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남북러 3각 협력 언급했지만 구체적 대북제재 완화 방안 발표 없어
김정은 “한반도 평화·안전, 전적으로 미국의 차후 태도에 좌우될 것”
푸틴 “김정은과의 회담 결과, 美中에 알리겠다...러시아는 숨길 것 없어”
전문가들 “김정은, ‘비핵화 전 제재완화 不可’ 깨달았을 것”

김정은(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5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루스키 섬의 극동연방대학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김정은(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5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루스키 섬의 극동연방대학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방러 사흘째를 맞는 김정은이 26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시찰 일정을 취소하고 오후 3시(현지시간, 한국시각 오후 2시) 귀국할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예상보다 7시간 정도 일찍 떠나는 것이다.

북한과 러시아 모두 김정은의 일정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밝힌 적이 없다. 러시아 타스 통신은 김정은이 이날 오후 3시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날 것이라고 보도했다. 다만 전몰용사 추모 시설인 ‘꺼지지 않는 불꽃’ 헌화는 오전 한때 취소된 것으로 전해졌지만 예정 시각보다 2시간 정도 지난 낮 12시 12분께 진행됐다.

김정은은 25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비핵화 협상 교착 국면의 책임을 미국에 돌리며 “조선반도(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은 전적으로 미국의 차후 태도에 따라 좌우될 것”이라고 밝혔다고 북한 관영 선전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이 26일 전했다.

김정은은 전날 푸틴 대통령과의 확대회담에서 “얼마 전에 진행된 제2차 조미(북미) 수뇌회담에서 미국이 일방적이며 비선의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최근 조선반도와 지역정세가 교착상태에 빠지고 원점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위험한 지경”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정은은 “우리는 모든 상황에 다 대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선중앙통신은 26일 김정은과 푸틴 대통령이 양국 관계를 더욱 밀접하게 하며 향후 협력을 증진시켜나가는 데 동의했다고 전했다.

전날 확대회담에 앞서 진행된 단독회담에서 김정은과 푸틴 대통령이 “제2차 조미 수뇌회담 이후 불안정한 조선반도 정세를 전략적으로 유지 관리해 나가는 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유익한 계기로 되었다는데 대하여 일치하게 평가했다”며 “중대한 고비에 직면한 조선반도 정세 추이에 대하여 분석 평가하고, 조로(북러) 두 나라가 조선반도와 지역의 평화와 안전보장을 위한 여정에서 전략적 의사소통과 전술적 협동을 잘해나가기 위한 방도적인 문제들에 대하여 진지하게 토의했다”고 전했다.

또한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이 푸틴 대통령에게 편리한 시기에 방북할 것을 초청했으며, 푸틴 대통령이 흔쾌히 수락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대북제재 완화를 위해 북한에 경제적 도움을 주겠다는 러시아의 공식 발표는 없었다.

푸틴 대통령은 김정은과의 만남이 모두 마무리된 후 러시아 언론에 “대북제재와 미국, 비핵화 문제 등에 대해 김정은 위원장과 열린 대화를 나눴다”며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선 북한의 체제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북한을 경유하는 가스관 등 남북러 3각 협력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뜻도 밝혔다. 그러나 이날 회담에서 북러 간 구체적인 경제협력 방안은 논의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푸틴 대통령은 “북한도 비핵화를 원하지만 북한은 체제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며 북한의 체제 안전 보장을 위해서는 6자회담과 같은 다자협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이나 미국 측에서 (북한의 체제를) 보장할 수 있는 조치를 충분히 내놓을 수 있다면 6자회담이 가동되지 않을 수도 있는데 한국과 미국의 보장 메커니즘이 충분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그래서 북한에 다자 안보 협력 체제가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또한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는 숨길 것이 아무 것도 없다”며 회담 결과에 대해 중국과 미국에 알리겠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김정은은 한반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 관련해 자신의 입장을 미국측에 알려줄 것이냐고 물었다”고 밝히면서 “러시아와 미국은 핵확산에 대한 우려를 공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양 정상은 이날 오후 2시 10분경부터 5시 25분까지 3시간 15분 동안 단독회담과 확대회담을 가졌다. 이후 러시아측이 준비한 연회를 끝으로 정상회담이 마무리됐다. 이날 확대회담에는 러시아 측에서 경제, 외교 분야 핵심 당국자 10명이 배석했다. 그러나 북한측에선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만 배석했다.

다만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 문제는 논의가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푸틴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에 대해 대화가 이뤄졌다”며 “인권문제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대화를 나눴다. 북한 노동자들은 러시아에서 아주 성공적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북러 정상회담을 통해 김정은은 북한 내부적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고양하고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의 결렬에도 불구하고 외교적으로 고립되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보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푸틴은 세계적 강대국 리더로서 지위를 되찾기 위한 자신의 야심을 진전시킬 기회를 얻었다는 평가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은 김정은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경제적 도움을 북한에 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전문가들은 러시아는 김정은에게 줄 돈이 없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전문가들은 이번 북러 정상회담이 북한에 비핵화 조치 없이 국제사회의 제재완화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상기시켰다고 지적했다.

윌리엄 코트니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러시아담당 보좌관은 김정은의 대 러시아 정상외교는 목적 달성에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코트니 전 보좌관은 25일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김정은이 긴장된 미러 관계를 틈타 푸틴 대통령으로부터 약간의 제재 완화와 자신의 비핵화 접근법에 대한 지지를 얻으려 했지만 회담 후 푸틴 대통령은 비핵화에 대해 미국과 입장이 다르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김정은이 미국과 러시아, 중국 세 나라를 분열시킬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을 것”이라며 “푸틴 대통령이 북한 노동자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지만 현실적으로는 해결책을 마련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마이클 오핸론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VOA에 “북러 정상회담은 (국제사회에) 김정은이 또 다른 외교적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신호가 될 수 있지만 핵문제에 대한 합의기 이뤄지지 않는 한 제재국면을 탈피할 수 없다는 교훈을 김정은에게 일깨웠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러시아가 여러 가지 국제 사안에서 미국과 대척하고 있지만 북핵 문제에서만큼은 미국의 노력을 훼손하지 않으려 한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출신인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북한 입장에서 보면 제일 중요한 목적은 대북제재 완화였다”며 “그러나 이를 결정할 수 있는 나라는 중국도 러시아도 아닌 미국”이라고 했다. 란코프 교수는 푸틴 대통령의 6자 회담 재개 주장에 대해서는 “한반도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발언”이라고 분석했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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