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네임 '벌레소년' "나는 무명의 개인 뮤지션"
평창 올림픽 비판한 랩송 '평창유감' 타고 유명세
“평창올림픽, 좋은 소재라고 생각…‘평창유감’ 제목 머릿속 떠나지 않았다”
‘일베’ 회원인 것 알려졌지만 ‘2030’은 여전히 지지

‘평창 유감’이라는 제목의 랩 동영상은 지난 27일 ‘벌레소년’이라는 닉네임의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뒤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퍼졌다. 업로드 하루 만에 조회수 10만을 돌파했다. PenN이 28일 오전 이 동영상 내용을 첫 보도한 뒤 더 '유명세'를 타면서 30일에는 하루종일 대형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상위 순위권에 들 정도로 돌풍을 일으켰다. 31일 오전 현재는 조회수가 50만을 넘었다.

‘평창 유감’은 평창올림픽을 보는 젊은 세대의 반북(反北) 정서를 재치 있게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사에는 “메달권 아니면 북한이 먼저, 공정함과 희망 따윈 니들에게 없어”, “지 맘대로 단일팀 강요, 과정의 눈물과 땀은 거 내 알 바는 아니요”, “흘린 땀보단, 북한 출신이 더 대접받는 사회로구나”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 동영상이 폭발적인 화제를 불러일으키면서 곡을 만든 닉네임 '벌레소년'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일각에서는 최근 명예훼손 등에 대해 이른바 ‘무관용적 법적 대응’ 방침을 정한 여당이 벌레소년을 고소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왔다. '평창유감'을 만든 닉네임 '벌레소년'은 30일 PenN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자신을 '무명 개인 뮤지션'이라고 소개했다. 구체적인 신원을 밝힐 순 없지만 여당의 움직임에 대해 "이 말만은 꼭 해야겠다"면서 “니들이 고소해도 난 이 마이크를 놓을 생각이 없다”고 단호하게 밝혔다.

-몇 살인지, 또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다
“나이는 비밀이다. 미성년자보다는 많고, 노인보단 적은 나이다. 신분은 '무명의 개인 뮤지션'이라고만 하겠다.”

-화제가 되고 있는 ‘평창유감’을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탄핵 이후에 너무 급하게 지도자가 선출되다보니, 충분한 검증이 이뤄지지 않은, 어설픈 선거가 돼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어설픈 외교나 경제 정책, 대책 없는 예산 정책 등으로 이미 확인이 됐다. 이런 문제들의 원인이 운동권 좌파들의 그릇된 국가관에 있다고 보고, 이에 대해 비판하는 음악을 만들어야지 하는 생각은 계속 했었는데, 음악으로 만들기 좋은 소재가 올림픽 단일팀 과정에서 나왔다고 생각했다. 원래 다른 노래를 만들고 있었는데 하루 종일 ‘평창 유감’이라는 제목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결국 이 노래부터 만들어야 다른 작업도 하겠구나 싶어서 3일 만에 만들었다.”

-원래 정치에 관심이 많았나?
“역사를 전공해서 정치에 대해 토론하는 경우가 많았다. 인문학에도 관심이 있었다. 소위 ‘광우병’ 거짓선동 때 좌파 진영에 대한 쇼크를 받고 정치에 강한 관심을 갖게 됐다. 종편 방송과 일베(일간베스트) 사이트를 통해 정치적 사안에 대해 접촉할 기회가 많았던 것도 한 몫 했다. 무엇보다 세월호 단식 투쟁을 계기로 정치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당시 ‘국회의원은 국회로 돌아가라’는 메시지를 들고 통합진보당 막사 앞에서 시작했던 1인 치킨 피자 시위가 커져서 일베 시위로 이어졌었다. 그런데 해당 경위는 싹 다 제거 된 채 보도된 뉴스를 보게 됐다. 인터뷰 요청도 한 번 없었다. 정치적 유불리가 거짓을 만들고 그것이 직접적으로 내 삶을 파고든 일이었다.”

-앞으로도 익명으로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랩송 제작을 계속할 생각인가
“무명 개인 뮤지션의 입장에서는 현재 상황이 당황스럽고 어려운 문제처럼 느껴진다. (이런 큰 관심은) 1회성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연속성이 없는 상황에서의 노출은 안 그래도 희망 없는 내 앞날에 별로 도움이 안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원해서 신비주의가 된 게 아니라, 정치음악이라는 이질감, 메신저를 공격하는 소위 ‘신상 털기’의 공포 앞에서 강요된 신비주의라는 뜻이다”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
“공부도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음악을 제일 못했다. 그래서 시작했다. ‘내가 제일 못하는 걸 도전해서 점점 발전해가자. 내 스스로 나도 조금씩 나아져서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걸 느끼면서 살아보자’는 생각이었다. 근데 돌아보니 그냥 자기가 잘하는 걸 하는 게 제일 나은 거였구나를 깨닫게 됐다. (웃음)”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내 손가락과 건만반 나오는 인터넷 스트리밍 방송을 하고 싶다. 시청자들에게 가사와 음악에 대한 아이디어도 받으면서 같이 음악을 만드는 개인방송을 하는 거다. 물론 아직 그냥 꿈일 뿐이다.

일부 언론 매체에서는 ‘벌레소년’이 인터넷 사이트 ‘일간베스트(일베)’의 회원이라는 점에 주목해 자극적 보도를 하기도 했다.

YTN은 ‘벌레소년의 정체’라는 제목의 보도에서 “벌레소년이 극우 성향의 인터넷 사이트 ‘일간베스트 저장소’의 회원이라고 밝혔다”며 “일간베스트 저장소는 각종 성범죄의 뿌리가 되거나 정치인들을 조롱하는 행위 등으로 국민 청원까지 생길 정도로 인식이 좋지 못한 온라인 커뮤니티”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평창유감'이 확산되는 의미를 평가절하하려는 이러한 보도에도 불구하고 이 동영상에 대한 2030의 지지는 계속되고 있다. 사람들은 오히려 “일베가 민심을 대변해주네”, “일베가 중요하냐, 그 속의 내용이 중요하냐. 누가 했으면 봐주고 아니면 아니고의 기사는 뭐냐”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벌레소년'은 처음부터 자신이 일간베스트 회원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오히려 자진해서 ‘나는 일베충’(일간베스트의 회원을 조롱해 낮춰 부르는 말)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그는 “벌레소년이란 이름으로 발매한 음반이 모두 중지당하고 아예 발매 금지까지 됐다. 여전히 음반계는 정치 음악 발매에 제약을 두고 검열을 하는 게 현실”이라며 “그래도 앞으로 계속 음악을 할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언젠가 ‘벌레소년이란 이름으로 당당하게 얼굴을 드러내도 될 때까지’ 마이크를 놓지 않겠다는 것이다.

한편 이 청년은 이날 오전 시사잡지 미래한국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 노래가 이렇게 알려지고 공유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면서 "가사는 단순히 올림픽단일팀 문제만이 아닌 반복된 현 정부의 지나친 개입은 결국 운동권 좌파들의 잘못된 국가관과 민주주의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결론에서 적절히 깊이를 조절하는 쪽에 주안점을 두었다"고 말했다.

이슬기 기자 s.l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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