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송대성(前 세종연구소장), 김태우(前 통일연구원장), 신원식(前 합참 작전본부장), 박휘락(국민대 정치대학원장)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송대성(前 세종연구소장), 김태우(前 통일연구원장), 신원식(前 합참 작전본부장), 박휘락(국민대 정치대학원장)

5월 4일과 9일 북한은 러시아의 이스칸데르(SS-26) 미사일과 비슷한 신형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판문점 선언 1년 만에 북한 스스로 ‘북한 비핵화는 사기 쇼’임을 행동으로 증명한 것이다. 사실, 웬만한 전문가들은 처음부터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을 믿지 않았지만, 북한의 진의(眞意)는 판문점 선언 1주일 전인 2018년 4월 20일 노동당 중앙회의에서 드러났었다. 이날 김정은은 사실상 핵보유국을 선포하며 ‘핵동결(핵·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 중지)과 비확산(핵무기·기술 이전 금지)’을 하겠다고 했다. 핵무기비확산조약(NPT)에 명시된 핵보유국 지위를 유지하면서 비확산 임무를 준수하고 필요시 미국과 핵군축 회담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미 이때 북한은 핵을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음을 만천하에 선포한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라는 비아냥을 들으면서도 놀라운 인내력을 발휘하면서 국민과 세계를 향해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는 확고하다’고 말해 왔다. 한국 정부의 이러한 자세는 이번 미사일 도발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다. 정부는 탄도미사일을 탄도미사일이라고 부르지 않고 ‘발사체’라고 하면서 미사일 도발에도 불구하고 대북 식량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北은 일방적 이득, 南은 일방적 손해

지난 1년간 북한은 일방적으로 이득을 거둔 반면, 한국은 일방적으로 손해만 봤다. 북한은 핵 능력 완성으로 필요성이 현저히 감소한 핵‧미사일 시험을 중단한 대가로 대북제재 이행을 느슨하게 만들었고 한미 연합훈련 중단과 9·19 군사분야합의를 통해 한국의 안보태세를 흔들었다. 거의 아무 것도 안 내고 엄청난 수익을 거둔 수지맞는 장사를 한 셈이다. 미국은 큰 손해 없이 제재 효과를 확인하고 ‘조선반도 비핵화’가 아닌 ‘북한 비핵화’ 원칙을 확고히 했으니 괜찮은 성과를 얻은 셈이다.

여기에 비하면 한국은 거의 빈손이다. 한‧미 갈등이 표면화된 가운데 김정은으로부터 “오지랖 넓은 중재자 행세를 하지 말라”는 핀잔까지 들어야 했다. 가장 뼈아픈 손실 중 하나가 한‧미 연합연습‧훈련의 중단 또는 축소이다. 6·25 전쟁 이후 한국이 평화와 번영을 구가할 수 있었던 것은 튼튼한 연합방위태세 덕분이었고 그 근간은 연합훈련이었는데, 그 뿌리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반격 연습과 대규모 야외 기동훈련, 정부와 군이 동시에 참가하는 국가총력전 연습 등이 중단된 것이다. 정부는 중단이 아니고 변경된 것이며 오히려 연합방위력이 향상됐다고 강변하지만, 이는 ‘김정은의 핵 포기 결단’에 버금가는 거짓말일 뿐이다.

껍데기만 남은 연합 연습‧훈련

그동안 한미 양국은 국가적 차원에서 매년 두 차례의 연례 전시 연습을 해왔다. 봄에는 북한의 전쟁 도발에 대비한 미군 증원과 후방지역 방어를 위한 키 리졸브(KR) 연습을 했고, 8월에는 전시 정부연습(을지)과 연합 군사연습(프리덤 가디언스)이 통합된 을지 프리덤 가디언스(UFG) 연습을 해왔다. 전투병력과 실제 장비가 투입되는 연합 야외기동훈련(FTX) 중 대표적인 것이 2월 KR연습에 이어 3~5월에 진행되는 독수리(FE) 훈련이었다. 이 기간 동안 진행된 대표적인 훈련이 연합 상륙훈련인 쌍용 훈련, 연합 공군훈련인 맥스선더 훈련 등이었다. 맥스선드 훈련은 후반기에도 한 차례 더 진행되었고, 연말에는 또 다른 연합 공군훈련인 비질런트 에이스 훈련이 연례적으로 실시되었다. 세계 최고라는 부러움을 사던 이 연합 연습‧훈련 체계가 하노이 제2차 미‧북 정상회담 직후 한미 국방장관의 한 통화 전화로 빈껍데기만 남기고 사라진 것이다.

KR 연습은 ‘동맹 19-1’라는 이름으로 개칭되어 1부 위기관리와 방어단계 연습만 할 뿐 2부 반격단계 연습은 생략되었다. 한‧미 연합군과 정부가 같이 참여하는 세계 유일의 ‘연합 국가 총력전 연습’인 UFG 연습도 해체되어 5월에 ‘을지‧태극 연습’이란 명칭으로 한국 정부와 군만 참가하고 8월에는 한‧미 군사연습을 하되 KR 연습처럼 반격단계를 생략할 예정이다. 이렇듯 연습내용이 허술해진 것에 더하여 UFG 연습기간에 전시 작전권 조기 이양을 위한 최초운용능력(IOC) 평가도 병행한다고 하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연합야외기동훈련도 대부분 중단되었다. 올봄 예정됐던 쌍용 훈련과 맥스선더 훈련은 이미 취소됐고 후반기에 있을 2차 맥스선더 훈련과 비질런트 에이스도 취소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 국방부는 연대급 이상 대부대 훈련을 하지 않더라도 대대급 이하 소부대 연합훈련은 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러면 지금까지 “대부대 한‧미 연합훈련을 통해 동맹의 의지를 과시해 북의 도발을 억제하고 연합방위력을 실질적으로 강화했다”고 한 말이 다 거짓말이란 소리가 된다. 더구나 대대급 이하 훈련은 아주 특수한 분야를 제외하고는 자국군 단위로 하는 것이 기본이다. 연합훈련은 대부대 훈련으로 갈수록 효과와 의미가 크기 때문에 국방부의 변명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연합 연습‧훈련 중단이 가져올 다섯 가지 치명타

연합 연습훈련 중단이 가져올 문제점들을 재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반격연습의 생략으로 전쟁 억제력이 약화됐다. 한‧미동맹의 제1 목적은 전쟁 억제이고, 그다음이 억제가 실패해 북한이 전쟁을 일으키면 최소의 희생으로 승리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북한이 전쟁을 일으키지 못한 것은 아군의 반격으로 정권이 붕괴할 수 있다는 공포 탓이다. 그런데 억제의 핵심인 반격연습을 빼고 방어 연습만 하면, 북한이 한국의 반격 의지와 능력을 의심하여 ‘밑져봐야 본전’이라는 계산 하에 전쟁을 도발할 가능성은 커진다. 미(美) 증원군의 한반도 이동시간을 감안하면, 해‧공군은 초기 방어단계부터 투입될 수 있지만 지상군 증원은 반격단계가 되어야 가능하다. 지상 작전은 지형 여건과 다양한 부대의 참가로 해‧공중 작전에 비해 훨씬 더 복잡하고 한미 간 협조해야 할 사항도 많다. 더구나 북한 지역에서의 반격 작전은 평소에 가볼 수 없는 지역에서 수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많은 연습이 필요한데, 이를 생략하는 것은 시늉만 내겠다는 소리에 불과하다.

둘째, 전투 병력과 장비를 동원한 연합 야외기동훈련도 대부분 중단되어 실질적인 전투능력을 유지할 기회가 사라졌다. 쌍용 훈련, 맥스 선더 훈련 등이 취소되었고 비질런트 에이스 훈련까지 중단하면, 군이 실제 훈련은 하지 않고 지휘소에 앉아서 워게임 연습만 하는 것이 된다. 이런 군대는 유사시 제대로 싸울 수 없다.

셋째 UFG 연습이 해체되어 군사연습과 정부연습으로 분리됨으로써 전시에 대비하는 연합훈련의 정상적 발전 구조가 깨지고 제대로 된 연합 국가 총력전 연습 기회가 사라졌다. 한미 양국은 매년 UFG 결과를 분석해 연합 작전계획과 정부의 전시계획인 충무계획을 보완하고 각종 대비태세를 보강해 왔으나 이제 이런 것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세계 유일이자 가장 뛰어난 전시 대비 국가 총력전 연습 체계를 서둘러 없앤 이유가 무엇인가? 국민은 그것을 알고 싶어 한다.

넷째 한‧미 주요 군 인사들의 보직기간(1~2년)과 한국군 병사들의 복무기간(20개월 이내)을 종합할 때, 대략 1년 정도 제대로 훈련을 하지 않으면 정상적인 전투력 발휘가 어려워진다. 2018년 6월 싱가포르 회담 이후 연합훈련이 중단된 데 이어, 9월 평양회담 이후 한국군 단독훈련마저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더구나 장병 정신무장과 군 기강 해이마저 심각하다. 무장해제가 아니고 무엇인가?

다섯째 연합훈련 중단이 계속되면 미국 내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해체 여론이 힘을 얻을 수 있다. 미국은 훈련과 전투준비가 부족해 승리할 가능성이 적은 병사들을 전투에 투입하는 것은 살인행위와 다름없는 비윤리적 행위로 본다. 그래서 “훈련이 안 된 군대는 전장(戰場)에 투입하지 않는다”는 철칙을 가지고 있다.

연합 연습‧훈련 복원은 정부의 헌법적 의무다

현재 북한 비핵화는 아무런 진전이 없는데 국가와 국민의 생존을 위해 막중한 한미동맹은 급속히 훼손되고 있다. 정부가 헌법이 명시한 ‘국가보위 의무’를 다하기 위해 당장 해야 할 것은 연합 연습‧훈련을 즉각 복원하고 북한 핵능력 증강과 연계해 이를 더욱 강화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연합훈련을 완전하게 복원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전환과 한미 간 협의를 위한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국방부는 이를 감안해 우선 현 여건하에서 최대한 연합방위력을 유지할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합참‧연합사의 통제하에 제대별로 연합 전술토의와 도상훈련, 지휘소 연습 등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부대별‧기능별로 다양한 야외 연합훈련을 강화하고 이를 조직적으로 통합해 전체 훈련을 한 것과 비슷한 효과를 거두는 방안도 있다. 탐색구조연습(SAREX) 같은 인도적 재난대비 훈련과 환태평양군사훈련(RIMPAC) 등 다자(多者)간 해외훈련에 적극 참가해 한‧미 연합훈련을 병행하는 방법도 강구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합리적인 대안들이 제시되어도 정부가 경청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정부로 하여금 전문가들의 충정어린 조언을 경청하게 만드는 것은 국민의 몫이다.

공동기고 : 신원식(前 합참 작전본부장), 송대성(前 세종연구소장), 김태우(前 통일연구원장), 박휘락(국민대 정치대학원장)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