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으로 세운 '징용노동자상'부터 영사관 앞 '소녀상'까지 150m 구간
노동절에 소위 '항일 거리'서 대형 집회 계획

지게차로 강제철거 되는 노동자상 [연합뉴스 제공]
지게차로 강제철거 되는 노동자상 [연합뉴스 제공]

민노총 등이 부산 동구 일본 총영사관 앞길을 ‘항일 거리’로 선포하겠다고 나섰다.

‘항일 거리’는 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에서부터 정발 장군상 인근에 가져다 놓은 ‘강제징용 노동자상’까지 150m 거리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민노총 측의 계획이 알려지자 부산시는 지난 12일 오후 기습적으로 노동자상을 철거해 남구의 역사관으로 옮겼다.

민노총은 이에 반발해 규탄 대회를 열고 부산시장 출근 저지 투쟁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신문에 따르면 민노총 등을 중심으로 구성된 이른바 '적폐청산·사회대개혁 부산운동본부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특별위원회(이하 특위)'는 지난 14일 오후 2시 동구 초량동 정발 장군 동상 앞에서 노조원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강제징용 노동자상 기습 철거 규탄대회'를 열었다.

특위 측은 이날 '항일 거리 선포대회'를 가질 예정이었으나 노동자상이 기습 철거돼 '규탄 대회'로 변경했다. 참가자들은 "노동자상 철거는 친일이다" "일본은 사죄하라, 친일 적폐 청산하자" 등의 플래카드를 내걸거나 구호를 외쳤다.

신문에 따르면 특위 측은 "1년 넘도록 떠돌던 노동자상이 동구청과 극적인 합의로 겨우 자리를 찾았는데 부산시가 아무런 통보 없이 강제 철거했다"며 "시가 일본 정부의 뜻대로 노동자상을 철거한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공무원노조 부산본부 측은 집회에서 "15일부터 오거돈 부산시장 출근길에 규탄 선전전과 출근 저지 투쟁을 펼칠 것"이라고 밝혔다. 특위 측은 또 "15일 오전 9시 부산시청을 항의 방문하고 시장 면담을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부산시는 지난 12일 오후 정발 장군 동상 주변 인도에 설치돼 있던 노동자상에 대한 행정 대집행을 했다. 시는 동상을 철거해 부산 남구 대연동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1층 로비로 옮겼다. 시 관계자는 "시민의 안전을 보호하고 물리적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전격적으로 행정 대집행을 시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징용노동자상은 지난 3월 인도 위에 허가 없이 세워진 불법 조형물이다. 특위 측이 지난해 5월 1일 일본 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옆에 설치하려 했으나 정부와 부산시의 설치 불가 방침에 따라 시도가 무산된 바 있다.

신문에 따르면 이에 특위 측은 지난달 1일 영사관에서 약 180m 떨어진 정발 장군 동상 옆 인도에 동상을 설치했다. 이후 시와 동구, 특위 등 3자가 설치 장소를 두고 협의 중이었다.

시의 행정 대집행은 특위 측의 '항일 거리 선포' 계획이 알려지면서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특위 측은 항일 거리 조성을 위해 노동자상을 종전 설치돼 있던 장소에서 일본 영사관 쪽으로 20~30m 가까운 쌈지공원으로 옮기려 했다. 이 같은 계획이 알려지면서 부산시에서 사전 차단에 나선 것이다.

민노총 등이 항일 거리 선포 후 노동절인 5월 1일에 노동자상 설치를 기념해 대규모 집회를 가지려 한다는 점도 부산시 측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문과 인터뷰한 부산시의 한 관계자는 "영사관 인근에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설치하고 그 앞길을 항일 거리로 선포하면 가뜩이나 악화 일로인 한·일 관계에 큰 해가 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준경 기자 calebcao@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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