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년 전에 번역을 끝낸 원고가 올해 비로소 출간됐다"

역자(박종선)의 이 한마디로 국내 출판업계의 편향성을 알 수 있었다. 세계적으로 보수주의의 바이블 중 하나로 꼽히는 '보수주의자의 양심(The Conscience of a Conservative)'이 갈 곳을 찾지 못해 6, 7년간 방황하다 올해 처음 한국어로 번역되어 출간된 것이다. 

최근 몇 년간 한국의 '보수'가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따가운 비판 속에서도 이 책은 그동안 영어 원문으로써 책방 구석에 꽃혀 있었다. 그러다 작년 10월 설립된 출판사 '열아홉'을 만나 비로소 한국어로 번역·발행됐다. 출판사 '열아홉'은 이 책이 가진 의미를 담아 첫 발행서로 낙점해 출판했다고 한다.

미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베리 골드워터가 1960년에 쓴 이 책은 에드먼드 버크의 '프랑스혁명에 관한 고찰(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in France)', 러셀 커크의 '보수의 정신(The Conservative Mind)' 등과 함께 보수주의를 대표하는 책으로 꼽힌다.

베리 골드워터는 1964년 역대 최대 표차로 상대 후보인 린든 존슨에게 참패를 당하지만, 그로부터 16년 뒤인 로널드 레이건이 미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 받는다. 각종 언론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 반대 세력이 있어야만 내가 비로소 존재하는 개념의 좌(左)·우(右)가 아닌, 자립(自立) 가능한 '보수의 가치'를 주장하면서 패배했기 때문이다. 그는 '극우주의'라는 비판 속에서도 공화당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에서 "자유의 수호에 있어서 극단주의는 결코 악이 아니다"라고 외쳤을 정도였다.

실제로 미국의 보수주의는 최악의 대선 참패를 겪고 난 뒤, 1964년 청년 보수단체인 YAF(Young Americans for Freedom), 1973년 헤리티지 재단, 1975년 케이토 연구소 등이 생겨나면서 부흥한다. 1980년 대통령에 당선된 레이건은 결코 보수의 '반짝 스타'가 아니었던 것이다. 밑바닥에서부터 다져진 보수의 체계적인 부활이 그를 영웅으로 만든 것이다. 

박종선 인문학 칼럼니스트

'보수주의자의 양심'을 번역한 박종선 인문학 칼럼니스트는 5일 펜앤드마이크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은 문제를 가장 먼저 짚었다. 그는 "보수주의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보수를 살린다는 것부터가 답답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도 보수주의라는 가치를 제대로 알리고 정치적으로 승리를 거두는 데 까지 16년이 걸렸는데 우리는 보수주의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가치보단, 매번 전략적으로 보수주의를 이용하려고만 한다"며 "장기적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책을 번역하기로 결심한 동기에 대해선 "이미 6, 7년 전에 번역을 끝냈지만, 올해는 자비를 들여서라도 출판하고 싶었다. 그러던 와중에 출판사 열아홉 대표와 운좋게 연락이 되어 출판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출판을 왜 하지 못했냐는 질문엔 "출판사를 찾아가도 발행을 해주겠다는 곳이 없었다"며 "이 시대에 보수주의자의 양심이라는 제목의 책을 누가 발간해줄까라는 생각도 들긴 했다"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보수 뿐만 아니라, 우리가 보통 말하는 보수와 진보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있어야 서로 발전한다"며 "우리나라의 교육은 전교조에 의해 사실상 한 쪽으로 치우쳐져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어느 한 쪽만 욕할 것이 아니다. 보수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보수를 이끌어 온 것은 60, 70년대 경제개발의 성공과 반공(反共)이 전부였을 뿐, 보수주의의 핵심 가치인 '개인의 자유'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가 쓴 '옮긴이의 글'을 인용하자면 그는 "이제라도 제로베이스에서 '보수주의란 무엇인가?'라고 진솔하게 물어야 한다. 한마디로 보수에 대한 싱크(think)가 절실하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바다 건너 미국의 다양한 싱크탱크(think tank)를 부러워하기도 한다"며 그 중 하나로 헤리티지 재단을 꼽았다. 헤리티지 재단은 보수주의의 대표적인 싱크탱크이다.

그는 "이 재단의 설립 멤버인 에드윈 퓰너(Edwin Feulner)는 1977년부터 2013년까지 무려 36년간 소장직을 맡았다"면서 "그는 두 권의 책, 베리 골드워터의 '보수주의자의 양심'과 러셀 커크의 '보수의 정신'이 자신을 보수주의 운동에 투신하도록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보수의 정신'이 학문적 사상서라면, '보수주의자의 양심'은 정치적 선언문"이라며 "오늘날 미국의 보수주의, 나아가 양당체제는 골드워터의 이 책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역자는 "우리는 역사적으로 자유에 대한 내면적 이해가 일천하다"며 "정서적 측면에서 자유보다는 평등 또는 질서 쪽으로 크게 기운 사회"라고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 우리는 국가가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국가가 모든 것을 해준다면 권력은 점점 비대해지고 사람들은 의존적인 존재가 되어, 결국 자유와 존엄성을 잃게 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 책이 번역되어 독자들에게 읽힌다면 한 가지 희망사항으로 "누군가가 보수주의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몇 분 이내로 이를 명확히 설명할 수 있는 정치인이나, 패널이 나왔으면 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따뜻한 보수'나 '중도'를 표방하며 정치적인 타협을 들고 나오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며 "그것이 '보수주의자의 양심'의 저자인 베리골드 워터가 말한 핵심 내용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홍준표 기자 junpyo@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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