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문 칼럼] 젊은 세대가 모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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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9.04.11 09:58:35
  • 최종수정 2019.04.12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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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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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인이 이해 또는 오해한 4·3 사건

배우 유아인이 4·3사건 71주기 기념식에서 추모사를 읽었는데 읽는 동안 때로 감정이 벅차서 목이 메었다. 멋진 연기였다고 비꼬고 싶지는 않고, 우리 연예계의 괄목할 인재라고 평하고 싶기는 하다. 그는 이 추모사를, 자기가 4·3 사건에 대해서 몰랐다는 사실이 놀랍고 부끄러웠다면서 4.3사건을 ‘어떻게 불러야 했는지도’ 몰랐고 ‘왜 우리가 몰라야 했는지도 몰랐다’고 서두를 열었다. ‘왜 몰라야 했는지’의 어감은 누가, 또는 어떤 세력이, 그로 하여금 4·3 사건을 알지 못하도록 의도적으로 장막을 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강하게 풍긴다.

유아인에게 “4·3 사건 말고 또 무얼 모르지?”라고 묻는다면 그건 “결석한 사람 손 들어봐”라는 것이나 다름없어 실례가 되겠다. 그러나 그가 4.3에 대해서 무식을 벗었다고 생각하는 지금, 4·3 사건을 어떻게 알고 있는가는 정당한 질문일 것이다. 그는 기념사에서 “그런 일을 자행한 자들은 어떻게 멀쩡히 살아 갈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어하고, “피해자와 유족들은 어떻게 감내했는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그가 ‘그런 일을 자행’했다고 말한 대목의 ‘그런 일’은 폭동을 일으킨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자행’했다는 것도 파출소를 습격하고 무기고를 탈취한 폭도들의 행위가 아닌, 경찰의 무장 폭도들 진압 행위를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피해자’는 아마도 경찰의 진압과정에서 폭도와 구분이 안 되어서 살상을 당한 민간인을 말하는 것이라고 짐작되는데, 유아인이 4·3 사건이 ‘폭동’이었고, ‘폭도’들이 1차 가해자였음을 아는지 궁금하다.

그가 기념사에서 말한 내용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그는 4·3 사건을 평화롭게 생업에 열중하는 양민들이 어느 날 천둥벼락같이 관군의 습격을 받아서 대량학살을 당한 사건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그의 지식원(源)은 “순이 삼촌”이라는 중편소설 정도인 것 같이 보인다. 그는 4·3 사건이 대한민국을 수립하기 위한 5·10선거를 방해하기 위해서 남로당의 거물 박헌영과 김달삼이 제주도민을 선동해서 일으킨 폭동이라는 것, 그리고 박헌영과 김달삼은 제주폭동을 전국으로 확산시켜 남한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 편입시키려는 거대한 야망을 품고 4·3 폭동을 선동했음을 알까, 모를까? 유아인이 그 점에 대해서 무지하다면 그는 아직도 4·3 사건을 모르는 것이다. 4·3 사건의 왜곡된 버전(version)을 주입받았을 뿐인 것이다.

유아인은 그렇게 4·3사건에 대한 부족하고 왜곡된 지식(인식)을 갖고, 그 4.3을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소환하고 현재로 만들기 위해’ 그에게 주어지는 무대, 화면 기타 대화의 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것 같다. 그러면 4·3 사건의 전도된 ‘전설’이 유아인의 영향력만큼 확대 재생산되고 그를 통해 그 전설을 전수받은 국민(대부분 젊은 세대?)의 우리나라—또는 기성세대--에 대한 반감과 혐오도 그만큼 부풀려 질 것이고 우리 사회의 이념적 분열의 극복은 그만큼 요원해 질 것이다.

근대사의 무수한 덫

유아인 같은 젊은 세대가 거꾸로 알고 있는 (그러니까 모르니만 못한) 사건이 어찌 4·3 뿐이겠는가. 아직 너무나 생생한 ‘촛불혁명’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던 이들도 자신이 참여했던 위치와 다른 곳에서 벌어진, 또는 얼핏 보았으나 주목하지 않았던, 촛불시위의 양상을 알고 경악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거대한 집회를 매주 ‘진행’하는데 든 어마어마한 예산의 출처가 어디인지 알 수도 없지만 몰라도 된다고 생각했던 평범한 참가자도 많을 것이다. 사실 대다수의 참가자는 그 예산을 제공한—그리고 행사를 기획, 운영한--세력의 정체는 모르고 그냥 대규모 집회의 설렘과 정의의 투사가 된 느낌이 좋아서 참가한 것 아닐까? 아직도 ‘음모설’에 매달리는 사람이 있는 천안함, 민족분열의 분수령이 된 5·18, 길을 봉쇄해서 적의 진입을 저지해야하는데 아무리 경고방송을 해도 계속 밀려오는 피난민을 어쩔 수 없이 발포로 저지한 노근리 사건, 지난 6일 ‘피해자 보상법안’이 통과됨으로써 우리를 구원한 작전이 아니고 우리를 짓밟기 위한 작전처럼 되어버린 인천상륙작전, 6·25의 수많은 민간인 희생의 경위, 여순반란사건, 4·3 사건, 이외에도 무수한 근대사의 사건들이 아직 어지러운 진실공방 속에 국민 분열의 불씨가 되고 있다. 그래서 유아인이, 자신이 최근에 갑자기 엿본 4·3 사건의 한 단면을 열정적으로 전파하기에 앞서서 이영훈교수의 “한국 근현대사”같은 저서를 읽고 한 나라의 운명이 무엇에 좌우되는지에 대해 긴 호흡으로 숙고해 보기를 바라는 것이다.

진실을 차단하는 역사교과서

우리의 차세대들이 배우는 국사교과서가 반국가적 교과서가 된지 이미 오래되었다. 전교조가 지난 20년간 주력한 일 중에서 제일 공들인 과제가 교과서 왜곡이 아닌가 싶다. 지금 우리의 역사교과서는 초등학교부터 중고등학교까지 한반도에 정통성을 지닌 정부가 대한민국보다‘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고, 북한이 인민의 삶을 책임지는 나라이고 남한은 자본가가 서민을 착취하는 나라라고 인식시킨다. 4·19—5·18—6·10 항쟁-촛불혁명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정부전복 운동이 아니었으면 우리나라는 아프리카의 미개국이 되었을 것 같이 가르친다. 이런 운동들이 지축을 뒤흔들어도 국민의 삶이 위태롭지 않을 수 있었던 토대는 누가 구축한 것일까?

교과서들은 ‘한강의 기적’이라며 세계가 경탄하는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을 마치 국민의 노력보다는 그냥 시간의 경과와 함께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일인 듯이 행위자가 없는, ‘자동차 산업은 . . . 주요 수출품으로 자리 잡았다’, ‘수출액이 증가해 생활수준이 크게 향상되었다’ 식의 문장에 담았다. 우리가 수 백 년, 아마도 수 천 년의 가난을 벗고 다른 나라들처럼 잘 살기 위해서 온 국민이 들인 그 피나는 노력과 염원이 온데간데가 없다. 현재의 번영과 안정, 학문과 문화적 수준, 그리고 그것을 지탱하는 인프라를 마련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선배세대들의 피땀과 영혼의 고뇌가 투입되었는지를 오늘날 젊은 세대가 안다면 ‘헬조선’ 따위의, 그들의 부모와 조부모 세대를 모독하는 말을 그리 쉽게 뱉지는 못할 것이다.

오늘 한국의 현실: 탈원전 사례

그런데 이 어렵게 이룩한 경제대국, 문화대국이 지금 사양길에 들어 선 정도가 아니라 벼랑 끝에 서 있다. 그러니까 이제는 ‘역사’라고 말할 수 있는 4·3도 바로 알아야하지만 오늘의 한국, 내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 나라의 사정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패거리 짓기에 휩쓸리면 나라가 무너지는 것을 막지 못하고 오히려 멸망을 재촉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국책연구기관인 KDI 마저도 인정하고 많은 해외 학자, 연구소들이 우려할 정도로 이 나라는 총체적 부실에 빠지고 있는데, 그 무수한 부실화의 양상을 다 짚을 수는 없고 하나의 예로 모든 국민의 일상생활에 직접적 위협이 되는 탈원전정책에 대해서만 간략히 생각해 보겠다.

문대통령이 ‘판도라’라는 영화 한편을 보고 그의 여린 감성이 자극을 받아서 행여라도 국민이 원전사고의 피해자가 될까봐 채택했다는 정책이 ‘탈원전’이다. 그러나 사실은 (초대 비서실장의?) 옛 운동권 동료들 중 공직이 다 돌아가지 않는 사람들에게 위로 차, 보조금이 뭉텅뭉텅 지급되는 태양광사업을 분배하기 위해서 실시하고 있다고 강력히 의심된다. 원전 건설은 지난 60년에 걸쳐 참으로 어렵게 이룩했고 학자, 기술자를 많이 양성한 까닭에 우리나라가 원전건설 기술의 세계대국으로 인정받아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수주 받은 원전건설이 국가경제에 크게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국내의 원전은 안전을 염려해서 폐쇄한다면서 해외에서 원전 수주를 받겠다고 대통령이 방문외교를 펼치는 촌극도 벌였지만 원전건설을 그리 허술히 발주할 나라가 어디 있는가. 이렇게 원전을 막무가내로 폐쇄하니 국내의 관련 학자, 기술자, 기타 종사자들이 실업자가 되어 해외로 일자리를 찾아서 흩어지게 되었고 우리나라는 값도 비싸고 심한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태양광발전과 화력발전에 전력수급의 많은 부분을 의존하게 되었다. 그래서 원전이 생산한 값싼 전기로 오래 호황을 구가하던 한전이 엄청난 적자에 신음하게 되었고 이 중추적 국가기업이 부실화되었다. 이번의 강원도 산불도 적자에 허덕이는 한전이 예산절감을 위해서 각종 기기의 교체주기를 연장하는 바람에 제때에 교체되지 못한 개폐기에서 발화가 일어났다지 않는가? 앞으로 이런 참사가 또 어디서 어떻게 터질지 알 수 없는 국민은 좌불안석이다.

잠시라도 정전이 되면 정상가동을 회복하는데 여러 날이 걸려서 수십조 원의 생산차질이 생기는 반도체 공장 등은 자체발전시설을 건설하고 있으니 이런 국가적 낭비가 있는가. 당분간은 탈원전 정책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서 가정과 업체에 공급되는 전력의 가격을 강제로 동결하고 공급을 억지로 유지하고 있지만 오래 지속할 수 없는 일이고, 당장 올 후반기부터 잦은 대규모 정전사태가 올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일상생활의 불편, 차질은 말할 수도 없거니와 나라 경제는 비틀거리다가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탈원전 정책은 우리나라를 완전 무력화, 폐허화시키려는 음모라는 의심이 어쩔 수 없이 든다.

국내의 학자들은 물론 세계의 석학들이 모두 가장 환경보존에 유리한 청정에너지라고 하는 원자력발전을 환경 대재앙 유발 산업처럼 홍보해서 그 대체에너지원으로 참 빠르게도 우리 국토를 점령한 태양광패널은 이번 강원도 산불이 태운 면적의 4.3배에 달하는 산림을 베어내고 설치되었다고 한다. 온 국토가 태양광 패널로 누더기가 되었는데 게다가 그 패널들이 중국산 저급품이라서 몇 년 내에 성능이 떨어지거나 정지되고 중금속이 흘러나와서 우리 토양을 병들게 하는 쓰레기가 되리라고 한다. 또 베어 낸 삼림 때문에 산사태가 발생할 위험도 크고 태양광패널이 강풍에 날려서 민가나 행인에 치명적 피해를 줄 수도 있다고 한다. 그래도 태양광패널의 점유지는 확대일로에 있지 않은가? 태양광패널의 문제점과 원전의 100% 안전성을 무수한 전문가, 위원회, 일반국민이 목이 메도록 호소했지만 이 정부는 완전 묵살하고 있다.

역대 정부를 단연 능가하는 전횡

이 정부의 전횡은 탈원전만이 아니다. 이 나라는 온 국민을 겁에 질리게 한 ‘적폐청산’의 광풍으로 인해 정신적, 도덕적 폐허가 되었고 사법부와 검찰, 군, 언론 등 나라의 중추기관들이 정부에 장악되어 정권의 하수인이 되었고, 마치 국가경제의 파탄을 위해서 강행되고 있는 듯한 경제정책들로 인해 청년들은 일자리 절벽 앞에서 절망하고 있고 소규모 사업자들은 폐업으로, 심지어 자살로 내몰리고 있다. ‘무차별 복지’ 정책으로 국고가 고갈될 지경인데 늘어 난 일자리는 ‘불끄기 담당’ 같은 것 들이고, 극심한 인사 참사로 인해 이 나라는 무자격 조타수가 키를 잡은 배처럼 갈팡질팡 하다가 좌초할 선박과 같다. ‘평등’ 교육 때문에 차세대의 학력과 지력이 급강하하고 있고 ‘학생인권조례’는 나라의 미래를 어른도 모르고 이웃과 더불어 살 수 없는 인격장애아 들로 채울 것이다. 국민들을 홍수에서 보호해 주는 4대강 보의 물을 방류하는 것은 국민이 걱정 없이 사는 것을 봐주지 못하겠다는 심술인가? 강에 수량이 풍부해야 흙도 나무도 건조하지 않아서 산불이 덜 나고 진화(鎭火)에도 유리하다는데. 이 정권 창출의 ‘공신’인 민노총 소속원들은 폭력면허를 받아서 거리낌 없이 아무나 폭행하고 어디나 침입한다. 자국민의 피를 흘려 우리의 자유를 지켜 준 미국에게는 국가적 자존심을 세운다는 핑계로 발악적인 모욕을 일삼는다. 외교의 중요성을 모를 뿐 아니라 외교 따위의 자질구레한 일은 신경 쓰지 않겠다는 소신의 표현인지, 연속적으로 참사를 연출하니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은 자유낙하 한다.

이 정부의 끝없는 비리에 국민은 지쳐서 이제 진상규명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진상’이라고 내놓는 것이 허술하기 짝이 없는 거짓일 것이 뻔하기 때문에. 이 정부의 모토가 ‘사람이 먼저다’라는데 국민은 사람 이하인 모양으로, 국민의 요청이나 반대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 오만이 하늘을 찌른다. 지난 2년 동안 발생한 국가적 재앙을 열거하자면 책 한권이 모자라겠지만 무엇보다도 심각하고 처절한 것이 나라의 울타리를 모조리 허물고 적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하고 있는 형세인 것이다. 1인당 국민소득 58불에서 3만불에 이르는 과정을 함께해 온 사람으로서 온 국민의 70년 분투가 허업(虛業)이 된다는 허탈감에 망연자실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모든 사태를 젊은 세대가 눈 똑바로 뜨고 그 심각성을 절감해서 이 나라, 그들의 부모와 조부모 세대가 혼신의 노력으로 이룩한 그들의 나라를 지켜나가기를 당부한다.

서지문(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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