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곰은 오히려 늘고 있는데?
생태주의 VS 인간중심주의, 언제까지 대립해야하나
심지어 ‘밀웜’은 스티로폼도 분해, 지속가능한 개발로 나가야

조윤희 부산 금성고 교사
조윤희 부산 금성고 교사

교과서의 환경 단원을 가르칠 때면 언제나 가슴이 답답하다. 또 어떤 공포장사와 직면해야 할지.
작년 여름 내내 ‘녹조라떼’ 타령과 4대강 유죄 타령으로 터무니없는 거짓과 싸워대야 했다. 올해도 예외가 없어서 환경 단원에선 ‘4대강 이야기, ’녹조 라떼 이야기‘를 해야 했다. 한술 더 떠 빙하가 녹아 가라앉는 섬 이야기, 그리고 쌍벽을 이루는 환경론에 대해서도 관점을 흔들어줄 수업은 필수였다.

● 북극곰이 무슨 죄?

환경단체들은 언제나 극단적인 이야기를 전달하고 과장된 정보를 유포한다. ‘환경 원리주의자(?)’들의 극단적 공포 마케팅이 또 교과서에 소개되어 있었다. 빙하가 녹아 북극곰은 사라지고 그리고 투발루 섬이 가라앉는다는 이야기. 잘 알려진 ‘북극곰의 눈물’이라는 영상 등을 통해 비쩍 마르고 불쌍한 북극곰은 빙하가 녹아내려서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게 된다는 등 개체수가 줄고 있다는 이야기였고, 북극곰을 살리기 위해 환경 보호에 적극 나서야 하며, 빙하를 녹게 만드는 대기 중 CO2의 농도를 감소시키기 위해 대체 에너지를 개발해야 한다는 등 이야기가 많았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북극곰은 최상위 포식자로, 먹이사슬 중 북극곰을 잡을 포식자는 인간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들이 북극곰을 보호하기 위해 잡지 않기로 한 이후부터 북극곰은 사실상 그 개체수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캐나다의 생물학자인 수잔 크록포드는 2019년 3월 11일(현지시간) 발표한 논문에서 "북극곰이 지구온난화로 인해 멸종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의견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없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미국 어류야생동식물보호국(USFWS)은 '지구온난화' 때문에 인해 얼음 면적이 계속 줄고, 북극곰의 먹잇감과 서식지가 사라지고 있으며, 2050년이면 북극곰 개체가 30% 이상 감소해 1만5000마리로 줄어들 것으로 예측하는 등 공포심을 자아낼 보고를 계속 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미국 지질조사국이 지난 2005년 조사한 북극곰은 2만4000마리 수준인데 비해 2018년 현재 2만9000마리 이상으로 1973년 이후 가장 많은 개체수라는 것이다. 수잔 크록포드는 "지구온난화로 북극 빙하량이 계속 줄어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2005년 이후로 북극곰 개체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면서 "언론에서는 기후변화에 대한 잘못된 지식을 갖고 '굶어 죽은 곰' 사진 등으로 감정을 내세워 거짓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투발루나 몰디브 같은 섬이 빙하가 녹으면서 가라앉고 있다는 이야기 역시 환경 파괴의 결과 빚어지는 비극으로 과장되어 전파되고 있다. 투발로의 해수면은 1년에 2mm 높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뉴질랜드 오클랜드 대학 연구팀의 연구 결과 투발루의 국토 면적이 지난 40년 동안 오히려 더 넓어졌다는 것이다. 연구팀에 따르면 1971년부터 2014년 사이에 촬영된 항공·위성 사진 수백 장을 비교해 투발루의 지형 변화를 추적한 결과, 투발루의 국토 전체 면적은 43년간 약 0.74㎢의 땅이 새로 생겨 2.9% 커졌다는 것이다. 

환경단체들은 ‘공포 마케팅(?)’을 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기 때문에, 극도로 파괴된 자연상태를 상상하게 하고, 그런 모습을 반복적으로 확산시키며 특히 영상 등을 주입시킨다. 반복되는 영상을 보면서 우리는 환경단체의 주장이 정의롭고 또한 가장 인간적이며 생태 중심주의적 사고라고 굳게 믿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반대를 하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비인간적이고 인도적이지 못하며 잔인하고 파괴적인 생각이라고 믿게 만든다.

이런 식의 ‘환경 만능 주의적 생각’이 우리의 사고를 고착화시키고 환경과 인간의 조화와 공존을 오히려 부자연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 인간은 자연의 일부? 생태 중심주의 환경론자는 답하라!

교과서에서 환경을 가르치는 단원에 두 가지 환경관이 등장한다. 생태중심주의 환경관과 인간중심주의적 환경관이 그것이다. 자연의 가치를 인간의 이익에 따라 평가하는 관점인 인간 중심주의 자연관과 모든 생명체가 자연의 일부이며, 인간도 자연으로부터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자연을 구성하는 일부라고 보는 생태 중심주의 자연관으로 구분한다. 인간 중심주의 자연관은 인간과 자연을 분리하여 바라보는 이분법적 세계관으로, ‘자연을 이용함으로써 인간의 삶이 더 윤택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서 다소 부정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그에 반해 생태중심주의 자연관은 자연의 가치는 인간에게 얼마나 이익이 되는가로 평가해서는 안 되며, 생태계의 모든 것이 존재의 이유가 있으므로 자연 그 자체의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고 기술한다. 그리고 인간과 자연은 서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로서 서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야함을 강조한다. 여기까지는 매우 아름다운 기술이다.

계속 교과서에서는 인간과 자연의 유기적 관계를 강조하면서 인간과 자연의 바람직한 관계가 ‘조화와 균형’임을 관철시킨다. 생태의 항상성을 강조하면서 인간도 생태계의 일부로서 다른 생명체 및 환경과 유기적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그러나 인간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자연을 개발하여 생태계의 안정을 깨뜨리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인간에게 되돌아오며 인간과 자연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사실을 계속 주지시키면서 정작 학생들이 생각해보고 풀어야할 문제에서는 두 개의 자연관을 분리시킨다.

그림 1. 자연환경과 인간(출처. 통합사회 교과서 54쪽, 비상에듀)
그림 1. 자연환경과 인간(출처. 통합사회 교과서 54쪽, 비상에듀)

가난한 케냐를 위해 그린벨트를 만들자고 나무를 심는 ‘왕가리 마타이’의 행동은 왜 생태중심주의 자연관이기만 해야 할까? 나무를 심어 자연을 복구하는 것이면 생태주의란 말인가? 결국 복원된 자연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것이 되는데 그것이야 말로 인간을 위하는 인간중심주의 자연관이 아니고 무엇일까? 인간이 자여의 일부라는 사고에서 출발한 것이 생태중심주의 자연관이기 때문에 자연을 이롭게 해고 자연을 위하는 자연관이면 당연히 인간을 이롭게 하고 인간을 풍요롭게 하는 자연관이 포함될 수밖에 없다. 편협한 인간중심주의 사고가 간혹 자연을 파괴하고 생태계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극단적인 환경원리주의가 아니라면 환경을 위하는 생태주의 자연관은 인간 중심 자연관의 외연을 넓힌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걱정이 되는 부분은 이렇게 교과서가 주장하는 이분법적 사고가 학생들의 사고를 편협하게 만들며, 생태중심주의나 자연으로의 회귀만이 인간 사회를 이롭게 할 것이라는 ‘원리주의’적 사고에 묶어 둘까하는 것이다. 자연과 인간은 분리될 수 없으며 환경은 공포의 대상이 아닌 우리가 돌보고 함께 생존해야할 장인 것이다. 그것을 가르치자면서 정작 이분법적 사고를 나열하고 있으니 걱정할 수밖에 없다. 세상은 넓고 의견은 다양할 수 있다. 하나만 답이라고 가르치는 고정된 사고는 편협함을 부를 뿐이다.

● 과학과 기술이 시장과 만날 때 지속가능한 개발

과학은 이제 환경을 복원시키고 치유하는 ‘생태주의’ 로 다가간다. 원시 자연을 고집하면서 인간에게 불편과 재앙만을 안겨 주는 것이 생태주의여야 한다는 것은 억지다. 오늘 아침 발견한 뉴스 중엔 스티로폼을 먹어치우는 벌레가 발견된다고 보도가 있었다. 플라스틱과 스티로폼이 환경의 주범이니 편리함을 포기하라고? 과학과 기술의 힘은 넘지 못할 한계를 점점 축소시켜가고 있다. 과학과 기술의 힘으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지속 가능한 개발이고 시장의 힘으로 그 한계를 점차 넘어서는 것이다. 

과학과 기술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북극곰도, 자연관도 fact만 이야기해야한다. 더 보태지도 빼지도 말고!

조윤희(부산 금성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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