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율 시민기자
김원율 시민기자

필자는 지금 싱가포르에 일시 체류하고 있다. 필자가 직장일로 싱가포르에서 근무하던 40년 전 보다 지금의 싱가포르는 더욱 더 번영과 평화를 구가하고 있다. 밤의 마리나 베이는 불야성을 이루고 있으며 찬란한 카페와 호화스러운 식당에는 삼삼오오 짝을 이룬 싱가포리안들이 모여 담소하며 인생을 즐기고 있다. 1977년 필자가 부임할 당시 이미 싱가포르는 한국의 국민소득 3배에 해당하는 3천불의 연 국민소득을 누리고 있었다.

필자는 오늘 아침 산책하면서 싱가포르의 에스플라나드 (Esplanade) 공원에서 우연히 충혼(忠魂) 기념비를 발견하였다. 이는 말레이 공산당(CPM; Communist Party of Malaya)과 이의 하부 조직이었던 공산당연합전선과 맞서 싸우다 죽거나 다친 8,000여명의 군민 희생자에게 바치는 기념비였다.

말레이 공산당은 말레이와 싱가포르를 공산화하기 위하여 1948년 무장 반란을 일으켜 1989년 12월 하디아이 평화협정(Haadyai Peace Agreement)에서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할 때까지 반항하였다. 공산주의자들의 봉기와 내란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예외가 없었다. 공산주의자를 격멸한 나라는 번영하였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꽃피웠으며 베트남, 캄보디아처럼 공산주의자들이 발호한 나라는 처참한 내란과 살육을 겪었다.

Esplanade Park에 있는 충혼 기념비
Esplanade Park에 있는 충혼 기념비

싱가포르의 이광요 수상은 세상에 알려진 반공주의자였다. 그는 철권통치를 자행하였다는 비난을 받았으나 이에 개의치 않고 공산주의자들은 영장없이 체포하여 무인도에 감금하는 강수를 두었다. 한때 마약범죄자의 온상이었던 싱가포르가 1965년 말레이에서 독립하여 번영하는 나라로 우뚝 선 이면에는 이광요 수상의 공산주의자에 대한 단호한 척결과 뛰어난 내치가 있었다. 한국에서 이러한 철권통치가 행해졌다면 명분과 이상론자들이 연일 거리를 메우고 독재타도를 외쳤을 것이다. 싱가포르는 그러하지 않았다. 이에는 중국인 특유의 실용성과 현실적인 사고, 이념에 대한 무관심이 작용하였다. 과거에 필자가 겪은 이야기를 쓰면서 싱가포르 인들의 실용적인 사고를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가 40년 전 싱가포르에서 근무 당시 현지의 전자상회에서 저렴한 오디오 세트를 구입한 적이 있다. 당시 상당 수 한국인들을 단골로 상대하였던 중국인 직원의 말이 아직도 필자의 귀에 생생하다. “Koreans are very brand conscious.” ‘브랜드 콘셔어스’란 이 친구 말은 당대 최고의 브랜드만을 고집하는 한국인의 브랜드 집착증을 은근히 비꼰 것이다. 직원이 보기에 음악이나 오디오에 대하여 그다지 조예가 깊어보이지도 않는 사람이 종이쪽지에 무언가를 적어 와서는 앰프하면 ‘맥킨토시’, LP 턴테이블은 ‘듀얼’, 그리고 스피커 하면 무엇 하는 식으로 꼭 그 브랜드만을 고집한다는 것이다.

이 직원은 맥킨토시는 진공관 시대의 앰프로서 지금으로서는 그 돈의 절반만 써도 더 나은 성능의 앰프를 살 수 있다고 설명해도 한국인은 막무가내로 그냥 맥킨토시를 고집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한국인들이 오디오에 대하여 상당한 수준의 지식이 있거나 음향에 관해 예민한 귀를 가진 게 아니라는 점이다. 당대 최고의 브랜드 오디오 세트를 갖고 있다고 허세를 부리기 위하여 헛돈을 쓰고 있는 셈이다.

한국인의 최신, 최고 브랜드에 대한 집착은 유별나다. 휴대폰도 최신 브랜드로 항시 갈아치우며 자동차도 실용적인 소형자동차는 발을 못 붙인다. 화장품 등의 외국 제품도 브랜드 출시 때 한국이 테스트 시장의 역할을 한다고 한다. 학력도 최고를 지향하여 국내에서는 S대, 미국에서는 하바드에 자식을 보내는 게 부모들 일생일대의 꿈이다.

그리고 이런 브랜드가 부정적으로 사용되면 반대세력을 숙청하는 낙인찍기의 작용을 하기도 한다. 친일파, 적폐세력, 국정농단 세력 등이 그것이다. 부정적인 의미의 브랜드 집착증은 성군(猩君) 문재인의 대에 와서 드디어 활짝 꽃을 피우고 있다. 브랜드딱지 붙이기에 능한 이 정부에서 ‘적폐세력’, ‘친일파’가 정적소탕 만능의 마패(馬牌)노릇을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빨갱이’ 운운 하는 사람은 친일파라는 논리를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에서 폈다. 한마디로 지렁이가 기어가다가 벌떡 일어서서 배꼽을 잡고 웃을 노릇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은 해외에서 총 한 방 쏜 적이 없으며, 지금 이 나라를 옥죄고 있는 것은 공산주의자, 빨갱이라고 해야 한다. ‘평화는 경제다’라고 문재인은 말했다. 조폭에게 상납해가면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동네 룸싸롱 업주같으면 ‘평화가 목구멍이다’라는 말을 함직하다. 핵무기를 머리에 이고 살면서 150조원의 경협자금을 북에 쏟아 붓겠다는 동네 룸싸롱 업주 비슷한 사람이 지금 대한민국을 이끌고 있다.

이른바 대동아 전쟁을 일으켰던 일본제국주의에 충성한 친일파는 지금 이 세상에 없다. 해방직전 나이 20에 일본천황에 충성을 맹세하고 황군(皇軍)에 입대했다 하더라도 지금은 100살이 된다. 포항종합제철은 박태준 회장과 친분을 쌓았던 신일본제철의 이나야마 요시히로 회장과 일본철강업체가 조직한 일본기술단의 적극적인 기술제공에 의하여 완공되었다. ‘칼 찬 일본 순사’나 거론하는 유아적 수준의 대일본관으로서는 꿈도 꾸지 못하였을 한일경협의 상징이요 박정희 대통령의 미래적 결단이었다.

평화, 촛불, 친일파, 적폐청산 같은 정치 브랜드에 집착하는 대통령이 지금 나라를 다스리고 있다. 언제나 대한민국은 친일파, 빨갱이, 촛불, 적폐 이야기를 입에 올리지 않고 싱가포르 사람들처럼 어느 집의 딤섬이 맛이 있다는 등 평범한 사람 사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살 수 있을까?

김원율 시민기자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