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 성향 인터넷매체 뉴데일리가 1987년 6월 항쟁과 관련해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하나의 '불편한 진실'을 밝힌 김철홍 장신대 교수의 PenN(펜앤드마이크) 칼럼이 미친 사회적 파장을 다룬 기사를 1일 비중있게 보도했다.

뉴데일리 임혜진 기자는 이날  '원조 운동권의 1987 진실 재평가… 발끈한 오마이뉴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김철홍 교수는 지난달 5일 온라인 매체 '펜앤드마이크'에  '1987년 실제와 영화, 그리고 2017년'이라는 제하의 칼럼을 게재했다"라며 "1987년 6월 항쟁을 재조명한 386 운동권 출신 교수의 글이 좌우 오피니언 리더 사이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전했다. 이 매체는 이어 김 교수의 칼럼 주요 내용을 상세히 소개했다.

뉴데일리는 "이 칼럼이 펜앤드마이크에 게재된 후 엄청난 사회적 파장이 일었다"면서 "오마이뉴스가 김 교수를 '극우'라고 표현하면서 다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오마이뉴스 기사 댓글에는 오히려 김 교수를 두둔하고 그를 '극우'라고 낙인찍은 오마이뉴스 기자를 비판하는 댓글이 많았다"고 소개했다.

일부 누리꾼은 "저도 그 시대 사상의 스펙트럼에서 극좌로까지 가봤던 사람이라 잘 안다. 김철홍 교수 말 중에 거짓은 없다"고 했고 또 다른 누리꾼은 "극우가 무슨 뜻인지 알고나 계신지...공부 좀 하세요"라고 꼬집었다고 뉴데일리는 덧붙였다.

한편 최근 몇 차례 PenN이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처럼 한국 좌파세력 일각에서는 정략적, 이념적 목적을 위해 제대로 공부도 하지 않은 채 자신들과 견해가 다른 개인이나 집단에 대해 '극우'라는 용어를 남발해 낙인을 찍거나 위축시키려는 행태가 종종 나타나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에 대한 이념적 비판은 강도가 훨씬 낮아도 '구시대적 색깔론'으로 몰아붙이는 이중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극우는 민족, 극좌는 계급을 중요시하는 차이가 있지만 극우와 극좌는 전체주의적 성격과 폭력 옹호라는 공통점이 있다.

히틀러의 나치즘이 극우를 대표한다면 스탈린의 소련, 마오쩌둥의 중국, 김일성 3대 세습 왕조의 북한은 극좌를 대표한다. 한국의 현실에서는 자신들이 원하는 목표를 위해서라면 폭력도 서슴지 않는 극좌적 행태를 보이는 집단은 적지 않지만 노골적인 폭력을 옹호하는 극우는 극히 드물다. 실제로 지금까지 각종 시위에서도 좌파세력의 시위가 우파세력의 시위보다 훨씬 폭력적인 양상이 자주 나타난 바 있다.

윤희성 기자 uniflow84@pennmike.com
 
다음은 뉴데일리가 1일 보도한 관련 기사 전문(全文)이다. 

원조 운동권의 '1987' 진실 재평가... 발끈한 오마이뉴스

"6월 항쟁 주도 세력은 주사파" 김철홍 교수 지적에, 오마이뉴스 '극우 딱지' 대응 논란

 

1987년 6월 항쟁을 재조명한 386 운동권 출신 교수의 글이 좌우 오피니언 리더 사이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김철홍 장신대 교수는 지난달 5일 온라인 매체 '팬앤드마이크'에 <1987년 실제와 영화, 그리고 2017년>이라는 제하의 칼럼을 게재했다. 영화 '1987'의 실체를 다룬 글이다.

 

1962년생인 김철홍 교수는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원조 386 세대에 속한다. 그는 해당 글에서 영화 속 오류를 꼬집고 있다. 영화가 30년 전 6월 항쟁의 '불편한 진실'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는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1987년 당시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박종철 군이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조사실에서 물고문을 받다가 사망한 사실을 두고 그를 '민주주의 열사'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김철홍 교수는 칼럼에서 새로운 사실을 전하고 있다. 당시 6월 항쟁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박종철 군과 일부 운동권 학생들이 추구한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바로 '인민민주주의'였다는 주장이다.

 

그는 글 머릿말에서 "영화에서는 박종철 군 고문 치사 사건이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되었다는 것만을 묘사할 뿐, 경찰이 왜 그를 연행했는지는 설명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왜 경찰이 박종철 군을 연행했는지 배경이나 경위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부연 설명이 없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글에서 김 교수는 박종철 군의 당시 이력을 자세히 소개한다.

 

김 교수는 박종철 군이 당시 학생 운동권 안에서 '제헌의회그룹(Constituent Assembly Group)', '대학문화연구회'라는 지하써클에 소속돼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제헌의회그룹'에 대해서는 북한 주체사상을 추구하는 주사파(NL)와 대립하고 있던 운동 세력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들이 내건 구호는 마르크스-레닌주의, 볼셰비키 혁명을 모델로, 레닌을 롤모델로 해서 결국 공산혁명 운동을 하고 있었다는 점을 암시한다"며 "그들이 궁극적으로 원한 것은 인민민주주의였다는 것인데 영화에서는 이런 점을 전혀 다루지 않는다"고 재차 강조했다.

 

 

과연 박종철 군이 순수한 의도로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던 학생이었을까.

 

영화 '1987년'에서 미처 다루지 않지만 87년을 이해하기 위해 알고 있어야 할 중요한 사건은 86년 4월 28일에 김세진(서울대 미생물학과 83학번), 이재호(서울대 정치학과 83학번) 두 학생이 전방입소교육에 반대하여 분신(焚身)한 사건이다. 그 날 시위에서 사용된 구호는 "반전반핵 양키고홈", "양키의 용병교육 전방입소 결사반대"였다.

 

이런 구호는 주적(主敵)을 군사독재로 보지 않고 미제국주의로 본다. 미군철수와 "한반도 미제 핵기지화 결사 저지"를 외쳤다는 점에서 이들은 '독재타도'를 외쳤던 그 이전의 학생운동과 명확히 구분된다.

 

85년 가을부터 반제국주의(Anti-Imperialism)그룹이란 가면을 쓰고 등장하여 학생운동의 주류가 된 그룹이 있었다.그들은 주사파였다. 당시 그들의 아침 인사는 "어제 밤 대남 방송 들었냐?"였다. 87년이 되면서 주사파는 학생운동의 대다수 조직을 장악했다.

 

제헌의회 소집파에 속한 박종철이 희생되었을 때, 주사파는 그의 죽음을 직선제 개헌 투쟁에 적극 활용하였다. 영화에서 "박종철을 살려내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하는 장면에 등장하는 시위대는 대부분 주사파였다.

 

-김철홍 교수의 '1987년 실제와 영화, 그리고 2017년' 칼럼 내용 中 -

 

박종철 군이 사망한 후 북한은 1987년 3월 3일 김일성종합대학 조선어학부 조선어학과 3학년에 그를 편입시켜 1989년 8월 졸업한 것으로 처리한다. 김 교수는 이러한 사실을 들어 "박종철의 희생에 감사를 표한 것은 남한의 주사파만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또한 당시 6월 항쟁에 합류했던 '넥타이 부대'와 관련한 일화도 언급했다. 그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경찰에 의해 축소됐다는 게 폭로되자 직선제 투쟁은 대중적 호응을 받기 시작했고, 이한열 군(연세대 경영학과 86학번)이 최루탄에 직격탄을 맞아 부상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넥타이 부대가 시위대에 합류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당시 정부는 6월 10일 직장인들을 조기퇴근 시키고 도심을 지나가는 지하철을 무정차 통과시켰다. 이에 직장인들은 회사에서 일찍 나왔지만 집으로 갈 수 있는 교통수단이 없어 계속 시내에 머물렀고 결국 넥타이 부대가 시위대에 합류할 수 있는 호(好)조건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김 교수는 글에서 "우리는 완벽하게 속았다"고 표현했다. 당시 '호헌철폐, 독재타도'라는 구호를 만든 세력이 주사파인지 알지 못했던 넥타이부대, 대학생, 시민 모두가 주사파에 의해 기만당했고, 결국 민주항쟁은 주사파에게 힘을 실어준 모양새가 됐다는 지적이다.

 

영화 '1987'은 개봉 33일만에 누적관객 700만을 돌파하며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러한 영향 탓인지 해당 칼럼이 <펜앤드마이크>에 게재된 후 엄청난 사회적 파장이 일었다.

 

그 중 <오마이뉴스>가 해당 칼럼을 두고 다소 공격적인 자세를 취한 점이 주목된다. 이 매체는 지난달 10일 <6월 항쟁의 승자가 주사파? 신학교수의 황당 주장>이라는 기사에서 "김철홍 교수는 극우"라고 표현했다.

 

이 매체는 과거 김 교수의 활동 및 발언을 문제 삼으며 "김 교수의 극우성향 행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민주화 운동  당시 대세가 주사파였다는 극우 발언을 쏟아내기도 했다"고 다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김 교수는 과거 고(故) 백남기 농민을 두고 "민주열사가 아니라 민주노총이 주도한 반민주적 불법시위에 참여한 범법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은 80년 광주사태로부터 이어져 온 친북세력의 공산국가 수립 시도"라는 표현을 썼다.

 

<오마이뉴스>는 이를 "극우적 표현"이라고 비난했다. "김 교수의 주장에 대해 장신대 구성원은 물론 외부에서도 비판이 일고 있다"며 "펜앤드마이크에 실린 김 교수의 칼럼은 이 같은 극우 행보의 연장선상"이라고 강변하기도 했다.

 

더욱 눈에 띄는 점은 해당 기사에 달린 댓글 반응이다. 댓글에서는 오히려 김 교수를 두둔하고 그를 '극우'라고 낙인찍은 오마이뉴스 기자를 비판하는 댓글이 많았다.

 

일부 누리꾼은 "저도 그 시대 사상의 스펙트럼에서 극좌로까지 가봤던 사람이라 잘 안다. 김철홍 교수 말 중에 거짓은 없다"고 했고, 또 다른 누리꾼은 "극우가 무슨 뜻인지 알고나 계신지... 공부 좀 하세요"라고 꼬집었다.

 

<펜앤드마이크> 역시 이러한 분위기를 담아 "김철홍 교수 공격하려던 오마이뉴스...결국 네티즌에게 '뭇매'"라는 기사로 <오마이뉴스> 기사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기사 댓글 중에는 '극우'라는 표현에 대한 누리꾼들의 지적과 '민주화 운동'의 실체에 대한 의문들이 줄을 이었다.

 

일부 누리꾼들은 "나치 히틀러를 극우라고 하면 모를까, 좌익들의 궤변은 놀랄 일도 아니다. 87년 슬로건은 독재정권 타도였지만 공산주의 폭력혁명세력들이 날뛰던 시절 아닌가", "주사파의 위수김동(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친지김동(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 하면서 뭔가 개념 있어 보이며 우쭐대던 시절이었다. 역사를 왜곡하면 벌 받는다"는 댓글을 게재했다.

 

이어 "그동안의 민주화 세력이라는 게 뭐였는지 매우 헛갈린다. 그들이 정권을 잡은 지금 우리는 이 독선과 독재에 대해 이제야 진정한 민주화운동을 하고 있다고 보이는데 지난 수십년 간 민주화 투쟁이란 것의 정체는 뭐란 말인가"라는 댓글이 눈에 띄었다.

 

이외에도 "민주화에 기여했다고 운동권 정치인을 그래도 일면 존중하는 면이 있었는데 주사파는 위장세력이었다는 것을 김홍철 교수님 글을 통해 알게 됐다", "극우? 극우의 반만 되어도 자유대한민국은 걱정 없겠지요", "놀랍게도 오히려 현 정부의 등장 배경이 극우 파시즘의 그것과 너무 많이 닮아있더군요. 극우? 뭔 개 풀 뜯어먹는 소리랍니까?" 등의 글도 찾아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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