월 17일 헌정질서를 중단하는 '10월유신'을 발표했다. 이로써 박정희는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인권을 탄압했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다. 민주주의 전문가들은 서구식 민주주의는 1인당 4000~7000달러 정도의 물적 토대가 완성되어야만 정상 작동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사진은 10월유신 선포를 보도한 동아일보(1972년 10월 18일자).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우상이 존재한다. 우상이란 인간의 선입견과 편견에 의해 만들어진 허상을 뜻한다. 영국의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은 인간이 가진 4대 우상으로 종족의 우상, 동굴의 우상, 시장의 우상, 극장의 우상을 지적한 바 있다.

박정희 18년을 당시 한국이 처한 국제적 상황, 경제관계 등을 무시한 채 ‘독재의 시대’라고 단정하는 것도 하나의 우상에 속한다. 이들은 박정희가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하고, 3선 개헌으로 임기를 연장했으며, 10월 유신으로 공포통치, 종신집권, 인권말살을 했으니 민주주의 암흑기였다고 대못을 박는다.

유신체제 하에서 한국은 경제 성장을 지속했고, 더 빠른 속도로 경제발전을 이루었다. 이 시기에 한국이 이룬 빠른 경제 성장은 중공업 위주의 산업화, 수출 성장, 새마을운동과 함께 진행된 대규모 국가 기간산업 발전 등이 중심이 된 경제발전 프로그램의 성공 덕분이라는 사실은 애써 외면한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 같은 이는 ‘한강의 기적’은 박정희 덕분이 아니라 해방정국의 농민투쟁과 미소(美蘇) 냉전 덕분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손호철, 『촛불혁명과 2017년 체제』, 서강대학교 출판부, 2017, 32쪽). 이쯤 되면 이건 학문 영역이 아니라 판타지 창작소설 장르 아닌가.

박정희 시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학자들도 박정희 시대에 경제성장은 이루었지만 정치적 자유는 후퇴했고, 민주주의는 말살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근대화 혹은 산업화는 무엇이고 민주주의는 무엇인가? 주기적으로 치르는 선거를 통해 집권세력을 선출하는 선거 민주주의가 확고하게 보장되어야만 정상적인 국가인가? 선거 민주주의 없이도 고도성장을 이룬 중국, 베트남 사례는? 선거란 무엇이고 독재란 무엇인가? 이런 끝없는 의문에 우리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답변이 필요하다.

이런 답을 추적해 가는 과정에서 참고할 만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학자가 김광동 박사(나라정책연구원장)다. 그는 「선거민주주의의 한계와 박정희 시대의 의미」란 논문에서 준봉건적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낙후한 신생독립국에 도입된 선거 민주주의는 삶의 질 개선에 아무런 문제도 해결해 주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선거는 과연 만병통치약인가

 

민주주의와 정치적 자유, 인권을 위한 활동을 하는 비정부기구인 프리덤하우스(Freedom House)는 1995년, 세계 79개 국가만이 정치적으로 자유롭고, 110개 국가는 여전히 부분적으로 자유롭거나 전혀 자유롭지 않다고 발표했다. 지구상 인구 4분의 1만이 정치적으로 자유로운 체제에 살고 있음을 통계적으로 입증한 것이다.
부분적으로 자유롭거나, 전혀 자유롭지 않은 나라에도 선거 민주주의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선거제도 같은 특정 제도의 도입만으로 만주주의가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순진한 착각이다.

김광동은 개발도상국에서 ‘선거’란 민주주의 발전을 평가하는 수많은 요수 가운데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고, 민주주의의 성숙을 위해서는 제도적 기반과 물질적 기반의 구축이 더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또 선거를 통해 선출된 지도자나 정치세력이 국가 사회를 지도하는 데 있어 더 나은 능력을 발휘하리라는 것은 하나의 기대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검증하기 위해 1970년대에 선거 민주주의가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던 베네수엘라·인도·콜롬비아·터키의 사례를 연구했다. 그 결과 이들 4개국의 민주주의 수준은 계속 하락하여 1990년대에는 엉망이 된 사실을 주목했다. 터키는 1985년 권위주의 정부로 교체되었고, 베네수엘라는 1990년대 후반 차베스 정부로 상징되는 포퓰리즘의 극치, 시장경제 붕괴, 좌파 사회주의 지향 국가로 망가졌다.

이들 나라에서 선거 민주주의가 원활하게 작동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과가 나타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정치적 독점세력들이 선거를 권력 나눠먹기를 위한 도구로 타락시켰기 때문이다. 이들 나라는 그저 형식적 선거를 통해 지배계층을 돌아가며 바꾸는 시늉을 냈을 뿐이다.

인도의 경우 자유선거에 의해 정치세력을 정기적으로 교체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인도에서 선거란 양반 지배계층들로 구성된 구체제의 붕괴를 막고, 봉건주의를 연장시키며 합리화하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반면에 1970년대에 정치적으로 낮은 단계로 평가됐던 한국·칠레는 1980년대 후반 민주화를 통해 선거 민주주의가 도입되면서 정치발전 수준이 급격히 높아졌다. 한국과 칠레의 사례를 분석해 보면 경제발전과 함께 그에 상응하는 민주주의의 확대가 이루어질 때 경제와 민주주의 모두 발전한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반면에 경제발전이 성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선거 민주주의를 도입한 나라나, 경제발전 없이 민주화를 진행했던 나라는 정치발전·경제발전 모두 실패할 확률이 높다. 즉 정치발전과 경제발전이 결정적인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내용증명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선거 민주주의가 도입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정치발전이나 사회경제적 발전,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개발도상 과정에 있었던 한국의 1960년대에 국민들이 당장 필요로 했던 것은 ‘투표권’이 아니라 당장 굶어죽지 않기 위한 ‘밥’이었다. 박정희는 배고픈 국민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 선거 민주주의를 일정 정도 유보시키고 경제발전에 전력투구했다. 3선 개헌, 10월 유신도 내면을 들여다보면 내주 위주, 농업 위주, 자력갱생을 외치는 철부지 ‘대중경제론자’들을 물리치고 수출주도 공업화 전략, 중화학공업을 완성시켜 국민들에게 ‘밥’을 먹이기 위한 박정희 식 처방이었다.

경제개발 초기의 민주화는 경제성장의 걸림돌

전 세계 개발도상국들의 경제발전과 정치발전 과정을 분석하면 ①처음부터 자유민주정치만 시도한 나라, ②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병행한 나라, ③선(先)경제성장, 후(後) 민주화 발전전략을 선택한 나라 등 세 그룹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세 그룹 중 ①과 ②의 방식을 채택한 나라들은 민주화와 경제성장 모두 파탄이 나서 근대화를 이루는 데 실패했다. 한정된 개발자원을 가진 후진국 입장에서 경제개발과 민주화를 한꺼번에 이루려는 시도는 두 마리 토끼를 쫓다가 둘 다 놓친 격이다.

반면에 한국·대만·싱가포르·칠레 등 ③의 방식을 택한 나라들은 경제성장과 민주화 모두 성공했다. 흥미롭게도 이들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현상은 선(先) 경제성장을 추진하는 동안 권위주의 정부(authoritarian government)가 민주 정부를 대신했다는 점이다.

미국의 저명한 거시경제학자인 로버트 배로(Robert Joseph Barro) 하버드대 교수는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과 민주발전의 상관관계 연구에서 다음 두 가지를 발견했다.

첫째, 1인당 국민소득이나 평균수명, 또는 교육 등에서 큰 성취를 이룩한 나라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민주화되어 간다.
둘째, 생활수준이 낮은 상태에서 민주화 된 나라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자유를 잃어간다.

이 사실에 근거하여 배로 교수는 후진국의 경제발전에서 경제개발과 권위주의 정부 사이에 서로 보완관계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후진국의 경우 경제개발 초기의 민주화는 경제성장의 걸림돌만 되었다고 단언한다.

박정희 시대의 한국은 한정된 국력으로 국가안보, 경제 근대화, 자유 민주정치라는 세 마리의 토끼를 쫓아야 할 형편이었다. 만약 당시 국가 지도부가 세 마리의 토끼를 쫓겠다고 허둥댔다면 한 마리도 제대로 잡지 못했을 것이다. 박정희는 우선 북한의 침략부터 막아내고 경제적 도약을 이룩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기로 하고 자유 민주정치 발전을 일시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박정희 식 권위주의 정부의 특징이다. 이를 좌파·전체주의 추종세력들은 ‘독재의 시대’ ‘인권말살의 시대’라고 악을 쓴다.

김광동은 박정희 시대야말로 민주주의 성장의 토대를 만든 과정이었기 때문에 박정희를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기여자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광동은 ‘민주화’ 세력이 단지 집권세력을 자유롭게 공격할 수 있는 경쟁적 선거가 존재하지 않았다거나, 전체주의를 지향하는 공산주의를 주장할 수 없는 상태에 있도록 했다는 사실만으로 ‘반(反)민주’로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한다. 재산을 빼앗고, 자유를 억압하는 공산주의에 맞선 것이 그 시대의 민주주의이고, 민주화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김광동, 「선거 민주주의의 한계와 박정희 시대의 의미」, 김용서 외 지음, 『박정희 시대의 재조명』, 전통과 현대, 2006, 175쪽).

민주주의 분야의 석학인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달(Robert Alan Dahl)은 각 나라가 국민소득 4,000달러에서 7,000달러 사이에 정치적 고도화와 민주주의 혁명이 있었다고 분석한다. 즉, 참다운 자유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행되려면 민주주의를 가능케 하는 경제적·산업적 기반과, 민주주의를 운영할 수 있는 중산층의 형성, 그리고 국민들의 민주시민 의식이 필수적이란 뜻이다.

‘진짜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박정희가 추진한 ‘한강의 기적’을 통해 1인당 국민소득 4,000달러 시대와 탄탄한 중산층이 형성된 것은 1987년이다. 이 시기에 우리 사회가 6·29선언을 통해 민주화로 이행한 모습을 보면 로버트 달의 지적은 설득력을 가진다.

박정희 18년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가능케 하기 위한 물적 토대를 다지는 시대였다. 그의 노력 덕분에 우리는 민주주의가 정상 작동하는 물적 토대를 건설한 것이다. 그 어렵던 1인당 100~200달러 시대에 “당신 왜 그 때 서구식 민주주의 안 했어? 그러니 독재야”라고 외치는 사이비, 철부지 민주 팔이 지식인들의 강변은 한편의 무절제한 희극을 연상케 한다.

이와 관련하여 퓰리처상을 수상한 뉴욕타임스 중국특파원 니콜라스 크리스토프(Nicholas D. Kristof)는 다음과 같은 평을 내놓았다.

“박정희 정권은 비록 민주화 운동을 억압했지만 경제발전을 통해서 역설적이게도 오늘날의 한국 다원주의의 근간이 되는 중산층을 창출함으로써 한국 민주주의에 크게 기여했다.”(조이제, 「한국의 근대화」, 조이제·카터 에커트 편저, 『한국 근대화, 기적의 과정』, 월간조선사, 2005, 47쪽).

현재의 문재인 정부를 비롯하여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의 리더십을 돌아보면 필자는 김광동 박사를 비롯하여 니콜라스 크리스토프, 로버트 달, 로버트 배로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박정희를 공격하는 결정적 무기는 ‘권력과 지배의 정당성’, 즉 정통성의 하자 부분이다. 정상적인 헌법질서 하에서 선거에 의하지 않은 쿠데타에 의한 권력 창출, 그리고 유신헌법을 통한 비정상적 권력 연장을 절대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다.

그렇다면 절차적 민주주의가 공고화 된 6공 헌법 하에서 선거에 의해 집권한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권과, 독재와 인권탄압으로 비판받는 이승만·박정희 정권을 비교해 보자 과연 6공의 민주화 시대가 독재와 인권탄압으로 얼룩진 시절보다 국가운영의 질이나 국민의 삶의 질, 외교 차원에서의 품위 있는 국격 유지가 가능했나? 대체 이 나라에서 선거 민주주의가 우리 국민에게 진정한 정치적 자유와 삶의 질 향상에 기여했을까?

‘민주화’의 외피를 두른 사이비 미주 팔이 세력들은 경쟁적 선거가 존재하지 않았다거나, 전체주의를 지향하는 공산주의를 주장할 수 없도록 반공을 강화했다고 하여 ‘반민주’니 ‘독재’니 하며 박정희, 이승만 시대에 똥물을 퍼붓고 저주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어쩌랴. 그대들이 아무리 발악을 해도 남의 재산 빼앗고,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전체주의 공산주의 침략을 분쇄하고, 그들에 맞서 싸워 이 나라를 지켜낸 것이 그 시대의 진짜 민주주의이고, 진짜 민주화였다는 사실을….

김용삼 펜앤드마이크 대기자 dragon00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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