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은 ‘통합’과 ‘공존’ 원했는데 나라 더 두 조각으로 만들어 
이제는 ‘탕평’ 하려고 해도 어렵고 보복과 적대의 악순환만 키워   

홍찬식 객원칼럼니스트

“당파가 나누어진 뒤 선비들에게 공정한 의논이 없어서 동쪽에 그 일을 물으면 그 일이 극히 옳은데 서쪽에서는 그르다고 한다. 장차 어떻게 결정을 내릴 것인가. 나는 다만 나의 안목을 넓게 하고 마음을 공평하게 하여 한결같이 공정한 이치로 볼 것이니, 이렇게 하면 크게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홍재전서’ 권173)

조선조 정조가 남긴 말이다. 이때도 지금처럼 나라가 둘로 갈라져 서로 등을 돌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18세기 영조와 정조 때 탕평 인사가 나온 배경이다. 조선시대 군주 이상으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과연 이런 고민을 할까. 절대 아닌 것 같다. 지난 집권 2년을 보면 그는 한쪽으로 크게 기울어져 있는 사람이다. 정조가 지향한 ‘넓은 안목’ ‘공평’ ‘공정’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문재인 정부도 겉으로는 ‘대(大)탕평’과 ‘국민 통합’을 내세우며 정파, 지역, 세대를 뛰어넘는 통합 정부를 만들겠다고 큰 소리 쳤다. 그러나 결과는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갔다. 청와대, 내각, 공공기관은 물론이고 독립성과 중립성이 요구되는 대법원장, 대법관, 헌법재판관들까지 특정 이념의 사람들로 가득 가득 채워나가고 있다.  

좀처럼 내부 비판이 없는 폐쇄적인 좌파 학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최근 한 학술대회에서 “현 정부가 이념적 지형을 자극해서 촛불시위 이전 못지않게 더 심한 이념 대립을 불러오고 있다”면서 “광화문의 태극기 부대와 기념행사의 태극기가 충돌하는 모습을 보면 앞으로 100년 간 한국 정치가 발전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정치 발전’이라는 말로 에둘러 표현했지만 이런 식으로 가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서로를 적대시하는 악순환을 말한 것이다. 

그럼에도 기막힌 것은 현 정권의 인식이다. 지난달 문재인 정부의 2기 내각이라는 걸 발표하면서 청와대는 진영 박영선 두 명의 장관 임명에 대해 ‘탕평 인사’임을 강조했다. 두 명이 여당 국회의원이어서 ‘탕평’이라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아 설명을 들어보니 ‘친문(親文)’ 인사가 아니기 때문에 ‘탕평’이라는 주장이었다. 같은 당 사람들을 뽑아놓고 탕평을 했다고 자화자찬하고 있으니 ‘탕평’이 무슨 뜻인지 알고나 있는지 의문이다.

탕평에 대해서는 영조와 정조 때 탕평 인사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영조와 정조의 탕평은 성격이 좀 다르다. 영조는 당파 중에서 강경파 인물을 피하고 온건한 인물들을 고르게 등용한 반면, 정조는 분명한 견해를 갖고 있는 서로 다른 인사들을 기용해 논쟁을 활성화시키고 그 속에서 해결방안을 찾으려 했다. 영조가 소극적이라면 정조는 적극적 탕평을 시도한 셈이다.

이밖에도 두 군주는 청렴한 인사들을 대거 발탁해 개혁 정책의 추진력을 높이려 했고, 한 부서에 다른 당파 사람들을 요즘 식으로 말하면 장관 차관에 임명해 합의점을 찾게 만드는 인사 시도를 했다. 전체적으로 능력보다는 지역과 정파를 안배하는 쪽으로 이뤄지는 탕평 인사는 소(小)탕평에 그칠 수밖에 없다. 국가 전체를 생각하면서 각 구성원들을 포용하고 활발한 토론을 통해 최적의 대안을 찾아내도록 이끌어가는 게 이상적인 대(大)탕평이다.

이런 기준으로 문재인 정권을 보면 소탕평에도 미치지 못하는 건 두말할 것도 없고 오히려 적폐 청산을 구실로 다른 정파에 꼬박 2년째 보복을 계속하고 있으니 ‘탕평’이라는 단어를 들먹일 자격조차 없는 사람들이다. 그나마 주요 직책에 뽑아놓은 사람들마다 깜이 안 되는 인사들로 같은 편을 뽑는 일마저도 ‘인사 실패’의 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0여 년 전 개명되지 않았던 시대에도 청렴한 인사들을 앞세우고 치열한 토론을 거친 국정 운영을 선호했던 지도자들이 새삼 우러러 보이는 시점이다.

지금부터라도 문재인 정권이 마음을 고쳐먹고 국민 통합에 나서면서 탕평 인사를 할 가능성도 있지만 이제는 그 또한 쉽지 않을 것이다. 내리막길에 들어선 정권에 누가 선뜻 참여하겠다고 나서겠는가. 우파 출신으로 무슨 연유에선지 좌파 입장에서 우파 저격수 노릇을 톡톡히 했던 정두언 전 국회의원이 얼마 전 주중대사 제의를 받고 사양한 일이 상징적이다.

현 정권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사태 이후에 이보다 더 운이 좋을 수 없다는 표현이 딱 맞아떨어질 정도로 럭키하게 집권했다. 취임 당시 민심은 통합과 공존에 모아졌다. 문 대통령은 겸허한 자세로 진정한 의미의 탕평에 발 벗고 나서야 했다. 하지만 그는 거꾸로 가뜩이나 갈라져 있는 나라를 더 두 조각으로 내버리는데 앞장섰다. 문 대통령의 가장 큰 과오로 기록될 것이다. 

홍찬식 객원 칼럼니스트(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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