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블랙리스트' 김은경 前장관 구속영장 기각...법원, 前정부 인사 '무더기구속'과 이리 다른가?
'환경부 블랙리스트' 김은경 前장관 구속영장 기각...법원, 前정부 인사 '무더기구속'과 이리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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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연합뉴스 제공]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연합뉴스 제공]

'문재인 정권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문건'으로 수사를 받는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63)에 대한 구속영장이 26일 새벽 법원에서 기각됐다. 영장이 청구된 시점부터 청와대를 비롯한 여권(與圈)에서 사법부를 압박한 것이 주효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전 장관 영장 기각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 고위인사들에 대한 법원의 무더기 구속영장 발부와 비교할 때 심각한 형평성의 문제점을 알고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서울동부지법 박정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검찰이 김 전 장관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에 대해 "객관적인 물증이 다수 확보돼 있고 피의자가 이미 퇴직함으로써 관련자들과 접촉하기 쉽지 않게 된 점에 비춰 증거인멸이나 도주 우려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박 부장판사는 이날 새벽 1시 50분쯤 김 전 장관 영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며 "최순실 일파의 국정농단과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으로 인해 공공기관에 대한 인사 및 감찰권이 적절하게 행사되지 못해 방만한 운영과 기강 해이가 문제됐던 사정이 있다"며 "새로 조직된 정부가 해당 공공기관 운영을 정상화하기 위해 인사수요파악 등을 목적으로 사직의사를 확인하였다고 볼 여지도 있다"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사법처리에 대한 문제점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현 정권 장관의 영장청구를 심사한 판사가 소위 '최순실 국정농단'을 들먹인 것이다. 

박 부장판사는 이어 "(블랙리스트에 오른) 임원에 대한 복무감사 결과 비위사실이 드러나기도 한 사정에 비춰 혐의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김 전 장관의 위법성에 대한 인식이 다소 희박해 보이는 사정이 있다"라고도 말하며 김 전 장관을 두둔하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이날 영장이 기각됨에 따라 전날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치고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에서 대기하던 김 전 장관은 풀려나 귀가했다. 이에 따라 청와대로 수사를 확대하려던 검찰의 움직임에 제동이 걸렸다.

김 전 장관은 이날 오전 2시 33분께 구치소를 나와 산하기관 인사에 개입하지 않았는지, 윗선 개입이 없었는지 등 질문에 모두 답변하지 않았고 차에 올랐다.

앞서 검찰은 김 전 장관이 전임 정부에서 임명된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들에게 사표를 내라고 종용하고 후임자로 친정부 인사를 앉히려 한 것으로 보고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전 장관은 전 정권에서 임명한 한국환경공단 상임감사 김모씨에게 사표를 내라고 요구하고, 이에 김씨가 불응하자 이른바 '표적 감사'를 벌여 지난해 2월 전임 정부 인사를 ‘찍어내기’ 한 것으로 조사됐다.

아울러 김 전 장관은 김씨의 후임 상임감사를 선발하는 과정에서 언론사 출신인 친정부 인사 박모씨가 임명되도록 미리 박씨에게 자료를 제공하고, 박씨가 탈락하자 환경부 다른 산하기관이 출자한 회사 대표로 임명하도록 ‘낙하산’을 지시한 혐의도 받는다.

박씨는 청와대가 환경공단 상임감사 후임자로 내정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인물로, 지난해 7월 상임감사 자리에 지원했다가 탈락한 뒤 같은 해 9월 환경부 산하기관이 출자한 자원순환 전문업체 대표로 임명됐다.

검찰은 이 같은 과정이 김 전 장관 지시로 이뤄진 부당한 인사개입이라 보고 청와대 윗선이 개입했는지 수사 중이다. 반면 김 전 장관은 정당한 인사권을 행사했을 뿐이라며 혐의를 전면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두고 박 부장판사는 "혐의에 다툼의 여지가 있어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연합뉴스 제공]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연합뉴스 제공]

일각에선 구속영장이 발부되기 전 청와대가 발벗고 나서 사법부를 압박한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반응이다. 청와대는 블랙리스트 문제가 불거진 뒤 “환경부 감사는 적법한 감독권 행사이자 체크리스트”라고 주장했다. 김 전 장관의 영장이 청구된 지난 22일에는 “과거 정부 사례와 비교해 균형 있는 결정이 내려지길 기대한다”고 했다. 윤영찬 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도 이날 자신의 SNS에 “검찰은 과거에는 왜 권력기관을 동원한 노골적인 임기제 공무원의 축출이 ‘불법’이 아니었는지를 설명해야 할 것”이라며 김 전 장관의 행위가 ‘죄가 아니다’라는 식의 입장을 이어갔다.

박 부장판사의 영장기각 결정이 나온 뒤 정승윤 부산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대한민국 헌법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불구속 재판·수사'를 구현해야 한다"며 "그런데, 현실이 어디 그런가? 살아있는 권력에 법이 굽어있고, 공소시효 지나도 부관참시하는 대한민국 '사법'아닌가?"라고 질타했다.

정 교수는 "이런 사건에서 영장심문은 요란한 쇼일뿐 답은 미리 결정되어 있는 법"이라며 "아무리 그럴싸한 글로 포장을 해도, 본심은 둘 중 하나? "권력자 편이야" 아님 "무서워""라고 이번 영장기각을 비판했다. 

박선영 동국대 법학과 교수 역시 이날 자신의 SNS에 이번 영장기각에서 판사의 ‘위법성 인식이 희박해 보여서’라는 발언을 두고 “장관의 조건=법을 모르거나 무시하면 된다!”라는 제하의 글을 올렸다.

박 교수는 “김은경 전 환경부장관의 영장기각사유가 ‘위법성 인식이 희박해 보여서’라니, 법에 위배되는 줄 몰라서 블랙리스트 만들고 강제로 기관장 옷 벗기면 괜찮단 말이지?”라며 “그래서 똑 같은 일을 해도 김기춘, 조윤선은 법조인 출신이라 법을 잘 알았으니 구속감이고, 김은경은 늘 前-現직 대통령 근처에만 있었을뿐 법을 모르고 법 없이도 잘 살아온 사람이니 불구속이라면, 무참하게 사람을 죽이고도 법에 위배되는지 몰랐다면 불구속감이렸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러고도 (김 전 장관이)입으로는 재판부의 판단을 기다리겠다고?”라며 “법을 몰라야 장관되고 법을 몰라야 풀려나는 나라! 뭐 이런 나라가 다 있나?”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에 김 전 장관의 영장을 기각한 박 부장판사가 강성좌파 운동권 출신이라는 정황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8월 서울신문이 박 부장판사의 친구인 원용선 고양합동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와 인터뷰한 기사 '[인터뷰 플러스] "전관예우 관례 깨는 등 법조인 스스로 자정 노력해야"'에 따르면 박 부장판사가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활동을 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문장이 나온다. 

원 변호사는 서울신문 인터뷰에서 "지금 대통령 비서실장 하는 당시 전대협 3기 임종석 총학생회장에게 학생회 사업을 인수인계하느라 학교에 남아 후배들을 지도하고 노동운동을 위한 준비 기간을 통해 동료들과 울산으로 내려갔죠. 동료 중에 지금은 의정부 지방법원에 있는 박정길 부장판사가 있어요"라며 "그 친구도 고생 많이 했는데 아마 판사가 아닌 변호사가 되었다면 지금도 함께 일하지 않을까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한양대 출신인 박 부장판사는 실제로 2017년 2월부터 의정부지방법원 부장판사로 근무했고 올해 2월부터 서울동부지법으로 근무지를 옮겼다.

행정부-사법부에 이어 언론계까지 잡아 가둔 前정부 인사들 

사법부의 김 전 장관 영장 기각은 이전 정부 인사들을 무더기로 구속한 것과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후 사법부는 소위 적폐청산 칼날을 휘두르는 정권에 장단을 맞추며 이명박(78)·박근혜(67) 전 대통령을 구속시켰다. 

이번 정권에 의해 구속된 전임 정부 인사들로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우병우 전 민정수석,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 김종 전 문체부 2차관 등이다. 

사법부에선 대법원장 출신 최초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71)이 구속 기소됐고, 언론계에선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가 JTBC의 '태블릿PC 조작'의혹을 제기하다 손석희 JTBC사장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김 전 장관을 ‘블랙리스트 제작’의 몸통이 아닌 실행자로 보고 수사를 ‘윗선’인 청와대로 확대 중이었다. 검찰은 김 전 장관의 구속영장에 신미숙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을 공범으로 적었다. 검찰이 지난해 12월 말부터 이 사건을 수사하며 환경부 직원들로부터 “신미숙 비서관이 산하기관 임원 인사에 처음부터 끝까지 관여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전 장관의 영장 기각으로 수사 확대가 주춤하게 됐다.

검찰 관계자는 “보강수사를 거쳐 김 전 장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 여부를 검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조준경 기자 calebcao@pennmike.com

다음은 박정길 판사가 밝힌 구속영장 기각 사유 전문(全文)

<기각>

-일괄사직서 징구 및 표적감사 관련 혐의는, 최순실 일파의 국정농단과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으로 인해 공공기관에 대한 인사 및 감찰권이 적절하게 행사되지 못하여 방만한 운영과 기강 해이가 문제되었던 사정, 새로 조직된 정부가 해당 공공기관 운영을 정상화하기 위해 인사수요파악 등을 목적으로 사직의사를 확인하였다고 볼 여지도 있는 사정, 해당 임원에 대한 복무감사 결과 비위사실이 드러나기도 한 사정에 비추어, 이 부분 혐의는 다툼의 여지가 있어 피고인에게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음.

-임원추천위원회 관련 혐의는, 공공기관의 장이나 임원들의 임명에 관한 관련법령의 해당 규정과는 달리 그들에 관한 최종 임명권, 제청권을 가진 대통령 또는 관련 부처의 장을 보좌하기 위해 청와대와 관련 부처 공무원들이 임원추천위원회 단계에서 후보자를 협의하거나 내정하던 관행이 법령 제정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장시간 있었던 것으로 보여, 피의자에게 직권을 남용하여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한다는 구성요건에 대한 고의나 위법성 인식이 다소 희박해 보이는 사정이 있음(대법원 1993.7.26자 92모29 판결 참조).

-객관적인 물증이 다수 확보되어 있고 피의자가 이미 퇴직함으로써 관련자들과는 접촉하기가 쉽지 않게 된 점에 비추어,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염려에 대한 소명이 부족함.

2019.3.26 판사 박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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