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당 합의초안, 300석 유지-지역구 225석으로-정당득표 연동률 반쪽-6개 권역별 계산활용 골자
정개특위 위원장 심상정, '비례대표 권역별 算式' 언론 질문에 "굉장히 복잡해" "여러분 이해 못해요"
'국민에 어떻게 설명하냐' 지적에 "국민들은 산식 필요 없어…컴퓨터를 부품까지 알 필요 있냐"
한국당 "국민 이해하기 힘든 선거제 개편을 4당 일부 의원끼리 모여 합의, 그후 태도도 납득불가"
4당 의원들 내에서도 "개편안 이해 못하겠다" 반응…박지원, 천정배에 "이 설명 이해한 천재 있나"
4당간 선거제 변경안 합의에 여당發 공수처법-수사권조정법 관심현안 연계처리 합의도 요원
176석 4당 중 29석 바른미래당서 '100% 연동형 불발-패스트트랙 강행' 반발조짐 커

더불어민주당과 군소 야3당이 선거제도 변경 단일안 초안을 도출하고 여권발(發) 공수처 설치·검경수사권조정 관련 법안까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올리는 데 '합의했다'고 선전하고 있다. 선거연령도 현 교육제도 하에서 18세로 바로 낮추는 안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각당 지도부는 17일 밤 이룬 합의 초안을 18일부터 당내에 보고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선거 룰'을 바꾸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의 경우 여야 원내교섭단체 만장일치 합의가 전제돼야 하지만, 이번 움직임은 총 176석에 달하는 4당이 113석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있어 '합의정신 파괴' 측면이 짙다. 

4당 지도부가 합의했다는 선거제 변경안은 의원정수를 300인으로 유지하되 지역구 의석을 현행 253석에서 225석으로 줄이고 비례대표 의석을 47석에서 75석까지 늘리는 한편 연동률을 50%로 설정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득표율에 비례해 각당 의석 수를 결정토록 하는 제도로, 예컨대 연동률 100%라면 지역구 후보와 정당에 각각 투표하는 '1인 2표제'이지만 소선거구에서의 당선 숫자와 무관하게 우선 전체 의석을 정당득표율에 따라 배분한다. 이렇게 배분된 의석 수보다 지역구 당선자가 부족할 경우 비례대표 의석으로 채우는 식이다.

3월17일 오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소속 (왼쪽부터) 김성식 바른미래당 간사, 심상정 정개특위위원장(정의당),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간사, 천정배 민주평화당 간사가 선거제도 변경안 논의를 위해 모여든 자리에서 악수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당초 100% 연동형을 주장하던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3당은 더불어민주당과 지도부간 타협해 50%로 연동률을 낮췄다. 민주당은 3당과 달리 전국구 비례대표가 아니라 전국을 6개 권역별로 나눠 의석수를 산정하는 방식을 선호했는데, 4당은 연동형에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혼합하자는 데 뜻을 같이 했다.

전국구 정당득표율에 기반해 의석을 배정하되 6개 권역별 득표율도 비례대표 의석배분에 반영한다는 식이다. 또한 비례대표 의석 수를 계산하는 과정에선 지역구 당선을 제외한 남은 의석에 대해 정당 득표율의 절반(연동률 50%)만 인정해서 나누겠다고 했다.

이같은 선거제 변경안의 내용은 일단 '지나치게 복잡하다'는 지적과 관련 논쟁을 야기하고 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17일 밤 9시45분쯤 정개특위 민주당 간사 김종민, 바른미래당 간사 김성식, 민주평화당 간사 천정배 의원과 7시간여 진행된 논의 결과를 기자들에게 설명했다.

이 가운데 비례대표 의석수를 '권역별'로 적용하는 방법에 대해 심상정 의원은 "각 당은 득표 비중을 연동식으로 각 권역에 (특정 조건이 담긴) 산식(算式)을 적용해 의석을 배분한다"고 말했다. 

한 기자가 '예시를 들어달라'고 하자, 심 의원은 "산식이 굉장히 복잡하다"며 "정해지면 나중에 컴퓨터로 처리하면 된다"고 선을 그었다. 브리핑 후 떠날 때 한 기자가 따라가 '산식을 보여달라'고 하자, 심 의원은 "산식은 여러분들이 이해 못해요. 산식은 수학자가 손을 봐야 하기 때문에"라고 했다.

이에 다른 기자가 '의원님, 우리(기자들)가 이해를 못하면 국민들을 어떻게 설득하느냐'고 했다. 이에 심 의원은 "아니, 국민들은 산식이 필요 없어요. 예를 들어서 컴퓨터(자판)를 칠 때 컴퓨터 치는 방법만 알면 되지 그 안에 컴퓨터 부품이 어떻게 되고 이런 것은 알 필요가 없지 않으냐"라고 했다.

(왼쪽부터)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심상정 정의당 의원(사진=연합뉴스)

하지만 국민 세금으로 녹을 먹는 선출직 공직자들이 '선거 룰'을 변경하는 사안을 단순 전자제품 구매·사용에 비유한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 알 권리 충족을 위해 대신 질문하는 언론을 상대로도 설명하지 못하는 안(案)을 도출해놓고 '세부 사항까지 국민에게 설명할 필요 없다'는 태도 역시 논란의 소지가 적지 않다.

한 한국당 관계자는 "국민들도 이해하기 힘든 선거제 개편을 4당의 일부 의원들끼리 모여서 합의했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 합의를 기자들에게 설명하는 과정에서 '국민은 몰라도 된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도 18일 오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국회의원 및 당협위원장 비상연석회의에서 앞서 심 의원의 '국민들은 산식이 필요 없어요' 발언을 예로 들면서 "그런 제도를 왜 만들겠나"라고 비판했다. 

정의당 측은 "한국당이 선거제 개편에 대해 공격하려고 심 의원의 발언 취지를 왜곡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심 의원도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정치개혁의 큰 호박을 굴리려고 해야지 말꼬리나 잡는 좁쌀정치 해서 되겠느냐"라고 나경원 원내대표를 비난했다.

하지만 4당 지도부의 합의는 이해관계 당사자인 각당 내에서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낳고 있는 형국이다. 박지원 민평당 의원은 이날 당 의총에 참석해 여야 4당이 합의한 선거제 개편안에 대해 천정배 정개특위 간사로부터 설명을 들은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설명을 듣고 천 의원에게 '지금 이 설명을 이해하는 천재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동료 의원들이) 다 웃더라"며 "나 정도 머리를 가진 사람은 이해를 못하겠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왼쪽 두번째)가 3월1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왼쪽 두번째)가 3월1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사진=연합뉴스)

4당 지도부의 선거제 변경안 초안 합의와 여당발 관심법안 연계처리에 4당 구성원 전부가 동조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내년 21대 총선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구 획정안 제출 법정(法定) 데드라인인 15일을 이미 경과했고, 패스트트랙에 올라간 법안은 본회의 상정까지 최장 330일의 심사기간을 갖는다. 국회의장 재량으로 60일 앞당긴다는 '거듭된 예외상황'을 바라보고 4당은 3법 패스트트랙을 추진 중인 셈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강병원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18일 통화에서 "선거제 개혁안과 개혁법안까지 합의안이 나와야 한다"며 "패스트트랙 성사까지는 바른미래당 입장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29석의 바른미래당 내에선 100% 연동형을 관철하지 못한 데 따른 불만이 제기된 것은 물론, 바른정당 출신 의원을 중심으로 한쪽 진영을 배제한 채 선거제 패스트트랙을 강행하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높다. 

오신환 당 사무총장은 최근 MBC 라디오에서 "이와 관련해 일부 의원들은 탈당 의사까지 밝혔다고 알고 있다"고 했고, 이준석 당 최고위원은 당내 회의에서 "지난 의원총회에서 선거법 개정과 패스트트랙 지정을 놓고 당 의원들 3분의2 이상 동의에 이르지 못했다"며 "민주당의 준연동제는 (제도 성격이 크게 달라) 재추인을 받아야 할 정도"라고 밝혔다.

민평당 내에서조차 일부 의원이 호남 지역구 의석 수 감소가 불가피하다는 점에 반발해 당내 추인이 쉽지 않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전북 지역 3선 중진 유성엽 최고위원은 당 회의에서  "민주당이 제시한 부분 연동형 비례제에 끌려 들어가는 합의를 도출한 것은 합의를 안 하는 것만 못하다"고 말했다. 민평당은 이날 추인 여부를 정하려 했으나 '의결정족수 부족'을 이유로 19일 다시 논의하기로 한 상황이기도 하다.

민주당은 당장 선거제 변경안 추인 목적의 의총을 열지는 않고 바른미래당 등 다른 당들의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선거제 변경안과 연계시킨 관심법안인 공수처 설치법안과 검경수사권 조정법안의 패키지 합의도 관철시키려는 기류 때문으로 알려졌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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