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된 외교 의전사고, 외교관들 능력부족 아닌 靑 주사파 상식밖 정책에 혼란 겪은 탓

김석우 객원 칼럼니스트
김석우 객원 칼럼니스트

문재인 정권하에서 외교관들의 의전 사고가 눈에 띠게 늘어나고 있다. 스페인과의 전략대화 공식행사장에 구겨진 태극기를 내걸어 망신을 샀다. 작년 대통령 체코 방문 시에는 외교부 트위터에 26년 전 국가명인 ‘체코슬로바키아’로 표기했다. 지난달 보도 자료에 ‘발트’3국을 ‘발칸’3국으로 잘못 표기하여 해당국가의 항의를 받았다. 문 대통령의 캄보디아 방문 때 페이스북에 대만 건물 사진을 올려서 홍보하고, 문 대통령이 말레이시아 마하티르 총리에게 인도네시아 인사말을 하게 했다. 전문가들의 집중력 부족으로 인한 실수가 누적되는 현상이다.

지금 외교부 안에 감히 항명할 정도로 간이 큰 외교관이 있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외교관들의 기강해이가 만연되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의 기세에 눌려 외교부 조직을 활성화시킬 엄두를 못내는 강경화 장관이 외교관들의 기강해이를 경고해보았자 해결될 리가 없다. 근본 원인이 다른데 있기 때문이다.

외교관이란 애국심을 먹고 사는 직업이다. 본래 식민통치를 벗어난 신생독립국에게는 외교가 가장 생소한 분야였다. 경험과 인재가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국제정치에 통달한 이승만의 지도에 따라 초기 외교관들이 국가건설 외교에 매달린 이래, 근대화와 민주화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무난하게 수행하였다. 국가재정이 빈약하여 2백 달러 경비 지출도 이승만 대통령 결재를 받았던 문서들이 외교 사료관에 남아있다. 열악한 조건에서도 외교성과를 낸 원동력은 외교관들의 능력보다도 피 끓는 애국심이었다. 강대국의 외교관들보다 몇 배의 준비를 해서 협상에서 맞부딪쳐서 외교목표를 얻어낸 힘은 애국심에서 나왔다.

2005년 한일외교문서 전면공개 준비과정에서 이원덕 교수를 비롯한 전문가들이 한일 간 협상 기록 3만5000장을 전부 읽고 분석 발표한 일이 있었다. 이 교수는 언론인터뷰에서 “일부에서는 한일회담이 굴욕외교라는 시각이 있었지만, 협상 당시 외교라인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음이 확인됐다"며 "한 고위 외교관은 선배들의 노고에 눈물을 비치기도 했다"고 털어 놓았다. 과거 식민지 종주국이었던 일본 외교관들의 경험과 정보에 비해 한국 측이 크게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밤새우는 협상을 통해 얻어낸 결과는 애국심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물론 우리의 목표에 미흡한 타협도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다. 상대방이 있는 외교이기에 지금에 와서도 그러하다. 그러나 한국 외교관들이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미진한 점은 다시 해결하려고 기회를 노린다. 그들의 애국심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일본과 대만이 수십 년 전에 시행하던 해외훈련제도를 한국외교에 도입한지 30년이 넘었다. 초임 외교관들을 2-3년간 해외 대학에 파견해서 외국어와 국제관계, 협상기술을 연마하도록 하였다. 그래서 지금 외교관들은 앞 세대보다 훨씬 진화되어 국제무대에서 유감없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요즈음 의전 실수, 사고가 끊이지 않는가?

답은 정치권력 내부에 있다. 남북관계를 비롯한 외교영역도 청와대가 독주하여 외교부 본연의 역할이 사라진 것이다. 청와대는 과거 북한정권에 충성맹세했던 소위 주사파 핵심인사들이 60명 이상 포진하여 주요외교정책도 챙기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의 헌법정신에 따라 한미동맹, 한일 협력에 중점을 두는 외교정책의 기본을 쉽게 뒤 흔든다.

청와대의 이념적 접근이 국제사회의 상식에 반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국제적인 제재가 절실한 시기에 대통령은 제재를 완화해달라고 유럽 정상들에게 요청했다가 민망하게 거절당했다. 북한 정권에 대한 압박과 제재가 필요한 시기에 성급하게 남북경협구상을 발표하여 동맹들로부터 보조를 맞추라는 주의를 듣는다. 소위 김정은의 수석 대변인이라는 언론보도가 나온 근거다.

인권변호사라고 자랑하는 대통령이 북한 동포들의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외면한다. 김정은 정권의 심기를 불편하지 않게 하려고 애쓴다. 현장의 한국 외교관들은 탈북자들이 보호를 요청해도 어찌해야 할지 쩔쩔맨다. 강경화 장관이 외교부 국제기구국장일 당시 2005년 유엔인권위원회의 북한인권규탄 결의안에 기권한 기록이 남아있다.

외교관들이 방황하고 있다. 자기장(磁氣場)의 변화로 방향감각을 잃은 꿀벌이나 개미들과 흡사하다. 주적개념을 없애려는 상층부의 눈치를 보느라 일선 군인들이 혼란을 일으키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미국, 일본 업무를 담당했던 인재들이 적폐청산이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거나 퇴출되었다. 현 정부 들어 청와대의 외교부 보안조사가 10차례 넘게 이뤄져서 외교관들이 잔뜩 움츠리고 있다. 휴대폰 감찰당할까 두려워하면서 청와대 눈치 보기에 급급해 한다. 3류 외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외교관이라 하더라도 이런 상황에서 열심히 일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쉴 새 없이 터지는 외교관들의 의전사고는 그들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청와대, 특히 주사파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국제사회의 상식과 논리를 벗어난 정책을 추구하는데 대해 전문 외교관들의 회의감이 커지고 애국심을 상실하는데 근본 이유가 있다고 본다. 책임은 바로 그들의 애국심을 빼앗은 정권 측에 있지 않은가?

소련의 공산당정권하에서 그랬듯이 김정은 독재체재에서도 일반주민이나 전문가들은 열심히 업적을 내기보다는 책임회피를 위해 전전긍긍하는 풍조가 퍼져있다. 공산주의가 70년 만에 실패로 끝난 원인은 공산당 독재체제에서 주민들이 자아비판 당하거나 심한 경우 강제수용소로 끌려가는 공포가 연속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체제는 실패했고, 멸망하게 된다.

청와대 주도의 맹목적 대북정책 때문에 내 조국이 어디인지 혼란을 일으키고, 청와대의 눈치만 보는 젊은 외교관들이 애국심을 잃는 것이 안타깝다.

김석우 객원 칼럼니스트(21세기국가발전연구원장·前 통일원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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