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칼럼] 하노이 파국 이후 북한 군부쿠데타 가능성 배제할 수 없다
[김영호 칼럼] 하노이 파국 이후 북한 군부쿠데타 가능성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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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희 군부 반대 관련 발언, 김정은에 대한 군부의 반발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해석 가능
최선희 기자회견, 하노이 회담 이후 김정은과 북한 군부 사이의 갈등 표면화 보여줘
북한에는 군부 쿠데타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견 버려야
하노이 회담 파국 이후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철저한 대비책 마련해 두어야 할 것
김영호 객원 칼럼니스트

제2차 하노이 미북정상회담 결렬 이후 김정은은 평양으로 빈손으로 돌아갔다. 그 이후 김정은과 북한 군부 사이의 갈등이 심상치 않다. 3월 15일 최선희 부상은 하노이 회담과 관련된 북한의 입장을 설명하면서 매우 놀라운 발언을 했다.

김정은은 북한 군부와 군수업계 등에서 핵을 절대 포기하면 안된다는 무수한 청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과의 신뢰를 쌓고 상호합의된 약속들을 이행하기 위해 트럼프와 회담을 위해 하노이로 갔다고 최선희는 말했다. 북한 군부가 김정은이 추진하는 미국과 북핵 협상에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번에 확인된 것이다.

북한 군부의 반대 입장 공개는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김정은이 군부의 반대 때문에 영변 핵시설 폐기 외에는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다는 배수의 진을 치고 향후 미국과의 협상에 임하려고 했다고 볼 수 있다. 나아가 김정은은 이런 반대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와의 회담에서 자신이 많은 양보를 했다는 점을 부각시켜 회담 결렬의 책임을 미국에게 전가시키려 하고 있다고 불 수 있다.

이런 해석들도 설득력이 있겠지만 이번 최선희의 군부 반대 관련 발언을 김정은에 대한 군부의 반발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냉전 시기 소련 공산당 지배 하에서 군부 쿠데타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소련 전문가들이 주장했다. 그러나 1991년 8월 18일 고르바쵸프 서기장이 크림반도에서 휴가 중 그의 개혁정책에 반대한 소련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그를 별장에 감금했다. 공산체제 하에서 ‘쿠데타 불가능’이라는 신화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1985년 집권한 고르바쵸프는 미국과 군축합의를 통해서 숨돌릴 틈을 마련하고 소련 경제를 회생시킬 기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소련 군부는 고르바쵸프에게 당시 레이건이 추진하고 있던 전략방어계획(SDI)를 실험실에서 연구만 하고 실전 배치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정상회담에서 받아올 것을 요구했다.

그렇게 하지 못할 경우 소련 군부는 고르바쵸프에게 군비를 증강해 줄 것을 요구했다.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군비 증강은 엄두도 낼 수 없었기 때문에 고르바쵸프는 1986년 레이캬비크 정상회담에서 레이건에게 전략방어계획 중단을 요구했다. 레이건은 이런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회담장을 일어나서 나가버렸다. 소련 군부의 압력에 밀려서 고르바쵸프는 커다란 전략적 판단착오를 범했던 것이다.

냉전 종식 후 공개된 소련 극비문서를 보면 이 회담 2주일 후에 열린 소련 정치국 회의에서 고르바쵸프는 전략방어계획에 대한 요구를 철회하고 레이건과 군축에 합의하지 못한 것을 크게 후회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한 번의 판단착오는 돌이킬 수 없는 패착이 되고 말았다.

그 이후 고르바쵸프는 미국의 양보를 얻어내지도 못하고 일방적으로 군축을 해나가고 1989년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철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고르바쵸프의 일련의 정책들이 군부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급기야 쿠데타로 이어졌던 것이다.

군부 쿠데타에 반발하여 모스크바 거리로 쏟아져 나온 100만명이 넘는 시민들의 저항에 직면하여 쿠데타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고르바쵸프는 감금에서 풀려나 모스크바로 돌아왔지만 쿠데타에 대한 저항을 주도한 보리스 옐친에게 정국의 주도권을 빼앗기고 말았다.

옐친은 소련 공산당을 불법화시키고 소련 연방국가를 해체시켜 버렸다. 레이캬비크 정상회담 이후 고르바쵸프가 범한 일련의 전략적 판단착오와 실수가 자신의 실각과 국가의 몰락을 가져왔던 것이다.

소련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북한 내부에도 김정은의 대미(對美) 협상노선에 반대하는 군부 세력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번 최선희의 기자회견을 통해서 밝혀졌다. 2008년 김정일이 심장발작을 일으킨 후 불과 몇 년 사이에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 채로 김정은은 지도자로 옹립되었다. 김정은은 군 경험도 전혀 없고 권력 기반도 약하다. 이렇게 본다고 한다면 김정은이 북한 군부의 이해관계를 무시하고 아무런 대가 없이 북핵 폐기에 나설 경우 소련의 고르바쵸프처럼 북한 군부의 쿠데타를 맞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김정은은 북핵 문제와 관련하여 대내외적으로 커다란 압박에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미국과 유엔과 국제사회는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폐기하지 않는 한 제재를 해제하지 않고 오히려 강화시켜 나갈 것이다. 동시에 김정은은 북한 군부와 군수업체로부터 제재 해제와 금전적 보상과 같은 대가 없이는 핵을 폐기해서는 안된다는 대내적 압력에 직면하고 있다. 최선희 기자회견은 하노이 회담 이후 김정은과 북한 군부 사이의 갈등이 표면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우리는 북한 내부 변화를 볼 때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보아야 한다. 북한에는 군부 쿠데타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견은 버려야 한다. 유엔과 미국과 국제사회의 지속된 제재로 인하여 김정은의 개인 금고가 마르고 경제상황이 어려워지면 루마니아 사태처럼 대중집회에서 북한 주민이 김정은에게 야유를 보내는 사태까지 발생할 수 있다.

1989년 12월 21일 철권통치를 하고 있던 차우세스쿠가 부카레스트 혁명광장에서 연설 도중 시민들로부터 야유와 돌멩이 세례를 받고 3일 뒤에 총살로 즉결처분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예견하지 못했다.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김정은정권이 계속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도 환상에 불과하다.

김정은정권은 핵을 먹고 살 수 없다. 북한은 핵을 갖고 남한과 국제사회를 협박하여 경제원조를 받아내려고 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철처한 제재로 인해 그런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문재인정부가 북한에 퍼주려고 해도 유엔제재와 미국이 한미워킹그룹을 통해서 철저하게 감시를 하고 있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강력한 제재로 인하여 북한 경제상황이 어려워질 경우 김정은과 군부 사이의 갈등 뿐만 아니라 북한 주민의 반발도 배제할 수 없다. 하노이 회담 파국 이후 우리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북한 내부를 예의주시하면서 철저한 대비책을 마련해 두어야 할 것이다.

김영호 객원 칼럼니스트(성신여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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