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 '한강의 기적 신호탄' 경부고속도로 첫 삽을 뜨다
50년 전 '한강의 기적 신호탄' 경부고속도로 첫 삽을 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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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2월 1일 경부고속도로 착공
야당 지식인 언론의 맹반대를 뚫고 일궈낸 성공
경부고속도로 건설 후 '물류 혁명'과 '전국 1일 생활권'
'불가능의 기적' 만들어낸 주역들 잊지 말아야

1일은 대한민국 경제기적의 역사에서 큰 획을 그은 경부고속도로 착공 50년이 되는 날이다. 1968년 2월 1일 박정희 정부는 '단군 이래 최대 역사(役事)'라고 불린 경부고속도로 건설공사를 시작했다. 그 역사(歷史)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보자.

"여기가 말로만 듣던 아우토반이구먼…."

1964년 12월 서독을 방문한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수도 본에서 쾰른까지 아우토반을 달리면서 도로는 물론 주변을 유심히 살펴봤다. 직접 만지고 자세히 보기 위해 여러번 차에서 내렸다고 한다.

우리 국적기가 없어 서독이 제공한 '루프트한자'를 빌려 서독을 방문하던 시절이었다.  그때 가슴에 품었던 뜻을 실천으로 옮긴 날이 1968년 2월 1일이다.

서독 방문. 루프트한자에서 내리는 박정희 대통령
서독 방문. 루프트한자에서 내리는 박정희 대통령

그러나 서독방문 이후 박정희는 2년의 시간동안 고속도로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그 기간 동안 박정희는 고속도로에 대한 구상을 외부에 알리지 않은 채 소수의 사람에게만 내비쳤고, 고속도로에 대한 자료수집에 몰두하였다. 마침내 1967년 대선 때 박정희는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공약으로 내걸며 고속도로  건설 의지를 공개적으로 천명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그린 경부고속도로 스케치
박정희 대통령이 그린 경부고속도로 스케치

대선에서 윤보선을 꺾고 재선에 성공한 박정희는 곧바로 고속도로 건설을 추진했다. 그러나 당시 야당과 대다수 지식인 및 언론, 심지어 여당 일각에서도 거센 반대와 반발이 나왔다.

한국의 좌파세력에게 지금까지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변형윤 교수를 비롯한 서울대 상대 교수 전원은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환경을 파괴하고 낭비적이며 대다수 국민이 아닌 극소수 부자들만을 위한 것"이라며 조직적인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변 교수는 "고속도로를 만들면 부자들이 기생들과 첩들을 싣고 유람다니는 도로에 불과할 것"이라고까지 혹평을 퍼부었다. 김대중과 김영삼을 비롯한 야당 정치인들의 반대도 거셌다. 김대중은 "머리보다 다리가 크고 양팔과 오른쪽 다리가 말라버린 기형아 같은 건설"이라며 "고속도로를 만들어봐야 달릴 차가 없다. 독일의 아우토반이 될 줄 아나. 고속도로를 만들어 봐야 부유층을 위한 호화 시설이 될 뿐"이라고 비난했다.

경부고속도로 반대 시위
경부고속도로 반대 시위

당시 김대중과 김영삼은 "정 고속도로를 건설해야 겠다고 해도 16차선(왕복 8차선)은 절대 안된다. 뭣하러 그렇게 넓게 짓는가?"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박정희는 "내가 야당 반대 때문에 양보하지만...미래에는 반드시 도로가 부족할 것이다. 그러니 8차선 (왕복 4차선)으로 하더라도 반드시 경부 고속도로 양 옆으로 50m 는 남겨 두라. 건물 신축을 금지하라. 미래엔 더 확장해야 할 것이다"라고 지시했다.

(좌:경부 고속도로 완공초기. 우: 최근 경부고속도로)
(좌:경부 고속도로 완공초기. 우: 최근 경부고속도로)

경부고속도로는 429억원이 투입돼 1970년 7월 7일까지 2년 5개월만에 완공됐다. 연인원 892만 8천명과 165만대의 장비, 16개의 건설업체와 3개 건설공병단이 참여한 대형 사업이었다. 경부고속도로 금강휴게소 인근에는 공사 과정에서 아까운 목숨을 잃은 77명의 순직자를 기리는 위령탑이 서 있다.

경부고속도로 완공으로 비포장 길을 돌아 15시간 이상 걸렸던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이동 시간이 4시간 반으로 단축됐다. 이것은 전국이 '1일 생활권'으로 들어오는 계기가 되었고 막대한 물류비 절감과 유통 혁명을 가져왔다.

경부고속도로로 인해 생산지와 주요 대도시 그리고 수출 항구 간의 물류수송이 원활해졌다. 물류수송의 혁명으로 생산된 농산물이 대도시로 유통되어 농촌은 부유해졌고, 수출형 공업단지가 형성될 수 있었다. 이는 1970년대 철강, 석유, 화학, 조선, 자동차, 전자 등의 중화학 공업단지 건설로 이어졌다. 개편된 산업구조는 수출을 증대시켜 국민소득을 향상시켰고 소비가 늘어나면서 내수산업 발전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경부고속도로는 또한 분리되어 폐쇄적인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지역들을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으면서 지역간 소통을 가능하게 하고 정보와 문화 등의 교류를 가져왔다.

경부고속도로를 기반으로 88올림픽고속도로, 중부고속도로 및 수많은 고속도로가 개통되어 2007년에는 전국 고속도로 3,000km시대가 열렸다. 경부고속도로는 뒤이어 건설된 포항제철(현 포스코)과 함께 '조국 근대화'와 '오랜 빈곤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며 국가지도자와 기업인, 국민이 질풍노도로 달렸던 대한민국 경제기적의 역사를 상징하는 잊을 수 없는 대형 국책사업으로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경부고속도로 개통식
경부고속도로 개통식

김민찬 기자 mkim@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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