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 서술에서 ‘자유민주주의‧1948년 대한민국 수립’ 삭제
‘민주화’ 과정 강조하고 경제성장은 언제나 문제점과 함께 언급
대한민국 역사 부정하는 북한사 관련 서술도 늘려

박근혜 정부가 기존 역사교과서의 좌편향에 문제의식을 갖고 추진한 ‘국정교과서’가 폐기된 뒤 학생들은 어떤 교과서로 대한민국의 역사를 보고 있을까. 문재인 정부는 집권 이후 국정교과서를 사실상 적폐로 낙인찍고, 지난해 8월부터 새로운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연구에 착수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불과 6개월 만에 교육과정‧집필기준 초안을 내놨다. 이후 지난 26일 교육부는 3차 공청회에서 최종 시안을 발표했다. PenN은 단독 입수한 ‘중학교 역사‧고등학교 한국사 교육과정 및 집필기준 최종 시안’의 문제점을 분석해 上‧中‧下 3회 시리즈로 연재한다. 1편에서는 ‘대한민국은 나쁜 나라’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역사교과서의 문제점을, 2편에서는 좌편향된 근현대사 역사 서술 문제를 각각 다루고, 3편에서는 ‘교육부도 인정한’ 이번 교육과정‧집필기준 마련의 절차적 하자에 대해 살펴본다.    <편집자 주>

교육부가 새로 마련한 ‘중‧고등 역사교과서 교육과정‧집필기준’은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서술 분량을 대폭 늘리고, 전반에 적용된 역사관도 크게 바꿨다.

●자유민주주의‧1948년 대한민국 수립’ 삭제

한국 근현대사 서술에서 가장 크게 바뀐 부분은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명시된 ‘자유민주’와 대한민국의 건국 시점인 1948년을 삭제한 점이다. 헌법 전문은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교과서에서 자유민주주의는 전부 민주주의로 대체되고, 건국 시점은 생략했다.

중학교 교육과정 시안에는 '자유민주주의의 발전' 대신 '민주주의의 발전'이 소수제로 담겼다.
중학교 교육과정 시안에는 '자유민주주의의 발전' 대신 '민주주의의 발전'이 소주제로 담겼다.

중학교 교육과정 시안 ‘근‧현대 사회의 전개’ 부분에는 소(小)주제로 자유를 삭제한 ‘민주주의의 발전’을 제시했다. 고등학교 교육과정 시안 ‘대한민국의 발전’ 부분에서도 학습 요소로 ‘6월 민주 항쟁과 민주주의의 발전’이라고 실어 '자유'가 삭제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 같은 부분에서 1948년 건국 시점이 삭제된 것도 확인됐다. 대신 ‘북한 정권 수립’과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 등이 학습 요소에 실렸다. ‘6‧25 전쟁과 남북 분단의 고착화’ 부분에서는 한국의 정체성이기도 한 반공은 독재와 엮어 서술했다.

●‘민주화’는 미화하고 ‘경제성장 성과’는 언제나 문제점과 함께 언급

반면 ‘민주화’ 관련 서술은 대폭 확대했다. 대한민국의 발전 부분에 실린 총 8개의 학습요소 중 민주화 관련 서술만 두 개를 차지한다. 4‧19혁명과 6월 민주항쟁을 각각의 학습요소로 다뤘다.

고등학교 한국사 교육과정에 실린 '대한민국의 발전' 학습요소.
고등학교 한국사 교육과정에 실린 '대한민국의 발전' 학습요소.

‘평가 방법 및 유의사항’에서도 민주화에 대한 교육을 강조했다. 시안에는 “학생들이 당시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사람의 입장에서 소감문 혹은 인터뷰 기사를 작성하게 하는 평가를 할 수 있다”, “모둠별로 민주화 운동에 대한 역사신문을 제작하고 발표하는 평가를 할 수 있다”는 등의 지침이 담겼다.

독재‧친일파‧위안부에 대한 서술에도 집중도를 높였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의 경우 중학교 역사 교육과정 시안 ‘인권 회복과 평화 확산을 위한 노력’ 부분에 해당 내용을 홀로코스트, 난징 대학살 등과 함께 실어 주목도를 높였다.

반면 ‘경제성장 성과’는 언제나 ‘문제점’과 함께 언급했다. ‘경제 성장과 사회‧문화의 변화’ 소주제에는 ‘정경 유착’이 학습 요소로 담겼고, 그 외 유의 사항에도 ‘경제 성장의 성과 및 문제점을정리한 포트폴리오 평가를 시행할 수 있다’고 쓰여 있다.

●대한민국 역사 부정하는 ‘북한사’ 서술 확대

북한사에 대한 서술이 늘어난다는 점도 큰 변화다. 교육부는 ‘북한사 배제’를 기존 국정교과서가 가진 주된 문제점으로 지적해 북한사에 대한 서술을 늘리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교육부는 '정치적 왜곡' 문제로 북한사 서술 소략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용어 회복 문제 등을 꼽았다.
교육부는 '정치적 왜곡' 문제로 북한사 서술 소략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용어 회복 문제 등을 꼽았다.

고등학교 한국사 교육과정 시안을 다시 살펴보면 ‘대한민국의 발전’ 부분에 실린 북한 관련 서술에는 ▲남북협상 ▲북한 정권 수립 ▲북한의 사회주의 독재 체제 ▲북한 사회 변화 ▲평화 통일 노력 ▲남북 정상 회담 등 다섯 꼭지가 넘게 실렸다.

교육부는 ‘북한사 서술 소략’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용어 회복 문제’, ‘임정 정통성 회복 필요’, ‘친일문제 미적시’, ‘외형적 경제 성장에만 집중하고 있음’ 등과 함께 정치적 왜곡이라고 꼽았다.

이에 대해 바른교육학부모연합의 에스더김 대표는 “대한민국 건국을 설명하면서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해서는 한 줄의 설명도 없는데 북한 주체사상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한 게 현 검인정 교과서의 문제”라며 “북한사를 제대로 서술하려면, 현재 북한 인민이 인민민주주의 하에서 겪고 있는 북한의 실상도 자세히 소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정교과서보다 더한 ‘독재적’ 집필기준

이번에 마련된 집필기준은 향후 출판사가 집필하는 검정 교과서의 ‘검정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큰 틀에서 꼭 따라야 하는 내용을 개괄적으로 서술한다는 의미다. 국정교과서가 없는 상황에서는 집필기준이 사실상 국정의 역할을 하게 되는 셈이다.

학계에서는 국정 교과서의 문제를 수정한다는 명목으로 국정교과서보다 더한 독재적 집필기준을 마련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쏟아진다. 새로 마련된 시안이 특정 역사적 관점을 일방적으로 반영한 거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는 “우리 헌법이 규정한 민주주의는 인민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라며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바꾸는 것은 이 둘을 구분하지 않으려는 시도”라고 분석했다.

김철홍 장신대 교수도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논쟁적 주제를 특정 입장만 포함한 채 소개하는 것은 문제”라며 “자라나는 세대를 특정 이념에 경도된 방향으로 끌고 가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슬기 기자 s.l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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