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푸틴 대통령보다 20분 늦어..."팽팽한 신경전"
김정은, 러시아 국영TV 채널과 생애 첫 '외국 언론과의 인터뷰'

김정은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극동연방대학교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김정은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극동연방대학교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 후 약 두달 만에 김정은은 러시아 대통령에게 달려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협상 실패로 실추된 자신의 존재감을 회복하고 러시아에 대북 경제 협력을 얻어내기 위한 목적이라는 관측이다. 

김정은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5일 오후 2시 10분(현지시간·한국시간 오후 1시 10분)께 단독회담에 들어간 뒤 4시께부터 5시 25분까지 수행원이 포함된 확대 회담을 진행했다. 총 회담 시간은 3시간 15분가량으로, 양 정상은 회담 뒤 만찬도 함께 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 예정 시간인 오후 1시보다 약 30분 늦게 회담 장소인 극동 불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에 도착했다. 김정은의 리무진이 이유를 알 수 없는 교통정체로 도착이 지연되면서 이날 회담은 예정된 시간보다 1시간 늦게 열렸다. 푸틴 대통령이 김정은을 20여 분간 기다린 것이다. 

헬리콥터를 타고 먼저 회담장에 도착해 있던 푸틴 대통령은 오후 2시께(현지시간, 한국시간 오후 1시) 블라디보스토크 루스키섬 극동연방대 입구에서 김정은을 맞았다. 김정은은 “이렇게 맞아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는 러시아의 김정은 체제 들어 첫 북러 정상회담이자, 2011년 8월 김정일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당시 러시아 대통령과 만난 후 8년만이다.

김정은은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전 세계 초점이 조선반도 문제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 문제를 같이 평가하고 서로의 견해를 공유하고 또 앞으로 공동으로 조정 연구해 나가는데 대해서 아주 의미 있는 대화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오랜 친선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두 나라 관계를 보다 더 공고하고 건전하고 발전적으로 발전시키는데 그런 아주 유익한 만남이 되리라 생각한다”고 했다.

김정은은 “이렇게 초청해주고, 매우 바쁜데도 성의를 기울이고 깊은 관심, 모스크바로부터 수 천km 떨어진 여기까지 와서 만나주신데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푸틴 대통령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어 “유익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푸틴 대통령은 김정은에 앞서 한 모두발언에서 “남북대화 발전과 미북 관계 정상화를 위한 당신의 노력을 환영한다”며 “당신의 이번 러시아 방문이 양자관계 발전에 기여하고 어떤 방식으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지, 무엇을 함께 할 수 있을지, 현재 일어나고 있는 과정을 지원하기 위해 러시아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등을 더 잘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또한 푸틴 대통령은 “양자관계에서 경제통상 관계 발전과 인적 교류 발전을 위해서도 우리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러 정상은 이날 6분여간의 공개 모두발언을 마친 뒤 약 2시간 동안 비공개 단독회담을 진행했다. 이어 양측 수행원들이 참석하는 확대회담과 푸틴 대통령이 주최하는 연회가 이어질 계획이다.

이번 회담에서는 대북 제재 완화 문제와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 등 북러 경제협력 등이 주로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김정은 정권은 해외 노동자 파견으로 1년에 약 5억 달러 이상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현재 북한의 해외노동자 숫자는 총 약 1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이 가운데 약 3만 명이 러시아에 있다. 러시아는 작년에 이들 가운데 3분의 2를 북한으로 송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의 숫자는 1만 1500명 정도로 파악된다. 이들은 김정은 정권의 주요 달러 수입원이며 북한의 핵무기 개발의 자금원으로 알려져 있다. 유엔 제재위원회는 올해 말까지 해외의 모든 북한 노동자들이 북한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규정했다.

또한 김정은은 지난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로 실추된 존재감을 회복하고, 러시아로부터 대북제재 완화와 점진적 비핵화에 대한 러시아의 협력을 이끌어내려 하는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을 향해 지역 내 자신의 또다른 우군이 존재함을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앞서 크렘린궁은 이번 북러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간 중요 합의에 대한 서명이나 성명서 발표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전문가들은 러시아는 중국과 달리 북한에 줄 것이 별로 없으며 실제로 러시아가 북한에 제공할 수 있는 경제적 혜택은 제한돼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의 정박 한국석좌는 “김정은과 푸틴 대통령은 게임체인저가 아니다"며 "러시아는 중국과 달리 북한에 해줄 것이 별로 없다”고 지적했다. 반면 태영호 전 주 영국 북한대사관 공사는 “김정은은 푸틴 대통령으로부터 많은 것을 얻을 것”이라며 “김정은이 한미중 정상을 누차 만난 데 이어 이번에 푸틴과 만나면 다음엔 아마도 아베를 만날 것이며 지역의 주요국 정상들을 모두 만나고 나면 최종적으로 자신이 지역의 리더임을 선언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앞서 김정은은 지난 24일 오후 6시(한국시간 오후 5시) 전용열차 편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해군 함정 진수식에 참석하고 상원의원들과 정례회의를 했다. 김정은은 이날 첫 주요 공식 일정으로 푸틴 대통령이 주재하는 환영 만찬에 참석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당초 1박 2일로 예상됐던 정상회담 일정도 당일 회담이 되는 모양새다. 이날 푸틴 대통령 대신 환영 만찬을 주재할 것으로 관측된 유리 트루트네프 러시아 부총리 겸 극동관구 대통령 전권대표도 관할구역인 동시베리아 자바이칼리예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 현장으로 달려갔다.

김정은이 북러 국경을 넘어 러시아 하산에서 러시아·조선(북한) 친선의 집을 방문했을 때도 영접을 나온 건 알렉산드르 코즐로프 극동·북극개발 장관과 올렉 코줴먀코 연해주 주지사 등으로 최고위급과는 거리가 멀었다.

김정은은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처럼 검은 모직 롱코트에 중절모를 쓴 차림으로 전용열차에서 내렸다. 이어 역 앞에서 러시아 의장대 사열 등 약 15분간 환영행사에 참석했다. 이후 인근에 대기 중이던 전용차량인 마이바흐S62에 올라탔다.

김정은은 이날 하산에 도착한 직후 러시아 국영TV 채널인 로시야와 인터뷰를 했다. 김정은은 “(푸틴 대통령과) 지역정세를 안정적으로 유지 관리하고 공동으로 조정해 나가기 위해 유익한 대화를 나눌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이 다른 나라 언론과 인터뷰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방문국의 주요 언론과 인터뷰를 하는 정상국가 지도자의 모습을 흉내 낸 것이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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