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계층분류: ‘눌러 앉아 사는 사람들(정주형 인간)’과 ‘어디서든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동형 인간)’
대량 이민 정책에 반대하는 ‘정주형 인간’들의 실존적 위기감이 트럼프를 당선시켰고 Brexit의 윈인이 되었다
‘이동형 인간’들은 생산, 세금, 교육, 여행, 국적 측면에서의 경쟁력 있는 국가로 떠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정주형 인간’들은 무엇에 속고 있나
이동형 인간‘들은 앞으로 어느 나라 여권으로 활동할 것인가

황승연 객원 칼럼니스트
황승연 객원 칼럼니스트

사람들을 정치적으로 분류를 할 때, 우파와 좌파로 혹은 자본주의자와 사회주의자로 구분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계급, 계층으로 구별하기도 한다. 영국의 기자출신 편집인 David Goodhart라는 사람은 최근에 ‘The Road to somewhere‘라는 책(2017)에서 이와 같은 전통적인 구분을 대신할 새로운 개념으로 ‘Somewheres’와 ‘Anywheres’를 만들었다. 이 개념으로 Brexit 현상을 설명하고, 트럼프 대통령 당선을 해석한다. 이 개념은 글로벌 차원에서의 기술과 산업의 발전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우리나라도 이미 글로벌 경제에 깊이 연결되어 있어서 이 개념으로 해석이 가능하다고 본다. 이 개념들을 소개하고 필자 나름대로 해석하여 현재의 우리 사회를 진단해보고자 한다.

Somewheres는 어떤 특정한 곳에 눌러 앉아 살고 있으며, 현재의 거주 지역을 벗어나면 생계가 힘든 저학력 계층의 사람들, 정주형(定住形) 인간을 말한다. Anywheres는 어디서든 원하는 곳에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 어디로 이주해도 생계에 큰 걱정이 없는 고학력 계층의 사람들, 이동형(移動形) 인간을 말한다. 필자는 이를 ‘눌러앉아 사는 사람들’이란 뜻의 ‘정주형 인간‘과 ’어디서든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란 뜻의 ’이동형 인간‘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정주형 인간, 이동형 인간

‘정주형 인간(Somewheres)’은 특정 지역과 집단 소속감을 바탕으로 출신지역과 연관된 정체성을 갖고 있다. 교육수준이 비교적 낮고, 외국어 구사능력이나 외국 문화에 대한 이해도 역시 비교적 낮다. 이들은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하지만 대부분 그 곳에 눌러앉아 살게 되는 사람들이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일하고 살아가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이들은 지역 기반의 세계관을 갖고 있고, 애국적이고, 전통적이고,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 사회와 깊이 연결되어있다. 가족 중심적이고 자선도 더 베푸는 사람들이다. ‘자유무역’과 ‘대량 이민’에 대한 정치적 결정에 반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동형 인간(Anywheres)’은 교육을 많이 받고, 직업적으로 성공한 부류에 속하며, 자신감 넘치는 정체성을 갖고 있고, 안정되어 있고,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이나 새로운 곳에 대하여 두려움이 없다. 그들은 가족, 국가, 믿음, 이런 것에 크게 얽매여 있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사회와 문화를 지배한다. 학교에서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고, 여러 국가시험에 합격하고, 정치, 문화, 언론, 예술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엘리트 집단에 속한다. 관대하고, 능력있고, 자율적이며, 변화에 능하고, 개인주의자이고 자유주의자들이다. 이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난 곳을 떠나 어디론가 이동하는 사람들이다. 예를 들어 실리콘벨리 사람들은 국경 없는 세상에서 일을 하며 살고 있다. 국내보다 해외에 더 많은 친구들을 갖고 있을 수 있다. 그들의 사업 관행은 국내보다 국제적인 규칙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글로벌리스트들이고, 일의 한계와 국경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기업합병, 프라이버시, 사업관행과 세금과 같은 면에서 인텔, 구글이나 페이스북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유사한 생각을 갖고 있다.

‘이동형 인간’은 가정과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서 ‘국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녀 교육을 위해서 세계 어디든 찾아서 떠날 수 있고, 공기가 좋고 살기에 쾌적한 곳이라면 내일이라도 짐을 싸서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필요에 의해서 그곳에 살고 있을 뿐이다. 영어도 되고, 돈도 있고, 글로벌 문화도 몸에 배여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좌파, 우파를 막론하고, 여나 야를 막론하고, ‘이동형 인간’에 속하는 사람들은 자식들을 외국에서 공부시키고, 가능하면 국적도 이중국적이나 외국의 국적을 갖게 하거나, 아니면 이미 자식들이 외국에서 살고 있다. 자신도 언제든지 떠날 수 있도록 또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도록. 그들에게는 고국과 외국의 개념이 없다. 그냥 그들이 편리한대로 왔다 갔다 할 뿐이다. 이들은 이미 초국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살고 있는 곳에 미세먼지가 많거나, 범죄가 자주 일어나 불안하다면 떠나면 되는 것이고, 개인정보보호가 느슨하면 사무실을 또 다른 외국으로 옮기면 된다. 그들은 어디서든 원하는 곳에서 하던 사업을 계속해 나갈 수 있고 새롭게 직업을 찾거나 직장을 구하고 살아갈 수도 있다. ‘정주형 인간’은 그렇게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오늘날 영국에서는 ‘정주형 인간(Somewheres)’이 50%, “이동형 인간(Anywheres)”이 25%, 그 중간에 놓여있는 사람들(Inbetweeners)이 25% 정도 된다고 말한다. 이 집단들을 엄격히 나누는 것은 간단하지 않을 수 있다. 농촌에 사는 ‘이동형 인간‘도 있을 수 있고, 대도시에 사는 ’정주형 인간‘도 있을 수 있다. ’이동형 인간‘과 ’정주형 인간‘의 경계는 그가 살고 있는 곳이 아닌, 그들의 삶의 방식을 관철시키는 곳에서 정체성을 구축하는 방법에 의해 결정된다. ‘정주형 인간’과 ‘이동형 인간’ 모두에 극단적인 하위집단을 갖고 있는데 ‘정주형 인간’의 5-7%는 강한 권위주의자들이고, ‘이동형 인간’의 5% 정도는 세계시민(Global Villagers)들이다.

David Goodhart는 이 개념들로 최근의 정치 지형의 변화를 해석한다. ‘이동형 인간’이 자유무역을 주장하고 값싼 노동력을 이유로 대규모 이민에 찬성하자, ‘정주형 인간’은 마치 자국에서 소외된 이방인처럼 느끼게 하는 감정이 폭발했고, 이들이 트럼프의 집회에 몰려들어 그를 대통령에 당선시켰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는 미국에서만 일어난 일은 아니고, 영국에서도 Brexit에 찬성한 사람들의 중요한 결정 요인이되었다고 하였다. 영국이 EU를 떠나기로 한 것은, 이민정책으로 인하여 예견되는 취업시장의 변화로 그들의 생존이 심각한 위협을 받는다고 생각한 ‘정주형 인간’들이 Brexit 찬성이라는 선택을 했다고 판단하였다. 그들은 이러한 결정을 경제적인 것을 넘어서 실존적인 것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는 독일에서도 이민에 개방적인 생각을 가졌던 메르켈 총리를 정치적인 위기에 빠뜨린 이유이기도 하였다. 유럽 다른 국가들이나 호주에서의 보수주의 민족주의 출현을 설명하는데 이 개념이 사용되기도 한다.

‘정주형 인간‘과 ’이동형 인간‘ 그리고 국가경쟁력

어느 국가가 경쟁력이 있는가라는 질문은 여러 분야로 나누어 설명될 수 있다. 생산, 세금, 교육, 여행, 국적으로 그 분야를 나누고 싶다. 우리나라가 수년전까지만 해도 반도체, 조선, 철강, 자동차, 유화 등의 생산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었다. 그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저렴하고 품질이 좋은 전기 때문이었다 한다. 이러한 생산에서의 국제 경쟁력 때문에 우리나라가 현재에도 세계 12위의 GDP 순위를 차지한다. 그러나 지금은 반도체 하나만 경쟁력이 남아있는데, 전문가들은 반도체의 호황도 저물어 간다고 전망한다. 생산에서의 국제경쟁력이 최근에는 갈수록 낮아져서 반도체를 비롯하여 다른 많은 영역의 사업들이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겼고 지금도 옮기고 있다. 자본이 떠나면서 관리할 인력들과 핵심 기술자들도 함께 외국으로 떠난다. 당연히 우리나라에서의 일자리는 줄어든다. 국가의 경쟁력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산에서의 경쟁력이다. ‘이동형 인간’들은 회사가 해외로 이전할 때 따라갈 수 있지만, ‘정주형 인간’들은 이 땅에 머물러야 한다.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이유 중에서는 낮은 임금이나 저렴한 토지비용 등도 있지만 세금 때문인 경우도 많다. 우리나라의 법인세 세금이 높은 편이나 최고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간접세 부담이 높고 특별히 상속증여세는 세계평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서, 이 세금 때문에 최근 회사를 매각하고 해외로 떠나거나, 회사를 동남아 등지로 이전하는 기업가들도 많다. 상속세를 고려한다면 사업을 하지 않아야 하고 아니면 해외로 이전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 후에 해외에 있는 미국의 회사들에게 세금을 낮춰주는 조건으로 미국으로 돌아올 것을 권하였다. 또 상속세 완전 폐지도 공약하였다. 실제로 여러 회사들이 미국으로 돌아갔고 돌아갈 약속하였다. 기업과 ‘이동형 인간들’이 경쟁력을 이유로 자국으로 돌아오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경우이다.

교육에 있어서의 경쟁력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확인할 수 있다. 한 때 ‘기러기아빠’라는 단어가 유행할 정도로 자녀들을 해외로 조기 유학을 보내는 부모가 많았다. 그 목적지로 미국이 주류를 이루었지만 자녀를 중국으로 보내거나 동남아의 국제학교로 보내는 부모들도 많았다. 우리나라의 교육에 있어서의 국제경쟁력의 단면을 보여주는 현상이라 하겠다. 우리나라의 여러 단계별 교육 중에서 유치원교육이 가장 국제경쟁력이 있다하고, 가장 경쟁력이 없는 교육이 대학교육이라는 얘기가 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대학에서 대학원수준이 대학수준보다 높지 않다. 이 기현상을 이해해야 한국 교육을 이해할 수 있다. 이를 이해 못하는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의 교육을 본받아야한다’고 그의 임기 중에 여러 차례 언급했다. 그러나 정작 그가 한국을 방문하여 한국 기자들에게 한국어로 질문해도 좋으니 질문 좀 하라고 여러 차례 호소를 해도 아무도 질문을 던지는 기자가 없어서 결국 중국 기자가 가로채고 말았던 것을 보면서 오바마도 한국 교육에 대한 무지를 깨닫고 갔으리라고 생각된다. 우리나라의 교육 중 가장 국제적인 경쟁력이 높은 것이 유치원교육이라 한다. 경쟁이 있고 간섭이 많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 국가에서 본격적으로 유치원 교육을 통제하고 간섭하겠다고 한다. 이제 유치원 때부터 유학을 보낼 것인가? 교육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은 말하기 민망할 지경이다. 교육 때문에 해외로 떠나는 사람들이 줄어들 것 같지 않다. ‘정주형 인간’에서 ‘이동형 인간’으로 바뀌는 가장 쉬운 방법이 교육이다.

여행에서의 국가경쟁력은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신혼여행을 어디로 가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같은 비용으로 어떤 서비스를 받고 어떤 추억을 갖고 어떻게 재충전을 하고 오는가에 대한 고려 없이, 단순히 숫자로만 여행의 국가경쟁력을 계산하는 국가기관이 관광 정책을 담당하는 한, 여행에서의 국가경쟁력 제고는 요원하다. 관광 정책을 만드는 공무원들 대부분 신혼여행을 해외로 다녀왔을 것이다. 거기서 그들도 ‘정주형 인간’ 아닌 ‘이동형 인간’을 꿈꾸었을 것이다.

국적에서의 경쟁력도 있다. 우리나라의 여권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신뢰도가 높은 여권이다. 위조 여권도 적고, 불법체류의 위험도 적다. 또 한국 여권을 갖고 있으면 별도의 비자를 받지 않아도 갈 수 있는 나라의 숫자가 많기로 세계에서 최상의 수준이다. 해외에 나가면 한국인의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측면이다. 우리나라는 미국을 방문할 때 필요한 비자도 ESTA(전자여행허가)라는 비자를 인터넷을 통해 쉽게 신청하고 받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에 속한다. 지금 일본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에 대한 비자 면제 정책의 취소를 고려한다고 한다. 이번 정부 들어와서 최근에 생긴 일이다. 1년에 750만 명의 우리나라 국민이 일본을 방문한다고 한다. 이들이 앞으로 일본 방문을 위해 비자를 별도로 신청하는 절차를 밟아야한다면 우리나라의 여권의 가치는 크게 떨어지게 될 것이다. 세계를 마음대로 다녀야 하는 사람들 즉 ‘이동형 인간’들은 다니기 편한 그런 여권을 갖기를 원한다. 그래서 여권을 2개 혹은 3개를 갖고 다니는 외국인들도 있다. 이미 이중국적을 허용하는 많은 나라들이 있고 점차 늘어나는 추세이다. “이동형 인간‘들은 원하는 곳에 정착했다 또 떠나기를 반복할 가능성을 위해 경쟁력 있는 나라의 국적을 가지려는 노력을 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주거지와 국적을 선택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새로운 계층론, ‘정주형 인간’계층, ‘이동형 인간’계층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사람과 재화도 경쟁력이 있는 곳으로 모인다. 경쟁력이 없는데 사람들을 붙잡아두려면 강제가 필요하다. 그러니 보트피플이 나오고 카라반 이민행렬이 나오는 것이다. 한편 이들이 들어와서 자리를 잡고 눌러앉아 ‘정주형 인간’이 되는 것에 기존의 ‘정주형 인간’들은 위협을 느끼게 되고 불안해지는 것이다. 이 흐름을 정확히 간파한 트럼프 후보의 반 이민 정책에 ‘정주형 인간’들이 환호로 답하며 트럼프를 대통령에 당선시켰다. 미국의 주류 언론들의 예상과 다른 결과를 보였던 것이다. 지금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는 반 이민정책과 자유무역 반대를 이런 맥락에서 이해한다면, 쉽게 포기될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유럽 국가들로 몰리는 것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일자리와 안전과 사회복지 혜택 때문이다. 인력이 몰리면 인건비가 줄어들 수 있어서 기업들은 환영할 수 있다. 그러나 지역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특별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나 출퇴근이 자유로운 업무를 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원하는 어떤 곳으로 떠나서 그 곳에서 살아갈 수 있다. 환경이나 교육이나 병원이나 안전 등 그 어떤 이유들로 떠날 수 있다. ‘눌러 앉아 사는 사람들’과 ‘어디서든 살 수 있는 사람들’은 이제 새로운 계층의 척도가 되었다.

올해 초 1월 청와대의 한 경제보좌관은 “한국에서 할 일이 없다고 산에 가거나 SNS에 험악한 댓글만 달지 말고 아세안(ASEAN), 인도로 가야 된다‘고 말했다 해서 사퇴하였다. 국민들에게 ’이동형 인간‘이 되란 얘기이다. ’이동형 인간‘은 누군가가 되라고 해서 되거나, 되고 싶다고 쉽게 될 수 없다. ’이동형 인간‘이 될 수 있는 그런 배경과 능력과 문화적 소양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떠나지 말라고 해도 떠날 사람은 떠날 것이고, 아무리 가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주형 인간‘과 ’이동형 인간‘이 나뉘어 있다. 물론 그 중간에 속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 이는 오랜 교육을 통해서 바뀔 수도 있다. ’정주형 인간‘이 50% 정도라는 영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언어적 한계 때문에 ’정주형 인간‘이 70%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이동형 인간‘은 10% 정도로 본다. 앞으로 ’이동형 인간‘은 급격히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인간은 실존적 위험을 느끼면 가장 민첩하게 대응하는 동물이다.

떠나는 사람들, 남아있는 사람들

여러 분야에서 우리나라 국가경쟁력은 최근 들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여러 이유로 한국을 떠나는 한국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동형 인간’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자녀들을 ‘이동형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들을 하고 있다. 많은 젊은이들은 ‘이동형 인간’이 될 능력을 키워가고 있고, 외국에 가서 ‘이동형 인간’으로 사는 것이 꿈인 청년들이 많다. TV에서도 외국에 가서 생활하고, 여행하고, 모험하고, 적응하는 모습을 담은 프로그램 뿐 아니라 외국에서 낯선 음식 먹는 것, 식당을 차려놓고 외국 사람에게 한국음식 소개하는 것, 한국에서 외국인에게 한국문화 소개하는 것, 외국에서 외국인에게 외국 문화 배우는 것 등을 내용으로 하는 많은 프로그램이 생겨나서 방송되고 있다. ‘이동형 인간’이 되는 과정과 방법에 대한 프로그램이 관심을 끄고 인기가 좋다는 뜻이다. 날로 젊은이들은 ‘이동형 인간’이 되어갈 것이고 그 수는 급격히 늘어날 것이다.

두 번에 걸친 급격한 최저임금제의 실시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의 기반을 붕괴시켜놓았다. TV 토론 방송에 나와, 서울과 남해안의 어떤 섬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임금이 같다는 것에 “왜 같은 평등한 인간인데 임금이 달라야 하냐”고 항변하는 국회의원을 보았다. 한국인과 서남아시아 노동자의 최저임금이 같다는 것에 대하여 우리나라가 대단히 인도주의적인 국가라고 할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더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으로 들어오려고 할 것이고 ‘정주형 인간’들의 일자리를 외국인들이 하나하나 잠식해 들어갈 것이다. 그러면 결국 기업들은 생산기지를 인건비가 저렴한 외국으로 옮기고, 우리나라에서는 고임금과 고학력의 인력으로 가능한 연구개발에만 집중하게 될 것이다. 지금의 최저임금제도나 근로시간 규제제도가, 부가가치가 낮은 사업들을 외국으로 이전하고, 우리나라 기업들은 연구개발 중심회사이거나, 4차 산업혁명과 연관된 최첨단기업들만 살아남을 수 있도록 개편하자는 그런 장기적이고 숭고한 목적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 그런 정책이 사실은 장기적인 측면에서, 우리나라 산업의 체질을 완전히 개선해서 경쟁력 있는 국가로 만들어서 후손들에게 물려주려는 강한 책임감과 애국심 때문에 실시하는 정책이라 생각되었다. 그렇지 않다면 정부는 경제정책의 실패에 대해 왜 이런 비난을 당하면서 수모를 겪어내고 있겠는가 하는 생각까지 해보았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런 목적에 대해서는 아직은 들어보지 못했고 그런 준비를 하고 있다는 징후도 없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 우리 모두는 지금부터라도, 기업이 한국에 투자하고, ‘이동형 인간’들이 한국을 주거지로 택하도록 생산, 세금, 교육, 여행, 국적, 환경 등 모든 면에서 국가 경쟁력을 갖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경쟁력 있는 기업과 사람들은 떠나고, 빈부격차는 커지며, 우리나라는 첨단산업이 다 떠난 2류 국가가 되고 말 것이다. 지금 그 길로 들어섰다. ‘정주형 인간’들은 지금 최저임금제나 주당 근무시간 규제에 박수를 칠 일이 아니고 사탕발림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는 중이다. 이런 제도가 그들의 삶의 터전을 파괴하고 그들 가족의 삶을 피폐하게 하는 지름길임을 확인하는 순간 급격히 보수화 될 것이다. 이러한 사례를 경제 규모가 크고 이미 고도로 산업화된 국가인 미국과 영국 그리고 유럽 국가들에서 보았다.

‘정주형 인간’들이여 당신들을 위한다는 최저임금제도에 속고 있지 않는가? ‘이동형 인간’들이여 당신은 앞으로 어느 나라 여권으로 활동할 것인가?

황승연 객원 칼럼니스트(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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