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일 총장 입장문 전문 게재
검사장 출신 석동현 변호사 "검-경수사권 조정안, 무소불위 권한 경찰에 넘기는 것"
김태규 부산지법 부장판사 "문 총장의 용기 있는 발언에 감사"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 "패스트트랙 폭거가 얼마나 反민주적인지를 보여주는 대목"
민주당 조응천-금태섭 의원마저도 "경찰권 비대화 우려...공수처, '정권의 칼' 될 것"
檢기득권 지킨다는 비난에 네티즌들 "좌파 치부 수사해서 民主 사랑한다는 증거 남겨라"

문무일 검찰총장 [연합뉴스 제공]
문무일 검찰총장 [연합뉴스 제공]

해외 출장 중인 문무일 검찰총장이 지난 1일 출입기자들에게 보낸 입장문을 통해 최근 국회에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법안들과 관련해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동의하기 어렵다”는 등의 이례적 표현까지 써가며 반발한 것에 대해 여야 정치권은 물론 재야의 검사 출신 법조인들이 일제히 지지하고 나섰다.

서울동부지검장 출신인 석동현 한반도인권과통일을위한변호사모임(한변) 공동대표는 2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신설과 검·경수사권 조정 문제에 대해 “(대한민국 형사사법체계)의 근간을 뒤흔드는 조치’”라며 “경찰에 1차 수사권과 종결권까지 주니 이를 통제할 장치가 없어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 무소불위의 권한을 경찰에 넘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해방 이후 존재해온 형사법 체제에  혁명에 가까운 변혁이 일어난다는 설명이다.

석 변호사는 문 총장의 발언을 두고 “굉장히 오랫동안 생각했던 것을 꺼내 놓은 것이기 때문에 결코 즉흥적인 움직임은 아닐 것”이라며 “검찰총수의 발언이기 때문에 매우 무겁게 느껴진다”고 했다.

그러나 문 총장의 이러한 발언에도 검찰 조직의 일치된 움직임이 나올지는 미지수다.

검사출신인 한변의 정장현 변호사는 “방대한 경찰조직에 수사권과 정보권 일체를 주는 것은 현재 수사권과 공소 유지권을 갖고 있는 검찰보다 경찰에 훨씬 더 큰 권력을 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과연 국민이 검찰의 통제를 받지 않는 경찰에 수사를 받는 것을 원하겠느냐”고 덧붙였다.  경찰은 총인원이 12만명에 달할 정도로 방대한 인력을 가지고 있는데다 정치권에 의해 통제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커 견제장치가 없는 무소불위의 권력이 주어지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현직 법관 중에선 김태규 부산지법 부장판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수처 신설을 바라보며’라는 글을 올리고 “이른바 공수처란 기관이 생겨날 모양인데 이 기관은 누가 견제하고 통제하느냐”며 “독자적인 수사권에 기소권까지 부여할 모양인데 여기에 그 수사의 주된 대상이 고위직 경찰공무원, 검사, 법관이면 이 세 조직은 그 신생조직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고 했다.

김 부장판사는 문 총장에 대해 “(작심 발언의) 후과가 무엇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법조의 어른으로서 보인 용기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김태규 부산지법 부장판사 [연합뉴스 제공]
김태규 부산지법 부장판사 [연합뉴스 제공]

문 총장은 입장문에서 “형사사법 절차는 반드시 민주적 원리에 의해 작동돼야 한다”며 “그러나 현재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법률안들은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리에 반한다”고 비판했다. 이를 두고 최악의 경우 사임까지 염두에 둔 작심 발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문 총장은 지난달 23, 24일 이틀 연속 대검찰청 간부 회의를 개최하며 여야 4당이 공수처 설치 법안과 검·경수사권 조정 법안의 패스트트랙 지정 추진을 합의한 데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문 총장은 관련 법안들을 용인할 수 없어 사임으로 저항 의지를 밝힐지 고민한 것으로 전해진다. 회의에 참석한 다수는 “국회 상황이 유동적이니 상황을 더 지켜보며 법안의 부당성을 지적해야 한다”며 사퇴를 고려하는 문 총장에게 장기전을 권유했다.

다수가 제시한 신중론에 따라 문 총장은 지난달 28일부터 사법공조 체결을 위해 오만·키르기스스탄·에콰도르 대검찰청과 우즈베키스탄 대검찰청 및 내무부를 방문하는 해외출장을 떠났다. 그는 오는 9일 귀국할 예정이었으나 1일 작심발언을 쏟아내며 일부 일정을 취소하고 4일 귀국할 예정이다.

문 총장 발언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청와대 내부에 ‘이 정도는 예상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정치권에서는 문 총장 발언에 대한 엇갈린 반응이 나왔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이날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문무일 검찰총장이 (패스트트랙 관련) 사실상 항명으로 비칠 수 있는 공개반발을 했다"며 "이번 패스트트랙 폭거가 얼마나 반(反)민주주의적인지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했다.

나 원내대표는 "공수처 설치 강행과 검경수사권 조정은 검찰총장의 공개비판으로 그치지 않고 앞으로 더 논란을 만들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패스트트랙 처리를 철회하고 원점에서 정치개혁특위·사법개혁특위 논의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선 간사인 백혜련 의원이 “검찰의 반발은 어느 정도 예상했고, 조직 수장으로 의견 피력은 할 수 있다고 보지만 그 내용이 너무 과했다”고 날을 세우며  '날치기'로 통과된 패스트트랙 지정 법안들을 옹호하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조응천-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 [연합뉴스 제공]
조응천-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 [연합뉴스 제공]

그러나 같은 민주당인 조응천 의원은 금태섭 의원에 이어 두번째로 검·경수사권 조정안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나서며 소속 당과 상반된 입장을 개진했다. 조 의원은 금 의원과 같은 검사 출신으로 국제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인 조 의원이 1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경찰은 국내 정보 업무를 전담하면서 거의 통제를 받지 않는 1차 수사권을 행사함으로써, 실질적으로는 과거 국정원에 모든 사건에 대한 1차 수사권을 준 것과 다름없게 됐다”며 경찰권 비대화에 우려를 나타냈다.

금 의원은 지난달 11일 페이스북에 공수처를 지목하며 ‘정권의 칼’로 악용될 수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전례가 없다고 지적하며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들의 발언을 두고 SNS상에선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면 안된다” “민주당 사람인지 자유한국당 사람인지 구분이 안 된다” 등의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문 총장의 발언에 대해 이제는 행동으로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보수성향 언론인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검찰총장 반발’과 국민 반응-“이 정권 수사하면 믿어줄게””라는 제하의 동영상을 올리며 네티즌들의 반응을 소개했다. 문 총장의 발언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문재인 정권의 비리에 대해서도 원칙에 입각한 엄정한 수사를 해야만 한다고 지적한 것이다.

 조 대표에 따르면 네티즌들은 문 총장을 향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권력의 주구(走狗) 노릇을 그만하고 좌파 치부를 수사해 판을 흔들라”며 “문 총장이 민주주의를 진정으로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라면 그 증거를 남겨 놓고 퇴임하라”고 촉구했다.

문 총장이 사퇴까지 염두에 두고 현 정권을 '반민주적'이라고 비판한 것인지, 아니면 조직의 수장으로서 마지못해 검찰의 입장을 전달만 한 것인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청와대나 민주당의 압박이 있을 경우, 국회의 논의에 맡기고 침묵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문 총장의 향후 행보에 대해 법조계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다음은 펜 앤드 마이크가 대검찰청 대변인실을 통해 받은 입장문 전문이다.

다음은 문무일 총장 입장문 전문(全文)

지난 29일 국회에서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법안과 관련하여 검찰총장의 입장을 말씀드립니다.

현재 국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형사사법제도 논의를 지켜보면서 검찰총장으로서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 

형사사법 절차는 반드시 민주적 원리에 의해 작동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법률안들은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리에 반합니다.

또한 특정한 기관에 통제받지 않는 1차 수사권과 국가정보권이 결합된 독점적 권능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올바른 형사사법 개혁을 바라는 입장에서 이러한 방향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국회에서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한 논의를 진행하여 국민의 기본권이 더욱 보호되는 진전이 있기를 희망합니다. 

조준경 기자 calebcao@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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