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왼쪽)이 2017년 6월 1일 오후 청와대 충무실에서 임명장 수여식을 마치고 서훈 국정원장과 티타임 하기 위해 인왕실로 이동하고 있다(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2017년 6월 1일 오후 청와대 충무실에서 임명장 수여식을 마치고 서훈 국정원장과 티타임 하기 위해 인왕실로 이동하고 있다(연합뉴스).

지난해 116국정원 댓글사건으로 수사를 받던 변창훈 서울고검 검사가 서울 서초구의 한 법무법인 사무실 건물 창밖으로 몸을 날렸다. 변 검사는 국정원 파견 검사로 근무했던 지난 2013국정원 댓글사건을 수사하던 검찰 수사팀을 방해한 혐의로 수사를 받다가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그보다 앞서 1030일 같은 사건으로 수사를 받던 국정원 직원 정모 변호사도 강원도 춘천시 소양강댐 인근 주차장에서 자신의 차 안에 번개탄을 피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약 한달 후 박근혜 정부에서 국정원장을 지냈던 이병기, 남재준 전 원장이 국정원 자금을 청와대에 뇌물로 상납한 혐의로 줄줄이 구속 기소됐다. 박근혜 정부의 마지막 국정원장이었던 이병호 전 원장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수사를 받았다. 남북이 대결하고 있는 분단 국가에서 대공 정보의 사령탑을 이처럼 한꺼번에 초토화시킨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누가봐도 비리척결이라기 보다는 정치보복이라고 느끼지 않을수 없는 상황전개이다. 세 명 모두 같은 혐의라면, 이를 주도한 주범을 구속하는게 옳으며, 나머지는 기존의 방식을 따라간 종범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돈을 집행한 이헌수 전 국정원 기조실장은 기소조차 하지 않음으로써 비리척결에 목적이 있다기 보다 정치수사임을 자인하고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 여론조작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이후 민간인 댓글부대를 운영하는 데 국정원 예산을 지원한 혐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및 공영방송 장악을 지시한 혐의로 또다시 기소됐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에 연루된 박근혜 정부 고위급 인사 중 유일하게 불구속되었으나, 추명호 전 국정원 국장에게 자신의 비리 의혹을 감찰하던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 등에 대한 불법 사찰을 지시하고 그 결과를 비선으로 보고받은 혐의로 1215일 구속됐다.

국정원을 겨냥한 문재인 정부의 칼날이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다. 국정원의 시스템 개혁이 아닌, 국정원발(發) 정치보복의 전무후무한 정치기획을 선보이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이 수사하고 있는 소위 적폐사건’ 19건 중 국정원의 정치개입 의혹사건은 무려 13건에 달했다. 20171217일 현재 검찰은 국정원 적폐 수사와 관련해 21명을 구속하고, 32명을 기소했다. 국정원이 이른바 적폐(積弊)’ 수사의 표적이 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국정원 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국정원의 수사 기능과 국내 정보 수집 업무를 전면 폐지하고, 대공 수사권을 경찰에 넘기겠다고 약속했다. 또 불법 민간인 사찰, 정치와 선거개입, 간첩조작, 종북몰이 등 4대 공안 범죄에 관계한 조직과 인력에 대한 처벌 형량을 높이고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을 응징하겠다고 했다.

물론 이러한 국정원 손보기는 문 대통령만의 발명품은 아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국정원 직원들의 대량 해고 및 기능 축소는 있었다. 송영인 전 국정원 간부는 2013김대중 정부가 국정원 전문대공수사 인원 581명 등을 일시에 쫓아냈다고 밝혔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정원의 탈정치화, 탈권력화를 주장하며 국정원 비전 2005’를 선포하고 10대 중점 개혁과제를 제시했다.

대통령 당선 다음날 그는 서훈 이화여대 북한학과 초빙교수를 국정원장에 내정했다. 서훈 국정원장 후보자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1,2차 남북 정상회담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등 남북 간 많은 공식비공식적 접촉을 진행했으며, 국내에서 김정일을 가장 많이 만나본 인사로 손꼽힌다. 서 후보자는 20166월 계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비핵화를 위해서는 먼저 김정은 정권을 보장해줘야 한다” “남북 정상회담이 필요하다고 했다. 국회 청문회에서 그는 문 대통령의 국정원 개혁 공약 중 국내 정보파트를 없애는 데 동의하고 실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서훈 국정원장은 작년 519일 국정원개혁발전위원회(개혁위)를 발족시켰다. 개혁위는 적폐청산TF팀과 조직쇄신TF팀으로 구성됐으며, 성공회대 정해구 교수가 개혁위 원장에 임명됐다. 정 교수는 좌파 학술단체인 한국정치연구회창립 멤버이자 오래된 친노 인사다. 2003년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정무 분과 연구위원으로 참여했다. 문재인 정부 인수위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 정치, 행정 분과 위원으로 활동했다.

이석범 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부회장과 자유식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소장, 허태회 국가정보학회장, 김유은 한국국제정치학회장,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최종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오정희 전 감사원 사무총장 등 민간 전문가 8명과 국정원 전·현직 간부 5명이 국정원 개혁위원에 포함됐다. 그동안 국정원 쇄신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던 민변, 참여연대 간부 등 좌파 민간인들이 국정원 개혁위에 대거 포함된 것이다.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

위원장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

민간 위원

이석범 전 민변 부회장

 

장유식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소장

 

허태회 국가정보학회장

 

김유은 한국국제정치학회장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최종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오정희 전 감사원 사무총장

국정원 개혁위는 적폐청산TF팀에게 국정원 간부의 청와대 비선보고,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세월호 참사, 채동욱 전 검찰총장 개인 정보 유출, RCS를 통한 민간인 사찰, 류경식당 종업원 망명 등 15개 사안 목록을 하달해 조사하도록 지시했다. TF팀은 수백 개의 키워드를 선정한 후 전산요원에게 국정원 메인 서버에 해당 키워드를 입력해 수천만 건의 기밀 자료를 엑셀 파일 형태로 출력하도록 했으며, 이 가운데 불법 및 정치공작 혐의가 있는 목록의 기밀 원본자료를 국정원 개혁위에 보고했다. 개혁위는 TF팀의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중앙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TF팀은 국정원 개혁위의 요청으로 20164월 중국 저장성의 류경식당에서 일하다 제3국을 거쳐 한국으로 입국한 북한 종업원 13명 탈출 사건에서 국정원이 어느 정도 개입해 납치행동을 저질렀는지 살펴보기 위해 관련 기밀 사항을 메인 서버에서 추출했다. 관련된 첩보, 정보, 공작기록을 모두 검토했으나, 국정원이 저지른 불법 행위가 나타나지 않아 조사를 그냥 덮었다고 한다.

국정원은 1129국정원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북한은 이날 공교롭게도 미국 본토까지 타격 가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했다. 국정원이 제출한 개정안에는 국정원의 명칭을 대외안보정보원으로 변경하고, 국정원이 보유하고 있는 대공수사권 등 모든 수사권을 포기하거나 다른 기관에 이관하며, 국내 정보 수집을 중단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는 그동안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을 차단하기 위해 국가정보원법을 개정해 국내보안정보 수집권을 폐지하고, 국정원의 정보 수집 범위를 대북·국외로 한정하며, 국정원의 정보 및 보안업무 기획·조정 권한 폐지하는 동시에 국정원의 예산을 구체적으로 밝히도록 해 국정원에 대한 감독과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했던 참여연대와 민변, 그리고 일부 국회의원들의 주장을 그대로 답습한 것에 불과했다.

상황이 악화되자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한변)’은 지난해 124비밀 취급 자격이 없는 민간인들에게 국정원 메인 서버에 저장된 국가 기밀을 제공한 혐의(국가정보원직원법상 공무상 비밀 누설)’ 등으로 서훈 국정원장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김태훈 한변 상임대표는 국정원의 메인 서버를 열어 국가 기밀을 민간인에게 유출하는 것은 국정원을 해체하는 것과 같다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범죄행위에 해당하므로 서훈 국정원장을 엄중히 수사해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정원 개혁위는 설치에 관한 법적 근거가 모호하며,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은 국정원 댓글 사건에 관해 피해자 입장에 있으므로 수사의 공정성을 위해 수사지휘 라인에서 제외돼야 한다고 했다.

심재철 국회부의장은 지난해 1212일 국회에서 열린 포럼에서 민간인들로 구성된 국정원 적폐청산 TF 위원들은 청와대 심지어 국정원 직원들조차 볼 수 없었던 국정원의 메인서버 자료 등을 들여다보는 것은 국정원법 위반일 뿐만 아니라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반국가적 행위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창위 세계국제법협회(ILA) 한국본부 부회장(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국가정보는 어느 정권이라도 새로 집권한 후에 그 정당성과 가치를 자의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정보기관 개혁은 정치인이 아니라 최고의 전문가가 사명감을 갖고 비밀리에 진행해야 하는 초정밀 수술이라고 지적했다. 이 부회장은 정보기관의 정치개입과 인권유린 행위는 금지돼야 하지만 국가안보 목적의 사찰은 허용돼야 한다증거인멸의 귀재인 최고의 범죄 전문가들이 가공할 위험성과 파괴력을 갖고 국가붕괴라는 대재앙을 목표로 암약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해외정보기구와 실시간 정보 공유가 가능한 국가정보원이 대공수사를 담당하지 않으면 파멸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국가안보는 나라의 존속과 직결돼 있다정권이 바뀌어도 정보기관의 형해화는 절대 안 된다고 했다.

김태훈 대표는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 처해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문재인 정부에서 국정원, 각 행정부처, 사법부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각종 개혁위원회나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에 대해 구성근거, 활동내역 등에 관한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실상을 파악하고, 적폐의 총본산 격이 된 국정원 적폐청산 TF팀 활동에 대해 민형사상 고소, 고발이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등 국내외 법치 시스템을 활용해 지속적으로 법적대응에 나서야 한다야당이 국회에서 대정부 질의나 국정조사권 발동 등을 통해 강력히 원내 투쟁에 나서는 한편 사회 여론 환기를 통한 정치력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준경 기자 calebcao@pennmike.com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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