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만에 교육과정‧집필기준 동시에 마련…“졸속 논란 피할 수 없다”
출판사들은 ‘9개월’ 만에 교과서 2~4권 개발해야

박근혜 정부가 기존 역사교과서의 좌편향에 문제의식을 갖고 추진한 ‘국정교과서’가 폐기된 뒤 학생들은 어떤 교과서로 대한민국의 역사를 보고 있을까. 문재인 정부는 집권 이후 국정교과서를 사실상 적폐로 낙인찍고, 지난해 8월부터 새로운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연구에 착수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불과 6개월 만에 교육과정‧집필기준 초안을 내놨다. 이후 지난 26일 교육부는 3차 공청회에서 최종 시안을 발표했다. PenN은 단독 입수한 ‘중학교 역사‧고등학교 한국사 교육과정 및 집필기준 최종 시안’의 문제점을 분석해 上‧中‧下 3회 시리즈로 연재한다. 1편에서는 ‘대한민국은 나쁜 나라’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역사교과서의 문제점을, 2편에서는 좌편향된 근현대사 역사 서술 문제를 각각 다루고, 3편에서는 ‘교육부도 인정한’ 이번 교육과정‧집필기준 마련의 절차적 하자에 대해 살펴본다. <편집자 주>

교육부가 이번에 내놓은 ‘중‧고등 역사교과서 교육과정‧집필기준’은 지난해 9월 연구진이 첫 워크숍을 연 이후 약 3개월 만에 완성됐다. 첫 워크숍(9월8일)으로부터 시안을 처음 공개한 서울 지역 1차 공청회(12월4일)까지는 3개월도 채 걸리지 않았다.

●'번갯불에 콩 굽듯' 교육과정‧집필기준 3개월만에 동시 완성

폐기된 국정교과서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새로운 '교육과정'의 내용과 방향을 정한 뒤 이에 따른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을 마련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다. 교육부와 평가원이 국정 교과서 지우기에 급급해 ‘졸속’으로 교과서를 만드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쏟아진다.

시안을 급하게 마련하다 보니 1차 공청회 종료 이후 2차 공청회까지 보름도 안 되는 기간에도 내용이 크게 바뀌었다. 2차 공청회에 토론자로 참석했던 전북대 김유리 교수는 “1차 공청회 이후 짧은 기간에 너무 많은 내용이 바뀌어서 깜짝 놀랐다”며 “기존 교육과정에서 좋은 점까지 졸속으로 폐기해버린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어 “너무 많이 바꾸는 것보다 문제점을 수정, 보완하는 게 낫지 않나”고 덧붙였다.

교육과정과 집필기준을 동시에 연구해 마련한 것도 절차적 하자 중 하나로 지적된다. 정상적 절차대로라면 교육과정을 개발한 뒤 이를 토대로 집필기준 마련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부도 스스로 이러한 절차적 하자를 인정했다. 한 교육부 관계자는 PenN과의 통화에서 “교육과정과 집필기준을 동시에 연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일이다”고 말했다.

●1‧2‧3차 공청회 모두 ‘짬짜미’로 진행…설문조사 긍정답변 평균 70% 넘어

학계와 현직 교사 및 역사학계의 의견을 두루 들어야 할 공청회가 ‘짬짜미’로 진행된 것 또한 새 집필기준 마련 과정의 논란거리다.

서울‧세종‧광주‧부산 등 4회에 걸쳐 열렸던 1차 공청회와 서울에서 열린 2‧3차 공청회에 참여한 전체 인원이 500명도 채 안 되는 수준이다. 제대로 홍보를 하지 않아 대다수의 현직 교사와 학부모들이 공청회 개최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앞서 ‘2015 개정 교육과정’을 마련하면서 교육부가 공청회 개최 소식을 수차례 알리는 등의 노력을 한 것과 확연히 대비된다.

공청회에는 공문을 통해 신청한 일부 현직 교사들만 참석했다. 일각에서는 그마저도 전국역사교사모임(전역모) 등 좌편향 성향이 두드러진 단체에 소속된 교사들이 주로 참석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1차 공청회 이후 시행했던 설문조사에 따르면 각 설문 문항에 따른 긍정답변 비율은 평균 70%를 상회한다. 설문조사에 응답한 교사의 숫자도 185명에 그쳤다.

‘지역별 설명회에 대한 귀하의 만족도는?’이라는 문항에 대해 매우 만족스럽다(40.52%)와 만족스럽다(43.79%)는 긍정 답변은 84%였고, ‘고등학교 한국사를 근현대사 중심으로 구성한 것이 적절한가’라는 문항에 대해서는 매우그렇다(17.44%)와 그렇다(51.16)%라는 긍정 답변이 68%였다.

1‧2‧3차 공청회에 모두 참석했다고 밝힌 현직 교사는 3차 공청회장에서 “오늘 참석한 학부모들께서 공청회 개최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점을 지적한 것에 공감한다”며 “저도 그런 부분이 아쉬웠다”고 말했다.

한편 제주도교육청은 유일하게 교육부 공청회 기간에 맞춰 ‘제주 4‧3사건의 중고등 역사교과서 시안’을 마련했다. 제주교육청이 마련한 시안에는 과거 미군정에 대한 책임을 부각하고 제주도의 1947년 3‧1절 기념 대회에서 경찰의 발포로 여러 명이 죽었다고 주장하는 내용 등이 실렸다. 제주교육청은 이를 역사교과서에 싣기 위해 지난해 12월27일 교육부에 시안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출판사들 9개월 만에 2~4권 새 역사교과서 개발해야

교육과정‧집필기준 확정 이후 절차도 시간이 촉박하긴 마찬가지다. 만약 교육부가 예고한 대로 이달 중에 집필기준을 확정해 출판사들이 3월부터 곧장 새로운 교과서 집필에 들어가더라도 집필에 쓸 수 있는 시간은 9개월뿐이다.

다만 교육부 관계자는 교육과정‧집필기준이 이달 이달 중으로 확정될지 여부를 알 수 없다고 밝혔다. 관계자는 "아직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라 확정된 바는 아니다"며 "당시 계획은 그랬으나 추가적으로 의견을 수렴하면서 일정을 조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교육부가 더 많은 의견을 수렴할수록 출판사들에 주어지는 교과서 개발 기간은 더 단축되는 상황이라는 뜻이다.

경기도 부천의 한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조모 교사는 3차 공청회 현장에서 “(교육부가) 국정교과서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교과서를 급하게 만들었다는 얘기가 안 나올 수가 없다”며 “중학교의 경우 역사 1,2와 교과지도까지 4권을 만들어야 하는데, 상식적으로 9개월만에 개발하는 것이 가능하느냐”고 지적했다.

평가원측은 이에 대해 “일정에 따라 교과서를 개발하는 게 쉽지 않을 거라는 걸 알지만, 평가원에서는 교과서 개발 일정을 결정할 권한이 없다”며 “교육부 쪽에 의견을 전달해야 조정이 가능할 것”이라고 책임을 넘겼다.

이슬기 기자 s.l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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