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뺀 '민주적 기본질서' 명시했다 4시간여 만에 번복
헌법전문에 촛불혁명 등 좌파민중혁명 치적 줄줄이 명시
130개조 중 90여 조항 수정·신설…反시장·국가주의 발로

전날(1일) 처음으로 실체를 드러낸 더불어민주당 표 헌법 개정안이 '사회주의 개헌' 논란을 낳은 옛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현 헌법개정·정치개혁특위) 자문위 권고안과 다를 게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회주의 개헌 논란이 일자 "법적 구속력이 있지도 않다"고 자문위안(案)과 애써 거리를 두던 민주당이었으나, 이번엔 내부에서 "개헌특위 자문위 안을 토대로" 여당안을 도출했다는 언급도 나왔다.

민주당은 당초 통일정책 방향을 설정한 헌법 제4조 등에 명시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서 '자유'를 배제하고 '민주적 기본질서'로 바꾸기로 했다고 언론에 공표했다가, 수 시간 만에 이를 철회했다고 정정 브리핑을 하는 등 서둘러 발을 빼는 모습을 보였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오른쪽부터)와 김정우 대표비서실장, 우원식 원내대표가 1일 국회에서 열린 개헌의원총회에서 대화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오른쪽부터)와 김정우 대표비서실장, 우원식 원내대표가 1일 국회에서 열린 개헌의원총회에서 대화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자유민주헌법의 핵심인 '자유'가 사라질 뻔했다는 사실 외에도, '좌파 민중혁명 치적'에 다름없는 내용을 전문 곳곳에 담아 자유우파 진영의 반발이 예견된다. 

1979년 '부마(부산·마산)항쟁'과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1987년 '6월 민주항쟁', 국론분열 속 전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관철시킨 '촛불 혁명'을 명시하기로 했다. 

또 헌법 제1조 3항을 신설해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을 위하여 행사된다'는 내용을 넣어, 절차적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헌법 조문에 '국민' 표현을 맥락에 따라 '사람'으로 변경하기로 해, 조문에 "사람중심의 세계관"을 명시한 북한 헌법(제3조)에 한발 다가간 것 아니냐는 의혹마저 제기된다.

개헌안 전체 윤곽에 관해 제윤경 원내대변인은 전날 오후 6시쯤 의원총회 직후 브리핑을 통해 "헌법 130조 중 90여 개 조항을 수정하거나 신설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제 원내대변인은 첫 브리핑 당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민주적 기본질서'로 수정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전했으나, 이후 4시간 여 흐른 밤 10시쯤 "대변인의 착오"로 잘못 전달됐다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는 정정 브리핑을 냈다.

또 첫 브리핑에서 헌법에 명시하기로 했다던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도 헌법이 아닌 법률로 규정하기로 했다고 함께 정정했다.

민주당 원내 관계자는 "개헌특위 자문위 안을 토대로 '자유'를 빼는 안이 올라와 있었는데, 제 원내대변인이 브리핑을 준비하러 나간 사이 '자유민주주의’를 존치하기로 결정됐다"며 "이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브리핑이 진행돼 일어난 해프닝"이라고 해명했다.

민주당은 개헌안에 행정수도에 대한 조항도 포함하는 한편 경제민주화와 토지공개념을 강화하고 헌법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명시하는 등 좌경화 노선을 그대로 노출했다.

경제민주화 강화 조치와 관련해서는 제119조의 '경제의 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에서 '할 수 있다'를 '한다'고 변경하기로 했다. 시장경제에 대한 정부 개입의 여지를 둔 것을 넘어 의무화해 국가주의의 발로라는 지적이 나온다.

개인의 토지소유를 허용, 사유재산제도의 근간으로 꼽히는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은 자문위안처럼 폐지하지는 않았다. 대신 토지공개념을 강화하고 투기억제와 관련한 국가의 의무와 국민 주거생활의 안정도 헌법에 명시키로 했다.

국회에 양원(兩院)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다수 의견으로 제시됐고 감사원의 소속을 국회로 변경하는 의견도 많이 나왔다고 제 원내대변인은 설명했다. 또한 직접 민주주의를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헌법과 법률에 대한 국민 발안권과 국회의원에 대한 소환권을 신설하되 그 범위는 법률을 통해 제한적으로 적용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대통령 궐위 시 대통령 권한대행은 국회에서 선출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고 한다. 이밖에 검찰의 영장청구권도 폐지하고, 생명권·안전권·정치적 망명권·정보기본권 등을 신설하기로 했다.

이번 여당 개헌안은 문재인 대통령과 여권이 강변하는 '지방분권'이나, 야권이 전가의 보도로 삼은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 청산' 문제까지 갈 것도 없이 논쟁거리가 산재해 있다는 지적이다. 정작 야권에서 요구하는 권력구조 개편안은 도출하지 못했다.

자유한국당의 홍문표 사무총장은 2일 오전 BBS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에 출연해 "이번 개헌의 취지는 권력구조 개편과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꾸는 게 큰 골자"라고 재확인한 뒤 "그런데 이렇게 집권당에서 '촛불을 전문에 넣겠다, 5·18을 넣겠다 등 한다면 또 하나의 국민 의견을 수렴해야 할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청회나 토론회를 한다든지, 지역별 순회를 한다든지 하는 게 필요할텐데 이런 걸 전혀 무시하고 불쑥 이런 카드를 내놓으면 국민 동의도 못 받겠지만 여야 간 합의가 되지 않을 것 아니냐"라며 "국민 동의를 얻지 못하는 큰 줄거리를 먼저 내놓고 협상하자고 하면 이것이 진정으로 이번 6월 지방선거에 함께 (개헌 국민투표를) 하자고 하는 것인지 의구심을 갖는다"고 거듭 지적했다.

이런 여야 이견과 논쟁은 사실상 시작 단계로, '국회의원 과반수의 개헌안 발의-20일 간의 개헌안 공고-60일 내 국회의원 3분의2 이상의 찬성 의결-30일 내 국민투표' 일정을 6·13 지방선거 날짜와 맞추기 위해 물리적으로 3월 중 이뤄져야 하는 국회 개헌안 발의 가능성은 한층 낮아지고 있다. 동시에 야권에서 '문재인 개헌'으로 명명한 대통령안 발의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한편 민주당은 이날 한 차례 더 의총을 연 뒤에야 권력구조 개편안에 관한 의견을 냈다. 사실상 '대통령제 유지' 방침을 밝히면서 개헌 구상에 있어 야권과의 간극은 더욱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강훈식 원내대변인은 이날 의총 결과 브리핑에서 "정부형태에 대해서는 '대통령제를 근간으로 분권과 협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협상한다. 선거제도에 대해서는 비례성 강화를 근간으로 협상한다"는 당론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또한 "우리 당은 개헌 130개 조항을 당론으로 채택하면서 양원제, 정부의 법안제출권, 헌법재판소의 구체적 규범통제에 대해서는 추가논의하고 감사원의 소속 문제와 헌법기관장의 인사권은 조율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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