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1~2조 회사를 5~6조라 명시...기본팩트조차 틀려
5억이 5조의 0.01%가 아닌 0.1%라 잘못 계산...한심한 수준
고등법원 2심에선 실제 순이익에 10을 잘못 곱해 계산
첫 상장사 판결도 오류투성인데...비상장사 판결은 어떻게 믿나?
대법 "판결문은 바로잡지만 결정 번복은 없을 것"

 

대법원이 한진중공업 통상임금 소송에서 기본팩트와 사칙연산을 틀려가며 엉터리 수치를 논거로 판결한 사실이 서울경제신문 보도를 통해 확인됐다. 판결은 법정수당을 추가로 지급해 달라는 근로자 측 손을 들어줬다.

사법기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추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고법원인 대법원 판사 조차 기본팩트와 사칙연산을 틀리는 수준이라는 사실이 드러나 충격적이다.

또한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과 관련한 대법원의 첫 상장사에 대한 판결이라 이전에 나왔던 비상장사들에 대한 판결 근거도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매출 1~2조 회사를 5~6조라 명시...기본팩트조차 틀려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김모씨 등 한진중공업 노동자 360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미지급 법정수당 청구는 신의칙에 반한다”는 원심의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3일 밝혔다.

대법원 재판부는 그 이유로 “부담할 추가 법정수당은 5억원 상당으로 보이는데 한진중공업의 매출액은 매년 큰 등락 없이 5조~6조원 상당으로 안정적으로 유지됐다”며 “추가 법정수당의 규모는 피고의 연 매출액의 약 0.1%에 불과하며 연간 인건비 약 1,500억원의 0.3% 정도”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한진중공업이 매년 보유하는 현금성자산도 상당한데 2015년 말을 기준으로 800억원에 이르러 추가 법정수당의 약 160배”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해당 판결문은 기초 사실을 잘못 파악하고 있다. 우선 대법원 1부은 한진중공업의 매출액을 5조~6조원으로 파악했지만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한진중공업은 논란이 된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5조원은커녕 4조원의 매출도 거둔 적이 없다. 

나아가 판결문엔 “한진중공업의 매출액은 매년 큰 등락이 없었다”고 판시했으나 한진중공업 매출은 2008년 3조8,480억원을 기록한 뒤 단 한 번의 반등도 없이 2014년 1조7,990억원까지 떨어졌다. 판결 기준점이 된 2015년 2조413억원으로 소폭 늘었지만 이미 1조8,067억원이 증발한 뒤였다. 지난해 한진중공업의 매출액은 1조7,509억원이었다.

5억이 5조의 0.01%가 아닌 0.1%라 잘못 계산

대법원은 5조~6조원이라는 잘못된 매출액을 기준으로 삼으면서 5억원 상당의 추가 수당 비중도 0.01%가 아닌 0.1%로 잘못 계산한 채 그대로 판결문에 실었다. 

더 충격적인 점은 바로 다음 줄에 “5억원은 인건비 약 1,500억 원의 0.3% 정도”라고 설명한 부분이다. 판사들이 조 단위와 천억 단위를 혼동해가며 계산했다는 점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변론종결일에 가장 가까운 2015년 기준으로 800억원에 이를 만큼 현금성 자산도 충분하다”는 근거도 기업의 현금흐름에 대한 판사들의 무지가 드러난다. 한진중공업 현금성 자산은 2013년 4,461억원이었다가 2014년 2,152억원, 2015년 799억원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현금성 자산을 추세가 아닌 특정 시점으로만 판단하고 결론에 유리한 논거로 삼은 것이다. 자본잠식 직전의 회사인데도 남은 자산만 따진 채 채무에 관한 언급은 전혀 하지 않았다.

판결문 오류 대법원뿐만 아냐...고등법원에서 부터 엉망

한진중공업 통상임금 사건에서 판결문 오류는 대법원뿐만이 아니었다. 지난 2016년 6월 사측의 승리로 결론 난 서울고등법원 2심 판결문에는 한진중공업의 2008~2010년 순이익이 무려 10배나 뻥튀기됐다. 2008~2010년 한진중공업의 실제 당기순이익은 각각 630억원, 519억원, -517억원이었으나 판결문에 삽입된 표에는 6,300억원, 5,190억원, -5,175억원으로 기재됐다.

당시 재판부는 이 통계를 근거로 “한진중공업은 2012년을 제외하면 2010년 이후 계속 큰 폭의 적자를 내고 있었다”며 추가 수당을 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장은 공교롭게도 가장 최근인 지난해 12월 대법원에 합류한 김상환 대법관이었다. 2심 판결문부터 잘못된 수치가 제시됐는데 대법원은 이를 바로 잡기는커녕 한술 더 떠 더 많은 오류를 양산한 것이다.

첫 상장사 판결도 오류투성인데...비상장사 판결 어떻게 믿나?

경영상 어려움을 따지는 논거에서 재판부의 어이없는 오류들이 확인되자 재계와 법조계에선 더 이상 신의칙에 관한 법원의 판단을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일반인도 재무제표를 확인할 수 있는 한진중공업 같은 회사에 관해서도 대법관들조차 엉터리 분석을 내놓는데 실적 자료가 불투명한 비상장사에 대한 논거는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고 답답해 했다.

대법원은 이에 대해 “다음 주에 대법관 직권으로 판결 경정을 할 것”이라며 “숫자가 달라져도 결론은 같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판결경정이란 판결에 오류가 있는 것이 명백할 경우 내용을 실질적으로 변경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판결문을 바로 잡는 절차다.

김민찬 기자 mkim@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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