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타르크 (Plutarch)가 저술한 영웅전 (Lives of the Noble Greeks and Romans)을 읽어 보면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정치가, 군인들에 대하여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고 조르조 바사리 (Giorgio Vasari)가 출판한 예술가 열전 (Lives of the Most Excellent Painters, Sculptors and Architects)을 통하여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의 인생에 대하여 알 수 있다.

전자는 고대 그리스 영웅들과 고대 로마 영웅들을 비교하면서 후자는 시대순으로 14세기, 15세기, 16세기의 이탈리아 미술가들을 각각 하나의 장으로 분류하면서 그들의 일생에 대하여 자세히 기술한 책이다.

1992년 7월 1일 유시민은 인물 열전의 형식으로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을 출간하였는데 - 토드 부크홀츠 (Todd Buchholz)의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를 표절한 것 아니냐는 의혹에 휘말리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 현재 청소년 및 직장인을 위한 경제학 입문서 중 매우 높은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경제학을 한번 공부해 보고 싶은 욕구를 불러 일으킨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으나 저명한 경제학자들을 마르크스의 계급투쟁론(階級鬪爭論)에 기반하여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었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선입관에 따라 타인들을 유형별로 묶어서 판단하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한 근거를 찾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서구 근대 철학의 인식론을 대륙의 합리주의 (Rationalism)와 영국의 경험주의 (Empiricism)의 두 가지로 분류하는 방식도 자신들의 조국이 유럽 대륙 전체와 대등하다고 확신하던 19세기 영국인들에 의하여 확립된 것이다.

따라서 저자가 과거의 경제학자들을 자신의 주관적 기준에 의하여 두 가지 그룹으로 분류하는 것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경제학 이론들을 계급적 이해 관계라는 주관적 기준에 의하여 평가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점에서 유시민의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은 비판적으로 읽어야 할 교양 서적일 뿐 일반인을 위한 경제학 입문서로 분류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유시민은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에서 아담 스미드를 제외한 모든 경제학자들을 부자들의 편과 빈민들의 편이라는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면서 그들의 인생과 학설을 시대순으로 나열하고 있는데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담 스미드 (Adam Smith)가 그의 저서 [자본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 (invisible hand)에 의한 자원배분과 자유방임주의 (Laissez-faire)를 주장하면서 본격적으로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탄생한다.

토마스 맬서스 (Thomas Malthus)와 데이비드 리카도 (David Ricardo)는 보이지 않는 손 (invisible hand)에 의한 자원배분을 받아들이면서 각각 지주와 자본가의 입장에서 인구론, 공황이론과 지대론, 비교우위론을 발표하는데 이 중 자유무역을 지지하는 비교우위론 이외에는 자유방임주의에 대한 비판적 내용도 많이 다루고 있다.

학계에서는 아담 스미드, 토마스 맬서스, 데이비드 리카도가 발전시켜 나간 경제학 이론을 고전경제학 (classical economics)이라고 통칭하고 있다.

독일의 프리드리히 리스트 (Fredrich List)가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선진국 영국에게만 유리하다고 하면서 보호무역론을 발표했던 것을 시작으로 부자의 편을 드는 경제학자들과 빈민의 편을 드는 경제학자들로 나누어지게 된다.

제레미 벤담 (Jeremy Bentham)의 공리주의 (功利主義; Utilitarianism)를 계승한 존 스튜어트 밀 (John Stewart Mill)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Greatest Happiness Principle)을 통하여 양자를 통합하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 한다.

부자의 경제학에 속하는 학자들은 레옹 왈라스 (Leon Wallace), 알프레드 마샬 (Alfred Marshall), 빌프레도 파레토 (Vilfredo Pareto) 등의 신고전학파 경제학 (neo-classical economics)과 존 메이너드 케인즈 (John Meynerd Keynes)와 그 계승자들인 케인즈 학파 (Keynesian School)이다.

저자가 밀턴 프리드만 (Milton Friedman)의 통화주의 (Monetarism)에 대한 내용은 생략하고 있으나 만약 본서에서 언급되었다면 정부개입에 소극적인 통화주의자들도 부자의 경제학에 속하는 것으로 분류되었을 것이다.

빈민의 경제학에 속하는 학자들은 공산주의(共産主義)의 아버지 칼 마르크스 (Karl Marx), 부동산을 통한 불로소득을 정부가 조세를 통하여 환수해야 한다고 주장한 헨리 조지 (Henry Geroge), 부유층의 소비에 있어서 수요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 도스타인 베블렌 (Thorstein Veblen), 자본주의를 지배하는 국제금융업자들이 제국주의를 작동시키고 있다고 주장한 존 왓킨슨 홉슨 (John Watkinson Hobson), 미하일 고르바초프 (Mikhail Gorbachev)의 개혁에도 불구하고 무너져 버린 소비에트 경제체제 등이 있다.

유시민은 현재 대학에서 사용되는 경제학 교과서들이 부자의 경제학인 신고전학파 경제학과 케인즈 학파의 이론을 주로 다루고 있다고 한탄하면서 빈민의 경제학을 언급하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부자의 경제학이 지지하는 자본주의와 빈민의 경제학에 기반한 사회주의 중 어느 한쪽이 우위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논의를 마무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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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경제학의 기본원리인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기반하여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에서 언급된 경제학자들의 이론을 검토하여 보기로 한다.

국가경제의 영역에도 개별 시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적용되므로 가격이 상승하면 수요량은 감소하고 공급량은 증가하며 가격이 하락하면 수요량은 증가하고 공급량은 감소한다.

총수요(總需要)는 국가경제에서 일정 기간 동안 재화와 서비스 수요의 총합으로 총공급(總供給)은 국가경제에서 일정 기간 내 재화와 서비스 공급의 총합으로 정의한다.

아래 그래프에서 총수요곡선은 경제의 실물 부문과 금융 부문이 동시에 균형을 이루는 점들의 집합이며 실물 부문은 소비, 투자, 정부지출, 순수출 (=수출-수입)의 합계와 소비와 저축의 합계가 일치할 때 금융 부문은 화폐의 수요와 공급이 일치할 때 균형을 이루게 된다.

반면, 총공급곡선은 노동, 자본을 투입하여 현재의 과학기술 수준 하에서 일정 기간 내 생산가능한 산출량이 물가 수준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나타낸다.

그리고 경제 전체의 총수요량과 총공급량이 일치하는 수준에서 국민경제의 산출량 (국민소득)과 물가 수준이 결정된다.

 

1. 우선 고전경제학자들의 주장을 살펴 보면 스미드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작동하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발견했고 맬서스는 인구론에서 식량 생산의 증가가 인구의 증가 - 식량 소비의 증가 - 를 따라갈 수 없다고 하였으며 리카도는 비교우위론에서 국가간 생산비용의 차이라는 공급 측면과 국가간 상품의 상대가격 차이에 따른 무역의 발생이라는 수요 측면을 모두 고려하고 있다.

유시민은 스미드는 가치중립적 경제학자이지만 그를 계승한 맬서스와 리카도에 대하여 전자는 지주의 입장에서 후자는 자본가의 입장에서 경제 현상을 해석하고자 하였기에 "부자의 경제학"에 기울어져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2. 이제 유시민이 "부자의 경제학"으로 분류한 신고전학파와 케인즈 학파에 대하여 살펴보면 이들 역시 경제 내의 총수요와 총공급을 모두 고려하면서 그들의 학설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신고전학파 경제학에 의하면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에 의하여 결정된 수요곡선과 한계비용 체감의 법칙에 의하여 결정된 공급곡선이 만나는 점에서 경제 내의 균형산출량과 균형가격이 결정된다.

이들을 비판한 케인즈 학파도 세계경제에 초과공급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총수요를 증진시키기 위한 (정부지출의 확대를 통한) 재정정책의 필요성을 언급하였던 것이며 통화주의자들 역시 경제현실의 변화에 따라 발생한 케인즈 학파의 오류에 대하여 반박하면서 총수요 확대정책의 한계와 재정정책에 대한 통화정책의 우위를 주장했던 것이다.

즉, 부자의 경제학에 속하는 경제학자들은 경제의 총수요 측면과 총공급 측면을 종합하여 자신들의 이론을 전개하고 있다.

3. 이들과 대조적으로 유시민이 "빈민의 경제학"으로 분류한 리스트, 마르크스, 조지, 베블렌, 홉스의 이론과 소비에트 경제체제를 살펴보면 이들은 모두 경제 내의 총수요와 총공급 중 어느 특정한 영역만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리스트는 독일이 영국과 맞먹는 경제대국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너무 커서 세계경제 전체를 바라보지 못 하고 조국의 국가이익 극대화만을 고려하였다는 한계가 있다.

마르크스는 노동가치설에 입각하여 총공급 측면을 주로 분석하였으나 기술의 진보에 따른 생산량 증대를 간과하였다.

조지와 베블렌은 각각 총공급 측면과 관련된 토지에 귀속되는 지대 문제와 총수요 측면에 속하는 부유층의 소비 행태에 그들의 연구 영역이 집중되어 있다.

홉슨은 부의 집중에 따라 발생하는 국내 과소수요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제국주의가 확대되고 있다고 하면서 조세를 통한 부의 재분배를 주장하였는데 이는 19세기말 20세기 초의 특정한 시대적 상황에 맞는 진단일 뿐이며 총공급 측면에 대한 연구는 소홀히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소비에트 경제체제는 재산의 사유를 금지한 상태에서 총수요 부문은 중앙정부의 계획에 따라 인위적으로 결정하고 총공급 부문의 생산성 증대에 주력하였으나 노동 의욕의 저하, 자원의 낭비, 기술 혁신을 위한 유인 부족으로 결국 파산하게 되었다.

이처럼 경제학의 기본원리인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기반하여 경제이론들을 분석한다면 왜 유시민이 말하는 부자의 경제학, 즉 신고전학파 경제학과 이에 대하여 반론을 제기한 케인즈 경제학, 그리고 케인즈의 견해를 재반박한 통화주의 경제학이 고전경제학의 적통을 이어받은 주류 경제학으로 분류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즉, 부자의 경제학은 경제의 총수요와 총공급 양 측면을 모두 고려하고 있는 반면 빈민의 경제학은 총수요 또는 총공급의 한 부분만을 연구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전자가 후자보다 현실경제를 보다 잘 설명해 주고 있으며 보편성을 추구하는 경제학 교과서는 부자의 경제학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의 저자는 자신의 이념에 따라 경제학 이론들을 자의적으로 분류한 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모두 비판하는 양비론(兩非論)을 펴고 있어서 독자들이 경제학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도록 인도하는 단계까지는 나아가지 못 하고 있다.

만약 유시민이 자신의 이념이 아니라 경제학의 기본원리와 실증분석에 기반하여 저술하였다면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은 주요 경제학자들의 인물 열전에 머무르지 않고 일반 대중을 위한 경제학 입문서의 역할까지 수행하는 명저(名著)로 기억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유태선 시민기자 (개인사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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