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삼의 현대사 추적] 좌익·전체주의 추종세력들의 선전선동 수법 이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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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9.03.22 09:59:48
  • 최종수정 2019.03.23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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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이란 공산주의와 파시즘 등이 대중을 군중심리로 몰아가고 우민화시켜 자신들의 정책이나 생각, 방법이나 주장을 교묘히 현실화하고 거짓을 사실로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기술이다. 수많은 거짓에 한 가지 진실을 보태 대중을 자신들이 의도한 방향으로 몰아가는 사악한 전술이다. 좌익들은 “선동은 강력한 정치교육의 수단이자 대중투쟁의 뇌관”이라고 부르짖는다. 좌익들의 선전선동술에 넘어가 또 다시 속는 것은 졸음운전 하다가 죽는 것이나 비슷하다.
2002년 월드컵 당시 '붉은 악마'들의 거리 공연. 한국인들의 내면에 잠재된 폭발적 에너지는 선순환하면 애국심의 용광로가 될 수 있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면 사회 질서를 단숨에 뒤엎는 파시즘적 집단 광기로 돌변한다.(연합뉴스 제공)
2002년 월드컵 당시 '붉은 악마'들의 거리 공연. 한국인들의 내면에 잠재된 폭발적 에너지는 선순환하면 애국심의 용광로가 될 수 있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면 사회 질서를 단숨에 뒤엎는 파시즘적 집단 광기로 돌변한다.(연합뉴스 제공)

기자는 얼마 전 선전선동 관련 칼럼을 발표한 적이 있다. 중차대한 시기에 또 다시 비슷한 주제의 글을 올리는 이유는, 이 문제가 좌우 이념대결에서 무엇보다 핵심 이슈로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왜 그런지 한국 사회를 파국으로 몰아넣은 사건·사고들을 열거해 보자.
세월호 침몰, 광우병 파동, 4대강 사업, 천안함 폭침, 여중생 장갑차 사망…. 급기야 최순실 푸닥거리에 껌벅 속아 넘어간 필부필부(匹夫匹婦)들이 횃불·촛불·단두대 끌고 광화문에 몰려나와 난장을 벌였다. 촛불에 에워싸인 채 벌인 가수들의 찬양 공연과 횃불시위는 이 나라 문화·지성·양심·정의·가치관의 파탄을 알리는 조종(弔鐘)이었다.
이 모든 사건·사고의 확대재생산 루트를 분석해 보면 좌익·친북·종북·전체주의 추종세력들의 선전선동으로 인해 거짓·사기·조작·기만의 총체적 버라이어티 쇼가 펼쳐졌으며, 결국 선전선동에 판판이 속아 넘어가 나라가 결단났음을 일목요연하게 이해할 수 있다.

국가자살의 길

한두 번도 아니고 사소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나라 전체가 뒤집어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으니 뭐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다. 희한한 것은 이 웃기지도 않는 선전선동 사기극에 거의 모든 정치세력, 조중동을 비롯한 공영방송은 물론, 종편에 이르는 기레기(기자 쓰레기) 언론들이 동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급기야 검찰과 경찰이 합류했고, 마지막 보루였던 사법부마저 쓰레기 대열에 가세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사건·사고가 반복될 때마다 반미, 종북, 과거로의 퇴행, 자학사관 확산, 헌정질서 파괴 현상이 가속화되어 황홀한 변태적 국가자살 시스템이 완성되었다. 그 화려한 난장의 총체적 클라이막스가 문재인 정권 출범이다.
거의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는 좌파·좌익·친북·종북·전체주의 추종세력들의 난동을 체험하면서 그제야 “이거 뭔가 잘못된 거 아닌가?” 하고 자탄해 봤자 이미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다. 어찌된 일인지 요즘은 잘못된 투표행위를 자탄하며 손가락 끊겠다는 사람조차 보이질 않는다. 손가락을 너무 자주 잘라내다 보니 더 이상 자를 손가락이 남아 있지 않아서인가? 
한국은 단 기간에 농업사회에서 고도 정보화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모든 가치관이 뒤죽박죽이 되어 카오스의 상태가 정착된 만큼 정치학·사회학·심리학·철학 전공자들의 연구대상으로는 지구상에서 이보다 더 좋은 모델국을 찾기 힘들 정도다. 선전선동과 관련하여 조망한다면, 이미 우리 사회에서는 여러 차례 파시즘적 광기의 징후가 선을 보인 바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빨갱이가 되자!(Be the Reds)’라는 구호가 적힌 붉은 티셔츠 입고 거리로 몰려나와 “대한민국”을 외치는 수백만 한국인들을 보면서 기자는 가슴이 섬뜩했다. 아니 반공 이데올로기의 첨병에 서 있는 이 나라에서 전 국민이 “빨갱이가 되자”고 외치다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가만 들여다보니 우리의 잠재력 속에 내재된 폭발적 에너지는 양날의 칼이었다. 즉 선순환 모드로 작동할 경우 뜨거운 애국심의 용광로가 될 수 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의 금 모으기나 태안 앞바다 유조선 침몰 사건 당시 기름 제거 자원봉사의 물결이 그 사례다. 하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작동할 경우 기존 사회 질서를 단숨에 파괴하는 파시즘적 집단 광기로 돌변할 수도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그 불길함은 광우병 사태, 세월호 침몰, 천안함 폭침, 박근혜 탄핵 과정에서 적나라한 현실로 나타탔다. 

사악한 언어 프레임

조선 500년 동안 양반-상놈의 계급구조에 찌들어 민심이 뒤틀려버린 이 민족은 교조화 된 평등사상을 유토피아로 삼았다. 해방 후 반상(班常)의 신분구조가 철저히 파괴되면서 과거의 노비가 사장이 될 수도 있고, 과거의 양반이 거지가 될 수도 있는 세상이 왔다. 누구나 노력하면 신분상승의 사다리가 보장되어 있는 지구상의 낙원 대한민국이 펼쳐진 것이다.
하지만 계급이 철폐된 사회의 한구석에서 독버섯처럼 피어난 것이 평등사상이다. 누구나 고르게 살아야 한다는 유토피아적 평등론이 사회의 정의인 것처럼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유토피아적 평등론을 위해 범국가적 차원에서 경제민주화, 동반성장론, 대기업 경제력 규제, 중소기업 보호 및 지원, 수도권 정비법을 통해 수도권 발전에 대한 극단적 규제가 시행되고 있다.
규제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이미지 조작이 필요하다. 가진 자들에 대한 부도덕성 및 범죄성 부각을 통한 악(惡)의 이미지 부여, 못 가진 자들에 대한 동정 및 선(善)한 이미지 덧씌우기가 좌파들이 장악한 문화 권력의 힘에 의해 조직적으로 자행되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헬 조선, 금 수저, 흙 수저 같은 계급 갈등을 부추기는 선동적 용어들이 대대적으로 창조되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횡행하는 좌익·전체주의 추종세력들의 언어 프레임은 소름 끼치도록 무섭다. 우리나라는 지금 한민족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라고 해도 좋을 만한 시대를 살고 있다. 역대 한반도에 존재했던 민족국가 중에서 65만 대군을 보유한 사례가 언제 있었던가?
올해 들어 한국이 세계 7번째로 30-50클럽(인구 5000만, 1인당 소득 3만 달러)에 가입했다. 초근목피, 절량농가, 구호곡 배급, 강제적으로 시행된 혼식·분식을 기억하시는가? 전 국민이 절망적인 굶주림에서 벗어나 이제는 상당수가 다이어트를 위해 엄청난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사회가 되었다. 전 세계 어딜 가나 한국 기업과 한국 상품, 한국 문화가 존재하는 글로벌 확장성을 단군 개국 이래 단 한 번이라도 경험한 적이 있는가?
하버드대 박사 출신인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는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이라는 저서에서 한국은 이미 선진국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자신의 나라를 선진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질타한다. 거의 전 국민이 “뭐 30-50클럽? 한국이 선진국? 웃기고 자빠졌네”라고 자학·자책·자탄하기 바쁘다. 그저 ‘헬 조선’이 딱 어울리는 수준의 족속들이다.
‘헬 조선’이란 용어의 논리 구조 속에는 현재의 대한민국을 불공평한 사회라고 강렬하게 인식시키는 계급투쟁적 논리가 숨어 있다. 공안 검사 출신인 고영주 변호사는 ‘헬 조선’ 같은 용어를 등장시켜 한국이 정말 사람 살기 어려운 나라라고 각인시키는 작업은 의식화 작업의 제1단계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것은 반(反)국가세력들의 고도화 된 언어 조작 선동이다. 반국가세력들은 우리 사회의 통합이 아니라 분열, 가치관 혼란을 유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용어 혼란전술을 구사한다.
어떤 이들은 ‘세계 정치사는 선전선동의 역사’라고 분석할 만큼, 세계 정치사와 계급투쟁사에서 선전선동은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지배계급과 지배자는 자신의 지배를 합리화하고 저항을 차단하기 위해 다양한 선전선동을 개발하고, 그것을 실행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레닌, “선동은 대중을 흥분시키는 특정한 문제의 설명과 이용”

이에 맞선 저항자들도 그 나름의 선전선동을 개발하여 투쟁의 무기로 사용한다. 선전선동은 정치와 계급투쟁의 주요 도구다. 때문에 선전선동은 결코 정치와 떼려야 뗄 수 없다. 선전선동을 정치와 투쟁에 적극 활용한 레닌이나 스탈린, 히틀러, 마오쩌둥(毛澤東)의 성공사례를 보면 선전선동이 얼마나 거대한 위력을 발휘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좌익세력이나 공산주의자, 전체주의 신봉자들은 선전선동을 그 어떤 가치보다 최우선으로 중요시한다. 왜냐면 좌익·공산주의·전체주의는 거짓말을 기본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기만하기 위해 그들은 자내깨나 선전선동의 아이디어를 짜내기 위해 날을 지샌다.
공산국가에서는 선전선동을 지고지선의 무기로 애지중지한다. 때문에 대부분의 공산국가에서는 선전선동부를 국가 주요부서로 운영하고 있다. 자국에서 가장 우수한 인력을 최우선으로 선전선동부서에 배치하여 선동문구를 만들고, 새로운 방법론을 연구하느라 막대한 돈을 퍼붓는다.
공산주의자들의 선전선동 수법은 집요하고 치밀하며 사이비 과학을 바탕으로 한 종교적 차원으로 승화되어 있다. 레닌을 비롯한 골수 빨갱이들의 수법을 소개하면, 그들은 “민족의 영광”을 외치며 전쟁을 해야 한다고 아우성친다. 막상 짜르 정부가 전쟁에 돌입하자 “반전(反戰) 평화”를 외치며 “전쟁으로 백성의 삶을 파탄시킨 짜르 권력을 타도하라”고 선동한다.
이처럼 공산주의자들의 선전선동술과 전략 전술은 지능적이고 사악하다. 대중들은 이러한 선동에 저도 모르게 속아 넘어가 부화뇌동한다. 중우(衆愚)정치의 본질, 민중주의 포퓰리즘의 본성을 가장 먼저 정확하게 꿰뚫어 본 집단이 공산주의자, 전체주의자, 나치 히틀러 일당이고, 이를 그대로 전수받은 북한, 그리고 북한을 추종하는 남한 내의 좌익·종북 세력들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횡행하는 좌익·친북·종북·전체주의 추종세력들의 선전선동 수법을 이해하려면 레닌과 히틀러, 괴벨스의 선전선동술을 이해하는 것이 첩경이다. 선전·선동을 뜻하는 러시아어인 프로파간다(선전)·아기타치야(선동)란 ‘정책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촉구하는 것’이란 의미로 통용된다.
레닌은 선전선동을 체계적으로 공부한 후 선동이란 “대중을 흥분시키는 특정한 문제의 설명과 이용”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러일전쟁 때 반전 평화운동을 짜르 체제를 타도하는 혁명의 중요한 동력으로 삼았다. 그런 레닌에게 있어 잉크는 독가스요, 펜은 기관총, 신문은 수류탄에 해당했다.
레닌은 전문적으로 선전선동을 작업하기 위해 ‘이스크라(Iskra)’라는 신문을 발간하면서 언론의 중요성에 눈을 떴다. 1901년 자신이 쓴 공산당 조직론 관련 서적인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레닌은 신문이 집단적 선동자이자 조직자라며 전 러시아적 정치신문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공산주의와 나치의 국가사회주의는 물과 기름 같은 원수였음에도 불구하고 히틀러는 레닌의 선전선동술을 훌륭하게 계승 발전시켰다. 히틀러는 자신의 저서 『나의 투쟁』에서 의도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선전선동의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여 제시했다. 

▲추상적인 관념 따위는 피하고 감정에 호소한다.
▲끊임없이 몇 마디 정해진 문구를 반복한다. 문구는 객관적이지 않아도 된다. 논의의 한 측면만을 기술하여 적을 격렬히 비난하되, 항상 특정한 적을 하나씩 정해야 한다.
▲언어적, 시각적으로 끊임없이 반복한다. 먼저 베르사이유 조약을 체결했던 배신자, 다음으로 공산주의자, 그 다음에는 유태인이라는 흐름으로 특정한 속죄양을 정해서 비난하고 낙인찍는다는 원칙을 일관되게 수행한다.
▲선전선동을 통해 공포감, 주저, 곤혹 등을 느끼게 하는 방법으로 적의 사기를 누르되, 단일한 목표를 향해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선전을 실시한다.
▲전체 중에서 사소한 일부분의 잘못이나 실수를 끄집어내 그것을 무기로 전체를 다 부정하고, 잘못된 것이라고 뒤집어씌운다.

선동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독재의 악마” 괴벨스

히틀러에게 대중은 머리 회전이 느린 어리석은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때문에 가장 단순한 개념을 1000번은 되풀이해야 대중은 그 개념을 기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또 대중은 애원하는 자보다는 힘을 앞세워 지배하는 자를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대중의 지배’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는 휘황한 선전선동으로 대중을 현혹하여 눈앞의 현실을 전혀 다른 의미로 보이도록 만드는 데 천재였다. 예를 들면 히틀러의 필터를 거치면 독재는 ‘더욱 고차원적인 민주주의’가 되고, 전쟁 준비는 ‘평화의 확보’가 된다. 게다가 그의 선전선동은 늘 가장 머리가 나쁜 사람의 이해력에 맞춰 실시되었다.
게다가 그는 철저하게 힘, 즉 무력의 의 신봉자였다. 때문에 그의 입장에선 “어떤 경제 정책도 칼 없이는 불가능하다. 어떤 공업화도 권력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었다. 한없는 위엄을 나타내기 위해 나치 문양과 깃발, 독일 군복은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휴고 보스가 디자인했다. 
히틀러의 선전선동 공작의 핵심은 증오·파괴·살해 등 쉽고 거친 용어나 단순한 개념을 반복 사용하여 매몰차게 공격하는 것이다. 공격은 지극히 직접적이며 간명하고 노골적으로 행한다. 나치는 공격적이며 통렬한 방법, 도발적인 스타일로 짧고 격렬한 말을 가장 지성이 낮은 계층에게 퍼뜨렸다. 논점은 과도하게 간략화하고 현실은 무시되었다. 모든 것은 감정적인 말로 표현되었고, 압도할 만한 비판으로 듣는 사람이 제풀에 꺾여 반론하는 것 자체가 곤란하도록 만들었다.
히틀러가 선전선동을 적극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중용한 인물이 국가대중계몽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였다. 유럽의 의식 있는 지식인들은 히틀러의 집권을 도운 괴벨스를 “독재의 악마”라고 평했다. 그는 선전선동을 예술적 경지로 승화시킨 인물이다. 즉 “매일매시간 대중의 심장에 귀를 기울여 그 고동소리를 듣고, 그 고동소리에 맞춰 대책을 세우는” 대중심리의 예술가라는 것이다.
괴벨스는 선전선동에 당시로서는 첨단 미디어를 동원했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이 대중 선동을 위한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꿰뚫어 본 것이다. 이를 위해 독일 국민에게 라디오를 널리 보급했고, 텔레비전을 통해 정치 선전을 강화했다. 정기적인 텔레비전 방송으로 선전선동을 한 것은 괴벨스가 세계 최초였다. 이런 이유 때문에 미디어를 통한 대중 선동을 논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인물이 괴벨스다.
괴벨스가 라디오를 통해 2차 세계대전의 전황을 알린 내용은 100% 거짓말이었다. 때문에 그의 선전 방송을 들은 독일 국민들은 패전으로 망조가 든 상황에서도 승리를 확신했다.
괴벨스의 선전선동과 관련한 핵심은 언어를 잘 활용할 경우 어떤 관념에 다른 옷을 입힘으로써 변화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논리다. 즉 ‘네모꼴이 실제는 원’이라는 것을 논증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괴벨스는 주장했다. 이를 위해 반복적으로 필요한 것이 거짓말이었다.
괴벨스 선동정치의 핵심은 거짓말이다. 그는 위대한 거짓말 숭배론자였다. 그의 어록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거짓말이다. ‘거짓말’에 대한 괴벨스의 대표적인 어록을 몇 가지 소개하면 이렇다.

▲거짓말도 계속 되풀이하면 사람들은 처음에는 부정하고, 나중에는 의심하지만, 결국은 믿게 된다.
▲대중은 작은 거짓말보다 큰 거짓말에 잘 속아 넘어간다.
▲거짓말도 100번 말하면 진실이 된다.
▲선동(거짓말)은 단 한 문장으로 가능하지만, 이것을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1만 2500km 도주를 ‘대장정’으로 미화한 마오쩌둥

괴벨스의 논리에 의하면 선전에는 분명한 목표가 있다. 그 목표를 빈틈없이 감춰 그 목적을 달성한 인물이 선동을 당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거짓말이다. 따라서 거짓말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100%의 거짓말보다는 99%의 거짓과 1%의 진실을 적절하게 배합하는 것이 더 큰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이 괴벨스의 주장이다. 
그는 선전선동의 승부처로 광장, 혹은 거리를 중요시했다. 거리를 정복하면 군중을 장악할 수 있고, 군중을 장악하면 국가를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을 제거하는 무기로 대중들의 증오와 분노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탁월한 기술자였다.
마오쩌둥도 선전선동의 달인 급에 속하는 인물이다. 마오의 중국공산당은 국부군 토벌대에 쫓겨 1만 2500km를 정신없이 도주했다.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대도주의 와중에 마오는 홍색중화통신사라는 것을 조직하여 선전선동을 해댔고, 자신들의 도주는 도주가 아니라 ‘대장정’이라고 미화했다.
1936년에는 산시성 옌안(延安)에 미국 기자 에드거 스노우를 불러들여 인터뷰함으로써 일개 지방 도적떼의 두목 급에 불과했던 마오쩌둥을 ‘중국 혁명의 지도자’로 탈바꿈시키는 데 성공했다. 마오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국민은 가난하고 백지다. 그러나 백지에는 가장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다.”
그 가난하고 백지 상태의 대중들 머릿속에 자신들이 원하는 시를 써넣을 수 있는 기술이 선전선동이었다. 레닌·히틀러·괴벨스·마오쩌둥 식 선전선동술은 현재 우리 사회의 좌익 및 북한 추종세력들이 유효적절하게 써먹는 바람에 전 국민과 언론이 기만되어 대한민국을 뒤집어 놓은 사례가 한두 번이 아니다.
 전교조의 「선동(연설) 훈련」이라는 자료에는 “선전과 선동은 대중 의식화의 양 수레바퀴”, “선동은 무기”, “선동은 가슴을 때리는 것”, “가장 멋있는 선동은 전율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청중들로부터 분노와 분개를 일으키게 하여 투쟁을 이끌어내기 위해” 선전선동을 밥 먹듯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선동이란 공산주의와 파시즘 등이 대중을 군중심리로 몰아가고 우민화시켜 자신들의 정책이나 생각, 방법이나 주장을 교묘히 현실화하고 거짓을 사실로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기술이다. 수많은 거짓에 한 가지 진실을 보태 대중을 자신들이 의도한 방향으로 몰아가는 사악한 전술이다.
좌익들은 “선동은 강력한 정치교육의 수단이자 대중투쟁의 뇌관”이라고 부르짖는다. 좌익들의 선전선동술에 넘어가 또 다시 속는 것은 졸음운전 하다가 죽는 것이나 비슷하다. 좌익들의 능수능란한 선전선동에 계속 속고, 그람시의 진지전 방식에 의해 한국 사회의 중요한 진지들인 정치·교육·문화·학계·언론·예술계·법조계 등 거의 전 영역을 좌익·좌파·친북·종북 전체주의 추종세력들이 점령했다.
그들은 이제 돈과 권력과 언론, 온라인 포털과 영화 예술분야까지 장악하고 총체적 선전선동을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그리고 세련되게 진행함으로써, 대중들이 속는지도 모르면서 속아넘어가도록 세뇌하고 있다. 이들의 무차별 선전선동에 의한 국가 자살을 막는 특효약이 있는가?
불행하게도 그런 종류의 예방 백신이나 치료제, 해독제가 발명되었다는 뉴스는 없다. 그렇다면 길은 하나다. 공산주의자나 전체주의자들의 선전선동술을 철저하게 학습하여 그들의 전략전술과 방법을 꿰뚫어 봐야 한다. 그래야만 저들의 사악한 거짓말에 속지 않는다.

김용삼 대기자 dragon0033@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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