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칼럼] 강사법의 진짜 희생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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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9.05.10 09:45:04
  • 최종수정 2019.05.10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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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강사 피해도 크지만 더 큰 '진짜 피해자'는 학생들이다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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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예상 가능했던 일이다. 시간강사들이 무더기로 대학에서 밀려나고 있다. 올 4월에만 1만 6천 명이 실직했다. 전체 시간강사 수가 7만 6천명 내외이니 무려 5분의 1이 일자리를 잃은 셈이다. 강사법 때문이다. 2010년 한 지방대 시간강사가 처지를 비관해 자살한 사건에서 촉발되어 이듬 해 제정된 강사법은 시간강사의 교원 지위 인정, 1년 이상 임용 및 최장 3년까지 임용을 보장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여기에 사회보험 의무화와 퇴직금 지급까지 들어있으니 이보다 아름답고 고마울 수가 없다.

문제는 대학이 이 강사법을 감당할 체력이 안 된다는 것이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강사법 시행에 따른 추가 소요예산은 대략 2,965억 원이다. 그러나 교육부가 확보한 예산은 그 10분의 1인 288억 원이 전부다. 아무리 상상력을 발휘해도 답이 안 나온다. 법 제정 이후 시행을 번번이 미룬 것도 그 때문이다. 강사법이 발효되는 하반기에는 또 다시 1만 5천 명에 달하는 시간강사들이 일자리를 잃을 예정이다. 읽고 가르치는 일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고학력 실업자 3만 명 시대가 열린다. 시간과 돈이 남아돌아 취미 삼아 공부를 한 일부를 빼면 이들은 곧 생활고를 넘어 생계를 걱정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자, 여기까지는 정확한 숫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 아시는 내용들이다. 그러나 시간 강사들의 ‘보이는’ 피눈물에 가려 제대로 주목을 받지 못하는 ‘안 보이는’ 진짜 피해자들이 있다. 바로 학생들이다.

대규모 강의가 늘어난다는 것의 의미

강사법 제정 이후 대학의 소규모 강의는 줄고 50명 이상의 대규모 강의는 늘어나고 있다. 이게 무슨 얘기냐. 다양한 내용의 각론 수준 강의가 사라지고 개론이나 총론 수준의 일반적인 강의가 학생들에게 제공된다는 말이다. 시간강사들은 전임교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학문이 젊고 현실 밀착형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자신만의 고유한 강의를 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강의를 다듬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한편 학생들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강의 배정을 받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소통하고 요구를 반영하기 위해 노력한다. 소생이 학교에서 주로 가르쳤던 과목은 ‘영화 기획 및 시나리오 작법’이다. 아마추어 시나리오 작가들의 특징은 예산을 생각하지 않고 시나리오를 쓴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작 예산 30억 원이라는 상한선을 미리 정해주고 거기에 맞춰 시나리오를 쓰게 했다. 이 경우 장르 및 각종 표현에 있어 제약을 염두에 두어야 하니 현실적인 시나리오가 나올 수밖에 없다. 추격 씬 하나에 자동차 수십 대가 박살나고 빌딩이 화염에 휩싸이는 무식한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런 시나리오 강의는 영화 제작 현장 경험자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그리고 영화 시나리오는 문학이 아니다. 영화 시나리오는 돈을 만들어내는 기계인 것이다. 해서 쓸데없이 지문을 폼 나게 써 봐야 말짱 헛일이다. 대부분의 아마추어들은 지문을 다듬는데 쓸데없는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 이 역시 강단에서 책으로 영화를 배운 사람이라면 절대 심어줄 수 없는 개념이다. 소생의 경우는 전공과목이었지만 강사법 유탄을 맞아 사라진 정말 좋은 교양과목들도 수두룩하다. 몇 년 전 한 명문 사립대에 개설되었던 ‘춤과 음악’이라는 강의는 학생들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 강의였다. 불행히도 올해부터는 그 강의를 들을 수 없다. 학교에서 일방적으로 그 강의를 폐강시켜 버렸다. 소규모 강의가 줄어든다는 것은 이런 다채롭고 양질의 강의들이 줄어든다는 것이고 학생들의 입장에서 보면 갈수록 선택권이 줄어든다는 의미인 것이다. 대형마트에 갔는데 사과잼 A, 사과잼 B, 딸기 잼 A, 딸기 잼 B가 있는 게 아니라 사과잼 하나만 덜렁 있는 격이라고나 할까.

반면 늘어나는 일반적인 강의들은 도서관에서 책만 봐도 알 수 있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러한 대규모 강의가 실기, 실습이 필요한 과목에도 적용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험 상 과목 당 학생 수가 15명을 넘으면 실습한 내용들을 절대 꼼꼼히 봐 줄 수 없다. 학생들의 스타일과 장, 단점을 꿰고 이전 실습 내용에 대한 기억이 충분해야 하는데 정말 탁월한 기억력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불가능하다. 친하게 지내던 한 대학의 영문학과 교수(전임교원)는 영작(英作)실습에 40명이 넘는 학생들이 배정되었다며 난감함을 토로한 적이 있다. 하나씩 고쳐주기에 ‘절대 시간’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그게 벌써 3년 전 이야기이니 지금은 더 심각할 것이다. 시간강사 대신 전임교원이 담당하는 강의비율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학생들에게는 재앙이다. 그리고 알바 등을 하며 마련한 피 같은 등록금에 대한 배신이다. 강사법은 최저 임금제나 주 52시간 노동제와 같은 맥락이다. 선의로 출발했으나 종국에는 악마가 입을 벌리고 있는, 전형적인 관료 주도 정책 실패, 시장 실패인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또 한 차례 유예를 대안으로 말하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절대 반대다. 그건 바로 죽이지 않고 천천히 죽이는 거다. 그게 더 고통스럽다. 그리고 강사들은 자신이 선택한 인생이라고 치자(강사님들 미안합니다). 대체 학생들은 대체 무슨 죄니. 비싼 등록금 내고 허접한 교육 받으려고 대학 4년 다니는 게 아니란 말이다.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강사법, 당장 무조건 폐기해야 한다.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문화예술인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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