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경협특위 답변서 "美는 핵동결 요구" 엉뚱한 답변 반복後 외교부 황급히 해명
하노이회담 전후 美 공식입장은 '北 핵-미사일-대량살상무기-생화학무기 폐기' 일관돼
외교부 "美 완전한비핵화 합의및 동결→폐기로 갈 로드맵 요구했단 것" 사후설명
康, 미세먼지 해결방안 묻자 "우리 강토서 발생한게 中쪽 날아가기도" 中책임론 물타기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지난달 말 결렬된 제2차 미북정상회담과 관련해 21일 "미국이 북한에 요구했던 것은 핵 폐기가 아닌 동결", "이번에 미국의 목표는 동결이었다"고 거듭 단언했다가 실언(失言) 논란을 자초했다. 

미국이 북핵 동결을 목표로 했다는 듯한 취지로 해석되는 발언이어서, 미북간 영변 외 핵시설 폐기 빅딜(Big deal) 논쟁과 사실관계상으로도 부합하지 않아 보인다. 외교부가 당일 황급히 장관의 발언 취지를 정정하고 나서는 촌극도 벌어졌다.

하루 전인 20일에는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북한의 선제공격에 의한 천안함 폭침 및 연평해전을 "불미스러운 충돌"로 표현했다가 '군(軍)출신 국방장관의 발언으로서 극히 부적절하다'는 비난을 산 가운데 현 정권 외교·안보 책임자들이 '실언 릴레이'를 한 셈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가장 왼쪽)이 3월21일 오전부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남북경제협력특위 전체회의에서 위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강경화 장관의 문제성 발언은 이날 오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남북경제협력특위 전체회의에서 나왔다.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은 '미국의 비핵화 개념과 문재인 정부의 비핵화 개념이 같은지'를 추궁하며 "하노이 정상회담 때 미국은 영변 플러스 북한의 핵 물질·대량살상무기(WMD)·생화학무기의 완전한 폐기를 (비핵화의)조건으로 내걸어 이 부분에서 (미북간) 균열이 생겨 결렬된 것 아니냐"고 질의했다. 

이에 강 장관은 "미국이 이번에 요구했던 것은 폐기가 아니고 동결이었다"며 "비핵화라는 목표가 있고 거기에 어떻게 도달하느냐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고 답했다.

추 의원이 재차 "(미측의 요구사항을) 완전한 핵 폐기가 아닌 동결이라고 하셨나. 외교부 장관이 이것까지 헷갈리면 안 된다"고 따지자, 강 장관은 "아까 말씀하신 게 '미국 입장이 무엇이었느냐, 폐기였다'고 하셨길래 이번에 미국의 목표는 동결이었다고 말씀드렸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존 볼튼 백악관 국가안보(NSC)보좌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등 미 수뇌부는 "북한은 영변 핵 시설 뿐 아니라 생화학무기와 WMD 전반을 폐기해야 한다"고 거듭 밝혀온 바 있다.

2차 미북회담 전은 물론 이후에도 북한에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를 촉구해온 미국 입장을 핵 폐기가 아닌 핵 동결로 규정할 수 있는 근거는 희박한 상황이다. 오히려 이젠 핵 폐기를 뛰어넘는 WMD 전면폐기로까지 확대된 상태다. 
  
이와 관련 외교부가 오후 중 강 장관 발언 해명에 나섰다. 외교부 당국자는 브리핑을 통해 "미국은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합의(end state)와 WMD·미사일 프로그램의 동결, 동결에서 완전한 비핵화로 가기 위한 로드맵을 요구했다"며 "자동차가 전진하다가 바로 후진할 수 없고, 멈춰 섰다가(동결) 뒤로(폐기) 가야되지 않느냐. 그런 의미로 말씀하신 것"이라고 했다.

복수 언론에 따르면 한 외교 소식통도 "미국이 비핵화의 정의에 대한 합의와 모든 무기 프로그램의 동결과 함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로드맵 작성 등을 모두 요구했다"며 "2차 정상회담에서 핵 동결만 목표로 한건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날 강 장관은 현 정권이 가진 북한 비핵화 개념에 대해서는 "1992년 (남·북) 비핵화 공동 선언에 담겨 있는 개념"이라는 견해를 내놨다. 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핵 폐기'라는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그는 "북한의 '조선반도 비핵화'와 우리 정부의 비핵화 개념이 동일한가" "미국의 비핵화 개념, 한·미·북의 개념이 같은가" 등 질문에는 "비핵화 개념에 있어서는 같다고 생각을 한다"고 모호한 답변을 했다. 이어 "비핵화 개념보다도 북한의 구체적인 행동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한 과업이라고 생각된다"고 구체적인 답변을 피해갔다.

지난 2017년 4월 더불어민주당 제19대 대통령후보 시절 문재인 대통령이 미세먼지 저감 공약 발표 과정에서 "할 수만 있다면 아이들 대신 미세먼지를 다 마시고 싶은 심정"이라고 발언한 모습.(사진=MBC 방송화면 캡처)

한편 강 장관은 중국발(發) 미세먼지 책임론에 '한국에서도 미세먼지가 중국 측으로 날아간다'는 논리로 물타기에 나서 '중국 대변인이냐'는 빈축도 사고 있다. 그는 특위에서 송석준 한국당 의원의 '미세먼지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하느냐'는 질의에 "중국에서 발생한 미세먼지가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계절에 따라서는 우리 강토 내에서 발생하는 게 중국 쪽으로 날아가기도 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중국이 한국에게 주는 영향과 한국이 중국에 주는 영향이 각각 어느 정도라고 보는가'라는 질문에는 "계절적으로 차이가 있다. 제가 정확한 수치는 가지고 있지 않다"며 구체적인 답변을 피해갔다.

다만 송 의원이 '한국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한 거죠?'라고 추궁하자 강 장관은 "심각한 상황"이라고 답했다. 강 장관은 주변국과의 미세먼지 해결 공조방안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일본 측과 니캡이라는 다자기구를 통해 노력하고 있고 외교부 차원에서 기후변화협력공동위도 있다"고 했다.

'기구를 만들어봐야 달라진 게 없지 않냐'는 지적이 나오자 강 장관은 "미세먼지는 장기적인 치유법이 필요한 부분이지만 협력 또는 협력의 대화의 장이 없으면 안된다. 그래서 양자, 3자, 다자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부연했다. 중국 측의 책임 부정에는 어떤 계획을 갖고 있냐는 질문에도 "다자기구 논의가 중요하다"고만 답했다.   
  
강 장관의 이날 발언은 "한국 미세먼지도 중국에 영향을 준다"는 중국 측 입장과 얼핏 비슷하다는 점에서 논란이 일었다. 중국 생태환경부는 최근 "중국도 (한국에) 영향을 줄 수 있고, 특정 조건과 지역에서는 한국 오염물질도 중국 대기질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상호책임론을 들고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일 중국발 미세먼지 관련 '한중 인공강우 협의 추진' 등을 지시하면서, "중국 쪽에서는 우리 먼지가 중국 상하이 쪽으로 간다고 주장하는데 서해 상공에서 인공강우를 하면 중국 쪽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당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전한 바 있다. 대통령이 구태여 '미세먼지 가해자'로 인식되고 있는 중국 측 입장을 거론한 데 이어, 우리나라 외교부 장관이 미세먼지 책임 소재를 흐리는 발언을 쏟아낸 셈이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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